곧 오십입니다만
체육교사로 살면서. 그리고 운동을 하면서 키가 작다는 것은 너무도 많은 에피소드를 만들기에 충분했다.
중3 때 고등학교를 따라 태백산으로 전지훈련을 갔는데 한 달 동안이나 승합차를 타고 훈련장을 왔다 갔다 하는 사이에도 실업팀 언니들은 내가 민박집 딸인 줄 알았다고 했다.
키가 작은 것은 가끔 스타가 되게 만들어주기도 한다. 예를 들면 종합운동장에서 열리는 대회에 스타트 준비를 할 때면 누군가가 몰려와 초등학생인가 아닌가를 궁금해하거나 나의 퍼포먼스를 보려고 모여들기도 했다.
그런데 이런 일은 어릴 때로 끝나지 않기 마련이다. 교사 임용고사 실기장에서도 뒤를 돌아보며 회심의 미소를 짓는 남자 수험생들, 배구 스파이크를 시원하게 때리거나 농구 3점 슛을 넣을 때도 반응은 열광적(?)이다.
물론 결과가 좋을 때는 그런 순간들이 더 통쾌하게 느껴지기도 했다.
발령을 받고 간 첫 학교의 교감선생님은 "우리 00이 선생님은 임용고사를 1등으로 들어왔는가 했더니 육상선수였다던 데?"라는 말을 급식실에서 아주 크게 말하기도 했고
첫 수업 오리엔테이션을 위해 교실에 들어설 때는 "선생님 이번시간은 체육이에요."라고 학생들이 친절히 알려주기도 한다.
사실 나는 별 신경 쓰지 않는다 하지만 이런 일들도 계속되면 참 그렇다.
언제부턴가 서른을 넘기고 마흔을 넘기고 아이를 낳고 엄마가 되고 또 오십 줄을 바라보게 되니
'나를 증명하는 시간은 언제까지 계속돼야 할까'라는 고민에 빠지게 되었다.
나는 곧 더 나이 들고 약해지고 지금 같을 수 없을 것이다. 언젠가는 시범이나 퍼포먼스를 보이는 것이 당연히 어려운 때가 올지도 모른다.
그때는 또 무엇으로 나를 증명해야 하나
올해가 건강검진 필수 해라 방학 한 김에 건강검진에 대장내시경, 위내시경까지 마쳤다.
숙제를 하나 끝낸 기분인데 재작년보다 여러 가지로 나쁜 징후들이 보인다. 특히 고콜레스테롤 위험군이란다.
유전적이기도 하지만 체육교사라고 자기 몸 건사하는 건 아니니 평소 따로 운동을 하지 않고 있다. 아이들과 간간이 함께 뛰고 게임하고 하는 게 즐겁기도 하지만 지속적인 운동이 아니니 건강에 도움은 안된다.
달리기를 다시 시작하기로 했다. 뭔가 돌파구가 필요하다. 오랫동안. 아니 곧 오십 줄이라도 할 수 있는 데까지 해봐야지 않은가.
곧 육상대회에 나가는 학교 아이들 카톡방에 글을 남겼다.
'나도 오늘 달리기를 시작했어. 성실히 할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최선을 다해볼게. 우리 파이팅 하자!'
그래 이제 우리 같이 증명해 보자. 이렇게 작고 헤어지고 늙어가는 나도 할 수 있잖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