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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Gozetto Feb 02. 2023

어쩌면 우린 헤어졌는지 모른다 단상

용산. CGV. 어쩌면 우린 헤어졌는지 모른다.

* 스포일러가 있을 수 있습니다.


아마 요즘 본인의 상황과 비슷하다 느껴 잘 만들지 못했다 생각하면서도 계속 공감이 가고 눈길이 간 영화이다. 이민기-김민희 배우의 <연애의 온도>가 직장인 커플의 이야기를 전체 남녀 연애로 확대하면서 공감을 불러일으켰다면 이동휘-정은채 배우의 <어쩌면 우린 헤어졌는지 모른다>는 백수 남자와 서포터 여자 커플의 이야기를 전체 남녀 연애로 확대한다. 최근의 한국 사회상과 견주면 전자보다 후자가 훨씬 현실적이라고 할 것이다. 그리고 이는 이 영화의 장점이자 단점이기도 하다.


준호와 아영의 이야기를 전하는 데 있어서 영화는 관객에게 "너도 알지?"라고 말하는 듯하다. 학부 때부터 졸업 이후 30대까지 긴 시간을 연인으로 보낸 둘의 이야기 중 관객이 보는 이야기는 둘의 관계가 거의 끝나가는 시점이다. 왜 이 둘의 관계가 망가져 여기까지 왔는지를 관계가 거의 끝나가는 시점의 일로만 함축적으로 보여준다. 남자친구의 고시를 뒷바라지 한다고 꿈도 포기한 여자친구. 간단하게 요약되는 둘의 이야기로 영화는 "이런 커플 너도 알지? 현실이 다 이렇다."하는 듯하다.


그래서 그런지 둘의 과거는 영화에서 직접적으로 드러나지 않는다. 어떻게 만나서 어떤 일이 있었는지 알 수 없다. 그런 게 지금에 와서 다 무슨 소용이냐는 듯하다. 오로지 결말에 도달한 둘의 상황에 집중해 관계를 끝내고 싶어도 서로에게 책임을 미루는 모습에 집중한다. 그러다 보니 묘하게 대화가 치고 빠지는 것이 아니라 질질 끌린다. 영화적 대사보다는 현실적 대화 같다. <연애의 온도>가 직장인 다큐멘터리를 삽입해 둘의 과거와 갈등을 영화적으로 풀어낸 것과 다르다. 준호와 아영의 갈등은 지극히 사적이라 현실적으로 다가온다.


하지만 사적인 만큼 현실적인 둘의 관계는 공감은 가도 이입은 안 된다. 이 커플의 전사를 모르는 이상 고시에 집중하지 못하고 회피하는 준호를 마냥 욕하기도, 관계를 끊을 용기는 없어 회피하는 아영에게 마냥 실망하기도 쉽지 않다. 현실적이기에 "너도 알지?"에 "알지, 알지."라고 할 수는 있을지언정 "아니 어떻게 그런 식으로 행동해? 너가 너무 고생했다."라고 하기는 어렵다. 그렇기에 너무 현실적이라 오히려 영화적이라는 느낌도 든다. 표면적인 공감을 원하는지 심적인 공감까지 원하는지 갈팡질팡하는 영화의 태도는 관객도 갈팡질팡하게 한다.


큰 틀에서 이 영화를 어떤 자세로 받아들여야 하는지 어렵다. <연애의 온도>처럼 헤어짐과 만남을 반복하는 연인의 모습을 웃으면서도 현실적이라 씁쓸해하고 그럼에도 '그래, 연애는 진흙탕이라 좋은거지.'라고 느끼며 이입하기에는 질질 끌리는 현실에 지치는 느낌이다. 현실적이기에 눈쌀을 찌푸리기도, 흐뭇하게 웃기도 하며 공감이 안 되는 것도 아니다. 현실인지 영화인지 분간이 안 되는 사랑의 애매모호함을 보여주는 것이 목적이었으려나. 공감하는 만큼 이입하지는 못한 것이 아쉬울 따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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