빈티지에 빠진 지 한 3년쯤 되었다. 빈티지 마니아들이 들으면 애송이라고 비웃겠지만 나는 그 3년 동안 정말 열심히 빈티지를 탐구했다. 나는 원래 패션에 관심이 많고 꾸미는 것을 좋아한다. 어릴 때는 경제력이 없었기에 부모님이 사주시는 옷을 입거나 내가 고른 옷들을 엄마가 마음에 들어 하지 않는 경우가 많아서 불만이 많았던 것 같다. 예를 들면 엄마는 소위 고상해 보이는 옷을 좋아해서 단정한 쓰리피스나 상앗빛 원피스, 정장 슈트 이런 것만 사주었다. 어느날은 내가 고른 옷을 입고 집에 있을 때 이모가 우리집에 방문한 적이 있는데 "네가 이런 옷도 입냐"고 놀랬던 적도 있었다. 그래서 나는 스물 두세살이 넘어 아르바이트를 시작하고 나서야 청바지라는 것을 입어봤다.
빈티지를 알게 된 이후로 시행착오도 많았다. 처음에는 유명 인스타그램 샐러의 방송에 빠져서 비싼 값을 지불하고 그 방송이 끝나기전에 뭐라도 꼭 사야하는 것처럼 애가 탔었다. 그러다가 티셔츠, 바지 하나에 몇천 원씩 하는 온라인 사이트를 알게 되어 또 뭔지도 모르고 막 사들였다가 반절 이상을 버리게 된 적도 있었고 직접 창고 매장을 찾아가 수많은 옷 중에서 원하는 것을 하나 겨우 찾았던 적도 있다. 그러다 보니 흘러 흘러 빈티지 도매 카페에도 가입하고 도매 사장님들 밴드에도 가입해서 경매에도 참여하게 됐다. 외진 곳에 하우스를 두고 수입 짝들을 어마하게 들여와 짝으로 작업하고 날것들을 펼쳐 골라가는 시스템도 알게 되었다. 그리고 그 안에서도 사기와 불신이 가득하다는 것들도 함께 말이다. 빈티지라는 개념은 사실 중고와 다르다. 중고는 내가 막 사서 마음에 안들어 내놓은 옷들이나 새로 산 옷을 몇 년 입다가 버려진 옷들과도 같다. 하지만 빈티지는 조금 다른 개념이다. 시간이 오래 지날수록 그 가치가 있고 현재 생산되지 않거나 그 시대의 어떤 가치를 가진 옷들이 빈티지라고 불린다. 빈티지를 잘 모르는 사람들은 남이 입던 더럽고 헤진 오래된 옷을 좋아한다는 것을 전혀 이해하지 못한다. 빈티지를 좋아하는 사람들은 리바이스 청바지가 처음 만들어진 역사부터 시작하여 그 기능의 변화에 따른 디자인의 변화까지 깊이있게 섭렵하고 있다. 그래서 빈티지 세계에서는 빈티지라고 다 같은 빈티지가 아니다.
얼마 전 학교 송별회 회식에서 휴직했던 선생님이 송별식을 한다고 하셔 휴직 송별식인가 했지만, 알고 보니 의원면직 즉 사직을 하는 것이었다. 나는 그때 적잖은 충격을 받았다. 나뿐만 아니라 그 자리의 많은 선생님들이 그러했을 거다. 요즘 초등학교 선생님들이 많이 사직한다는 이야기는 들었으나 실제로 젊은 나이에 의원면직하는 선생님을 보지는 못했다. 나도 그 선생님과 같은 15년 차인데 당장이라도 그만두고 싶은 마음을 다독이고 억누르고 다시 생각해 보는 그 과정들을 거치며 꾸역꾸역 버티고 있다고 여겼는데 그녀는 너무 당당했고 홀가분해 보였다. 사실 내가 교사를 그만두고 무얼 할 수 있을지, 아니 살면서 전부라고 여긴 체육 관련된 일을 하면서 내가 이곳을 나가 보호받을 수 있을지 그게 너무 두려웠다. 17세에 육상선수를 그만두었을 때 이미 한번 경험해 본지라 더 그랬을지도 모른다. 그러던 내가 요즘은 정말 용기를 내고 싶은 일이 있긴 하다. 나의 삶을 돌아봤을 때 정말 항상 꾸준히 하는 일이 뭔가, 지치지 않고 질리지 않는 일이 뭔가 생각해 보니 그것은 패션 관련 뉴스를 찾거나 카페, 온라인, 쇼핑몰을 돌아다니며 쇼핑하거나 사지 않아도 그것들에 관해 탐구하는 것이었다. 그래서 나의 인생 2막을 연다면 빈티지 가게를 하고 싶다. 가게가 아니더라도 1인 방송, 또는 온라인 장터에서라도 일을 벌여보고 싶다. 그런데 사실 엄두가 나지 않는다. 돈과 시간만 주어진다면 얼마든지 할 수 있겠지만 이 일이 단지 물건이 있고 가게가 있고 해서 되는 일이 아니라는 걸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빈티지는 내가 하나하나 선택하고 거래처를 수소문하고 또 발로 뛰고 몸을 던져야 가능한 일이다. 그 일을 인생 중반을 넘어선 내가 과연 해낼 수 있을까. 앞으로의 나의 길이 어떻게 전개될지 나도 궁금하다. 그리고 언젠가 용기가 생겨서 정말 얼마 안남았으니 홀가분하게 의원면직 아닌 명예퇴직을 하게 되는 날, 이곳에도 그 소식을 글로 전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