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와 이티

아버지와 이티

by gozal

살아계셨으면 오늘이 아빠의 생일이다. 음력으로 생일을 쇠던 아빠의 생일이 매년 바뀌어 사실 나는 아빠의 생일을 기억하거나 외우지 못한다. 항상 이번 해는 언제인지 엄마에게 물어 그 해의 달력에 체크하고 기억하거나 그것도 다른 가족들이 알려줘서 겨우 챙기는 정도였다. 무뚝뚝한 가족의 모습처럼 생일도 화려하거나 오랜 준비가 필요하지 않았다. 돈을 벌지 못하던 수십년간은 용돈은 고사하고 그냥 참석하는데 의의가있는 정도였다. 아빠의 연세가 예순을 넘긴 후로는 이모네 식구, 외삼촌들이 모여 함께 생일 식사를 했던 것 같다. 엄마의 생일도 그달에 함께 있었으니 겸사겸사 후딱 해치워 버린 것도 있었다.


오늘도 지난달부터 다이어리에 꾹꾹 눌러서 썼던 것도 가물가물하다 겨우 기억해 냈다. 오늘 하루는 늘상과 같이 아침에 아이 학교보낼 준비 하고 누워서 유튜브 좀 보다가 졸음에 그대로 소파에 누워 몇 시간이 흘렀는지 눈떠보니 2시를 넘겨 다시 아이를 데리러 갈 시간이었다. 아이를 픽업해서 엄마 집으로 향했다. 우리는 늘 그렇듯 집에서 차린 밥을 먹고 나는 또 방에서 누워 핸드폰을 만지작거리다 잠이 들고 몇 시간이 흘렀다. 밖에서 아이는 텔레비전을 보고 엄마는 여전히 분주히 무언가를 하고 있다. 저녁쯤이 되어 그간 함구하던 아빠의 돌아가시던 그 순간과 중환자실에서 연명 치료를 받던 그 스무날들을 기억해 내 대화를 나눴다. 엄마는 눈물을 흘렸고 나도 오열은 아니지만 볼을 타고 눈물이 흘렀다. 무뚝뚝하고 독한 성격은 엄마나 나나 같아 그간 꽁꽁 싸매고 있던 감정들이 북받쳐 올랐지만, 다시 얼른 집어넣었다. 지난 3개월 동안 단 한 번도 아빠에게 가지 못했고 그 무기력한 날들을 이겨내려고 우리는 각자 부단히 노력했을 거다.


아빠의 납골당에 가려던 계획이 기상 악화로 취소되던 날 이후 엄마와 나의 꿈속에 아빠가 번갈아 찾아왔다. 중환자실에서 추워 집에 가고 싶다던 추위를 많이 타던 아빠가 꿈에 나와 발가락 끝까지 이불을 꽁꽁 덮어주고 어느날은 변이 잘 나오지 않아 배가 많이 부풀었던 아빠가 나타나 화장실에 가야겠다고 급히 걸음을 재촉하기도 했다. 엄마의 꿈속에서 아빠는 거인의 모습으로 나타나 저혈당이 온다며 평소처럼 사탕을 달라고 했고 엄마는 아빠에게 사탕을 주어 다시 편안해져 그 특유의 흘겨보며 씩 웃는 모습으로 나타났다고도 했다. 아마도 우리는 그간 참아왔던 그리움이 폭발하고 이를 눌러 담던 감정들이 죄책감처럼 나타난 것 같다. 하지만 나는 아빠에 관한 이야기를 많이 나눌 수 없었다. 아빠의 생전 절친께서 엄마에게 자주 전화하여 엄마의 안위를 묻고 어려움을 이겨낼 방법을 이야기 하실 때마다 아빠의 마지막 모습이 떠올랐다. 믿기지 않는 그 순간들이 스쳐 지났고 가슴이 뛰고 쿵쾅거렸다. 아마도 그것을 회피한 것은 내가 살기 위해서가 아닐까 싶다.


내일모레 아빠를 만나러 온 가족이 출동하기로 했다. 아마도 그 앞에서 나는 엉엉 울 것 같다. 아빠가 돌아가시고 납골당에 안치하던 순간 체면이고 뭐고 소리내 울었다. 기독교인들은 가시는 길에 가쁨과 축복으로 보내드려야 한다고 울면 안된다고 누군가가 옆에서 나를 말렸지만 동의하지 않았다. 내 아빠인데. 누가 운단 말인가. 내가, 우리가 아니면 누가 오늘 통곡한단 말인가. 결론은 망자는 보이지 않지만, 우리가 믿는 천국에서 우리보다 더 평안을 누리고 있다고 믿어야 우리가 살 수 있다. 나보다 좋은 곳에 있고 내가 그곳에서 만날 수 있으니, 망자의 걱정은 하지 않아야 한다.


번개장터에서 구입한 1982년생 이티


아빠가 돌아가신 후 추억을 더듬었고 늘 같이 있었지만, 생각나는 애틋한 순간은 없었다. 아주 오래전 늦게 들어오던 아빠 손에 들렸던 인형들, 그중에서 이티 인형이 생각났다. 아빠는 항상 외계인 인형만 들고 와서 결국 엄마는 혐오스럽다며 모두 버려버렸지만, 아직도 기억난다. 나는 번개 장터를 뒤져서 그때 그 이티와 똑같은 40살짜리 이티를 발견했다. 망설이지 않고 주문했고 늘 잠들 때 내 곁에 둔다. 그때 그 순간만큼은 어린 마음에 아빠가 집에 돌아올 때 우리 생각을 하고 그래서 그 인형을 들고 먼 길을 오지 않았을까. 그런 상상들 때문에 그 인형이 추억의 물건이라고 생각했나 보다. 일요일에는 이티를 데려가야겠다. 그래서 그 앞에서 이티와 아빠와 함께 사진을 찍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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