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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유증

우리가 비운 자리에 채워진 것들

by 고요

늦은 저녁 명치 언저리가 먹먹해지더니 결국 목 끝까지 답답하게 차오른다. 밥 생각이 그다지 없음에도 꾸역꾸역 의무적으로 먹은 저녁 때문이겠지. 억지로 하는 일은 항상 문제가 된다.

답답함을 조금이나마 내려놓아 보려 밤 산책에 나선다. 소란스러움을 다 먹어치운 듯한 검은 하늘을 보며 걸으니 조용하고 서늘한 밤공기가 살갗을 쓸어내려주어 기분이 한결 낫다. 그럼에도 명치에 자리 잡은 응어리는 쉽게 풀어지지 않는다.

몇 해 전 수술로 담낭을 제거하고 난 뒤 무리해서 무언가를 먹으면 꼭 이렇게 탈이 난다. 처음에는 적응하기 어려웠지만 이제 으레 있는 일로 그러려니 한다. 불편한 것이 당연하게 된다니 기분이 썩 좋지는 않다. 불편함이 익숙해지고 싶어 익숙해진 사람은 없을 것이니까.

병이 나 아팠고, 결국 아픔을 칼로 도려냈다. 흉터는 조금 남았지만 상처는 아물었고 이제 통증도 없다. 그러나 상처를 도려낸 자리에 아픔 대신 먹먹함이 자리 잡았다. 큰 아픔은 어떤 형태로든 후유증을 남긴다. 그리고 결국 평생 불편함에 익숙해지며 살겠지.

이러한 일이 비단 몸에만 국한될까? 아니 마음에도 분명 똑같이 적용될 것이다. 소중한 사람과 예상하지 못했던 이별을 겪었을 때, 몇 년 동안 공들였던 꿈이 현실에 넘어졌을 때, 묵묵히 이러한 일들을 버티고 익숙해져야 했을 때마다 아픔을 도려내고 무언가로 그 자리를 채워왔다. 그것은 좋게 말하면 상실에 대한 인내이고 아픔을 통한 성장이겠지만, 결국에는 포기와 미련이 그 아래 그림자처럼 깔려있다.

아픔의 연속이 가끔은 억울해 조금은 칭얼거리고 싶기도 하다. 그러나 어쩌겠는가. 이게 살아가는 일이고, 그림자가 겹쳐 짙어지는 깊이를 버티는 만큼 사람도 깊어짐을 알기에 버티고 나아가겠지. 계속 비우고 채워가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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