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작은 여자 체육교사

작아서 슬픈 인생아

by gozal

내 키는 150이다. 보통 남자들이 키 얘기를 할 때 179.000이라는 키는 세상에 없다. 다시 말해서 나도 그렇다. 어릴 때 엄마에게 키를 물어보면 항상 150이라고 답하였다. 내가 엄마 키와 똑같아지고 또 이르게 성장이 멈춰버리면서 엄마 키가 150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아무튼 나는 그때까지도 엄마 키가 150인 줄 알고 살았다. 초등학교 5학년까지는 키도 큰 편이었고 꽤 성숙한 축에 들었던 것 같다. 5학년 담임선생님은 생리를 시작한 같은 반 여학생들을 몰래 따로 불러서 상담도 해주시고 축하도 해주셨던 기억이 있다. 나는 5학년 그 이후로 키가 더 이상 크지 않았다. 중학교에 입학 한 뒤로는 번호가 거의 한 자릿수였던 것 같다. 중학교 때는 키순서로 번호를 매겼기 때문이고 고등학교부터는 가나다순이라서 그랬다. 나도 처음에는 뒷번호 받겠다고 뒤꿈치도 좀 들어보고 목도 좀 빼보고 했으나 곧 다 부질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남편이 말하기를 남중·남고에서는 키가 무기고 키, 큰놈이 최고라고 했다. 다행인지 뭔지 나는 여중·여고를 나온 데다 대학교도 여대를 나와서 키가 작아서 소외되거나 눈치를 받고 살지는 않았다.


우리 집에는 언니 어릴 적 돌사진은 있지만 내 돌사진은 없다. 5살 이전의 사진은 거의 없다고 봐도 된다. 이유인즉 엄마는 내가 태어나자마자 잔병치레를 너무 해서 다들 곧 죽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고 한다. 나는 그때는 기억하지 못하지만 초등학교 2학년 때까지는 과잉보호를 받았던 것 같다. 예를 들자면 유치원에 다닐 때도 전날 저녁을 든든히 못 먹고 자면 다음 날 아침에 허기가 져서 일어나지를 못했던 기억이 난다. 그럴 때면 엄마는 나를 집에서 쉴 수 있게 해줬다. 이런 일이 반복되면 당연히 꾀가 는다. 내 기억에 일부러 엄살을 피운 적도 있었던 것 같다. 초등학교 2학년까지는 학교에서 단체 주사를 맞을 때 선생님이 옆에 있어 주시거나 반찬을 다 먹었는지 도시락 검사를 받는다거나 특별 관리를 받을 때도 있었다. 아마도 엄마가 선생님께 내가 "몸이 약해빠졌으니 잘 좀 부탁드린다고" 했을거라 짐작한다.


초등학교 3학년이 되었을 때 엄마는 직장을 다니기 시작했다. 그때 나는 처음으로 과잉 보호로부터 벗어났다. 친구와 방과 후 노는 재미를 알게 되고 우리집같이 엄마가 일을 나가는 친구 집에서 해가 지도록 놀다 들어오곤 했다. 엄마는 "그때 내가 일을 다니지 말았어야 네가 공부했을 거야"라고 지금도 가끔 말하지만 어쨌든 나는 세상 밖으로 나왔다. 언젠가 학교에서 높이뛰기 수업이 있었는데 고무줄을 점점 높여가며 얼마나 높이 넘을 수 있나 재보는 수업이었다. 나는 방문 고리와 의자 사이에 줄넘기를 걸어놓고 이리 뛰고 저리 뛰며 연습했다. 이게 웬걸. 하늘을 나는 기분이었다. 나는 그날 이후로 교실에서 남학생 머리 높이만큼을 넘었고 선생님은 엄마와의 상담에서 내가 운동에 소질이 있다고 이야기하셨다. 물론 엄마는 그 말을 믿지 않았다. 초등학교 4학년이 되고 새로 오신 남자 선생님이 계셨는데 체육을 전공하신 건지 체육 시간을 엄청나게 강조 하셨다. 성함은 생각나지 않지만, 그 선생님께서 각반에 달리기를 잘하는 학생들을 모아 멀리뛰기, 100m, 오래달리기 등을 연습시켜 주셨고 우리 학교에서 지구별 육상 대회도 열렸다. 나는 100m, 600m, 두 종목에 출전했는데 100m를 뛰고 이미 힘이 소진되어 사실상 주 종목인 600m에서 아쉽게 2등을 했다. 그것도 결승지점을 한 발짝 앞에 두고 넘어지면서. 남자 선생님은 졸업을 앞둔 즈음에 엄마와 상담에서 내가 달리기에 소질이 있다고 했다. 이때 나는 이미 몸이 약한 아이에서 벗어났다. 줄넘기를 한 번에 700개씩 뛰고 배우지 않아도 옆돌기를 휙휙 돌며 고등학교까지 쭉 체력장을 올 특급을 받고 졸업했다. 남들에게 별것 아닐지 몰라도 올 특급이라는 성적표는 내 인생 최대 자랑거리다.

결론적으로 내 키는 150이 안된다. 내 생각이지만 전국에서 나보다 작은 중등 체육교사는 아무도 없을 것 같기도 하다. 육상 선수를 할때부터 체육교사생활을 15년간 해오면서 키와 관련된 웃지못할 에피소드들은 너무도 많다. 다음에 하나하나 풀어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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