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냥 할머니

나에겐 그냥 할머니

by gozal

뜻밖의(?) 결혼으로 삶에 대해 생각하게 되었다. 이전까지는 새 생명과 그 생명이 성장하는 하루하루에 대해 내 어린 시절을 돌이켜 떠올리는 것 이외에 생각할 수 없었다. 성정이 심약해서인지 여러 가지 트라우마를 안고 살면서 결국 그것들이 죽음에서 왔다는 결론을 내렸다. 나이가 들어가면서 알지 못했던 것들을 알게 되고 삶이 밝고 긍정적이지만은 않다는 것을 알게 된 후 그 모든 것들은 트라우마가 됐다. 마흔을 넘기고 수많은 죽음을 대하며 죽음이라는 것도 심리적 거리감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어린 시절 외할머니댁과 근거리에 살았던 나는 자주 그 집에 맡겨졌다. 그때마다 같은 방에서 잠을 자고 주로 지내던 이는 나의 외할머니가 아니라 외증조할머니였다. 복잡한 이유로 외할아버지와 피 한 방울 섞이지 않았던 증조할머니는 나의 엄마를 업어서 키웠고 그 자식인 나를 또 보듬어 주셨다. 할머니 집에서 잠을 자던 날은 항상 좁은 증조할머니 방에서 할머니 가슴팍에 얼굴을 묻고 할머니는 내 다리에 당신의 다리 한쪽을 척 하니 올려두고 계셨다. 시간이 지나 나도 딸이 생기고 나니 그 자세가 참 정겹다.


나의 외할머니, 외증조할머니는 두 분 모두 애칭이 있었는데 외할머니는 ‘띵가 할머니’, 외증조할머니는 ‘그냥 할머니’였다. 이유인즉 띵가 할머니는 외손들이 올 때마다 무릎에 앉히고 "띵가야 띵가 띵가~" 노래를 부르며 들썩들썩 이셔서 그런 별명이 생겼다. 사실 나는 띵가 할머니의 시어머니인 그냥 할머니와 더 친하다는 이유로 그 띵가 띵가를 잘 받진 못했다. 그냥 할머니는 “할머니를 뭐라고 불러야 해요?”라는 질문에 “그냥 할머니라고 불러” 그래서 그냥 할머니가 되었다. 우리는 아직도 그분을 기억할 때 '그냥 할머니'라고 부른다. 그냥 할머니는 내가 중학교 1학년에 돌아가셨으니 추정컨대 100살이 넘게 사신 듯하다. 1900년대 생이니 태어나자마자 출생 신고하지 않았다고 하면 아마도 그럴 거다. 그냥 할머니는 빙판에서 넘어지셔 허리가 꼬부랑 할머니처럼 굽어 계셨다. 가끔 지팡이를 짚고 허리를 펴시면 키가 꽤 크셨던 것 같다. 흰머리를 곱게 빗어 비녀를 꽂으셨던 할머니는 내 손을 잡고 감나무집 할머니 댁에 가끔 놀러 가셨다. 감나무집 할머니는 앉은뱅이 할머니라 불렀는데 지금은 이런 표현 쓰면 큰일 날 일이고 하반신 장애를 가지고 계셨다. 어느 날은 감나무집 할머니가 몸이 안 좋아 누워계시다 하여 병문안을 갔었는데 그 이후로 할머니를 뵌 적은 없는 거로 봐서 안타깝지만 먼저 돌아가신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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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냥 할머니가 하얀 가제 수건을 펼칠 때면 항상 가슴이 두근거렸다. 그 안에서 박하사탕이나 꼬깃하게 접은 천 원짜리가 나올 때가 많았기 때문이다. 할머니는 천 원짜리 한 장을 주시며 시장에 가서 찐빵을 사 오라는 심부름을 가끔 시키셨다. '갑자기 찐빵이 먹고 싶네….'

아무튼 그냥 할머니는 내가 중학교 1학년 무렵 돌아가셨고 그전에 치매를 앓으시고 또 우리 집에도 얼마간 계셨던 것 같다. 띵가할머니는 18세 어린 나이에 20세의 할아버지에게 시집을 오셔 온갖 시집살이를 하셨다고 했다. 그래서인지 내가 기억하는 띵가 할머니는 그냥 할머니와 사이가 매우 좋지 않았다. 그냥 할머니가 돌아가신 이후로 띵가할머니는 이십 년이 넘게 더 사시고 그 이후에 우리 집에서도 10년이나 함께 사셨는데도 나는 그냥 할머니가 더 그리운 건 아마도 그냥 할머니와 나와의 추억이 많기 때문일 거다. 나는 지난 수십 년 동안을 그냥 할머니의 납골당에 찾아가 보고 싶었다. 하지만 한 번도 그래본 적은 없다. 그런데 아빠가 돌아가시고 엄마가 아빠의 납골당을 택한 곳은 다름 아닌, 그냥 할머니의 납골 바로 위였다. 나는 삼십 년 만에 그냥 할머니를 만났다. 물론 거기 바로 아래로 걸어 내려가면 띵가 할머니와 띵가 할아버지의 납골도 있긴 하다. 그냥 할머니의 납골 앞에서 나는 그런 생각을 했다. '내가 믿는 신이 진정 계시다면 그분이 나를 이곳으로 이끌어 주셨구나. ' 신앙이 있다는 것은 모든 일들에 의미를 부여하고 그것이 감사로 이어진다는 점에서 참 좋은것 같다. 아무튼 나는 아빠를 찾아갈때마다 그냥 할머니와도 만날 수 있게 되어 수십년간 지녔던 마음의 짐을 덜은 느낌이다. '그냥 할머니, 그때는 제가 너무 어려서 할머니께 하고 싶은 말들을 못했어요. 이제야 합니다. 감사하고 사랑하고 보고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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