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럼에도 행복은 있다
너무 죽음에 대한 것들만 쓰다 보니 화제를 전환해야겠다. 우선 지금 글을 쓸 수 있는 것은 그토록 기다리던 방학이 시작되었다는거다. 아자!! 결혼 전에는 방학이 이렇게 좋은건지 몰랐다. 학교에 오고 첫 4년간은 매일 10시까지 야근을 하고 익숙치 않은 업무들을 잘 해내려고 아둥바둥 했던 것 같다.
28살 뒤늦게 임용시험을 보겠다고 뛰어들었지만 학교가 어떤 곳인지 살펴볼 생각도 못했다. 바빠서가 아니고 그냥 내 성격이다. 앞뒤 안가리고 꽂히면 덤비는 그런 성격 말이다. 대학 동창들 중 이미 학교에 있던 친구들이 있었지만 누구도 나를 말리거나 진짜 그곳의 이야기들은 해주지 않았다. 그랬다가는 내가 바로 줄행랑 치지 않을까 해서 그런것 같기도 하다. 발령을 받고 학교에 처음 나갔을때는 정말 '이게 뭔가' 싶었다. 다들 너무 바쁘고 정말 정신이 하나도 없었다. 계속해서 해야할 일과 가야할 곳과 메신저가 쏟아졌으나 이에 대해 친절히 알려주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지나고 나서 생각해보니 학교 일이란게 십년, 이십년 지나도 내 앞가림하기 힘든건 똑같다. 일주일동안 쏟아지는 메신저를 하나씩 처리하면서 정확히 일주일만에 나가 떨어졌다. 계속해서 울려대는 메신저에 넋이 나가 띵띵띵~ 멍~멍~ 그러다가 휴게실에 가서 눈물을 한 바가지 쏟았던 것 같다. 선배교사와 부장님이 따라오셔서 말없이 위로해주셨다. 지금 생각해보니 이것도 다 소심한 완벽주의 때문이다. 사실 그때는 그 많은 일들에도 숨겨진 우선순위가 있다는걸 파악할 수 없었다. 그래서 정말 "3일안에 내세요" 하면 제일먼저 내고도 늦게내서 죄송하다는 말을 입에 달고 살았던 것 같다. 그리고 매일같이 야근하면서 다음주, 그 다음주까지 클리어 해나갔다. 그래봤자 일은 앞서가던 뒤에가던 계속 쏟아지는건 똑같다.
결혼 생활과 함께 육아휴직을 했기 때문에 나의 질주본능에 잠깐 브레이크를 걸 수 있었다. 지금 돌아보면 내 인생 통틀어서 산전휴직의 1년이 가장 몸과 마음이 편하고 아름다웠던 날들이었던 것 같다. 아무도 내게 뭘 기대하지 않았고 다만 잘 먹고 잘자고 맘편히 지내는게 내 할일이었다. 아이를 18개월까지 키우고 복직을 했을때 사실 적응하기 참 어려웠다. 잠잠했던 불안까지 겹쳐 공황장애 증상까지 왔던 것 같다. 다시 파이터, 일벌레 모드로 돌아갈때까지 시간이 좀 걸렸지만 아이를 키우면서 다시 험난한 학교생활에 익숙해졌다. 미혼일때를 떠올려보면 방학이 끝나고 "방학이 너무 길어서 지루하지 않았나요?" 이런 멍멍이 소리를 엄마, 아빠교사들에게 했던 것 같다. 그때 돌아오는 답변은 항상 "난 방학이 빨리 끝났으면 했어. 너무 힘들었어" 또는 "집에 있는 것보다 일하는게 나은 것 같아" , 부부교사라도 있다면 "둘다 집에서 육아하느라 눈치보여 외출도 못하고 죽는줄 알았어" 등등 이런 답변들이 돌아왔다. 가끔 회식이라도 할라치면 "나 애 재우고 1시에 나올테니 그때까지 절대 가면 안돼~" 아니면 날 잡은 사람들마냥 노래방에 가서 노래하고 춤추고 그런데 이상한건 다들 같이 춤추는게 아니고 벽보고 춤추거나 단 한순간도 놓치기 싫다는 듯 엉덩이를 자리에 붙이지 않았다. 그러다가 껴안고 오열하기도 했다. 그때의 나는 '제발 집에 보내주세요~ 저는 집에가서 잠좀 푹 자고 싶거든요' 뭐 이런 심정이었다. 그리고 그들의 언행을 거의 이해하지는 못했다. 내가 지금 그 입장이 되보니 그분들이 그때 어떤 마음이었나 백배 공감한다. 물론 나는 놀라운 유전자로 술은 못 마시지만...
아무튼 방학이 왔다. 몇년 전부터 방학이 오면 이런 생각을 한다. 정말이지 십 몇년 만에 처음이다. '아~ 정말 좋다! 이래서 교사 하는구나. 남들이 아무리 방학 어쩌고 태클 걸어도 지금이 좋다!' 물론 이 생각은 오래가지 못한다. 방학 시작후 일주일은 앓아 눕고 개학 시작전 일주일은 불면증에 시달리기 때문이다. 나의 이번 여름방학 버킷 리스트는 역시 소소하다. 건강검진과 위, 대장내시경까지 일찌감치 받기로 했는데 방학시작과 동시에 클리어 했으니 한건 했다. 다음은 목욕탕에 가서 세신을 받는 것이다. 목욕탕은 왜 방학전에 가지 못했을까. 그래서 버킷 리스트가 되야만 하나 모르겠지만 지금 절실하다. 이것도 역시 클리어 했다.
계획없는 ENFP인 나는 늘 다니던 목욕탕이 휴무일인줄 모르고 나섰다가 낭패를 봤다. 집에서 가까운 목욕탕도 있겠지만 교사의 삶이란 벌거벗고 학생을 만날 수 는 없는 일이다. 그래서 30분을 운전해서 한적한 시골동네에 정말 동넷분들만 다니시는 목욕탕에 가서 세신을 받았다. 세신을 받는다는 것은 약 2시간 가량의 기다림을 거쳐 인내와 번민을 거쳐야만 받을 수 있는 신성한 것이다. 가끔 세신사분들이 새파랗게 젊은(?) 사실 젊지 않지만 아무튼 그래보이는 여자가 지손으로 때를 못 밀고 돈내고 때를 밀어달라는게 불편해 보이는 세신사님들도 계신다. 하지만 어쩌겠나. 소심한 탓에 입밖에 꺼내지는 못하지만 '이게 저의 유일한 행복입니다. 저는 지금 너무 행복해요 만세~! 그리고 존경합니다!' 진심이다.
세번째는 무인 빈티지샵 투어다. 그 이유는 길어지니 다음에 자세히 해야할 것 같다. 네번째는 아주 더운 날 바닷가에 누워서 햇볕을 쬐다가 파도와 맞서 싸우며 수영하는 일이다. 주근깨와 기미로부터 자유롭지 않은 직업이기에 관리를 해야하지만 여름 바다에서 거추장스런 장비 없이 맨몸으로 태양을 맞는 일은 거부하기엔 너무 매력적이다. 마지막으로는 음악도서관에 가서 실컷 음악을 듣고, 온갖 전시회와 박물관을 투어하는 일. 그러나 현실은 오늘도 밤낮이 바뀌어 새벽 2시 33분이 되었네. 바닷가고 나발이고 자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