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Gozetto May 21. 2024

하이큐!!: 쓰레기장의 결전 단상

코엑스. 메가박스. 하이큐!!: 쓰레기장의 결전

* 다른 텍스트의 한 줄 평들이 궁금하시다면 왓챠피디아(Gozetto)나 키노라이츠(Gozetto1014)를 보시면 됩니다.


서로를 이어주는 도움 닫기에 날지 않을쏘냐(4.0)

하이큐 팬이라면 누구나 기다리던 순간이자 가장 아쉬운 순간이며 무엇보다 만족스러운 영화일 것이다. 아직 원작을 읽지 않아 이런 말을 하는 것이 웃기지만 지금까지 나온 애니메이션 시리즈를 다 보고 느낀 것은 하이큐의 서사가 뭔가 미완성이라는 느낌과 함께 그렇기에 더더욱 매력적이라는 점이다. 카라스노 VS 시라토리자와 전 이전과 이후를 보면 '작가 양반이 우선 시라토리자와전 까지만 생각했나 보다' 혹은 '애초에 시라토리자와전까지만 생각했나 보다'라고 생각할 정도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완성도가 낮다고 느껴질 이 애니메이션이 계속 눈에 밟히는 이유는 불광불급(不狂不及)의 인물들이 보는 이로 하여금 가슴에 다시 불을 지피기 때문이다. 좋아하는 무언가에 미쳐본 혹은 인생의 순간에 미쳐본 적 없는 이라면 누구나 하이큐에 답하게 된다. 잊었던 혹은 없다고 생각했던 불씨 혹은 잔불을 불태워 자신만의 열정으로!

이번 극장판도 마찬가지이다. 히나타와 켄마의 관계는 "한 번 더!"가 없는 최후의 한 판에 얼마나 몰입하는가로 요약할 수 있다. 히나타는 이미 말할 필요 없이 코트 위 몰입왕이다. 매 경기를 다시 없을 승부로 생각하며 끝날 때까지 코트를 누비는 히나타는 이름처럼 코트를 비추는 태양이다. 하지만 이번 극장판에서 더 눈여겨봐야 하는 것은 켄마이다. 이미 한 번 팀원을 위해 최선을 다하는 자신을 가리켜 그 모습을 근성이라고만 표현하는 것에 반감을 보인 켄마를 기억하자. 가능성과 불가능성을 저울질하는 자신만의 방식으로 팀을 위해 끝까지 최선을 다하는 켄마는 누구보다 근성이 있는 배구선수이자 게이머이다. 그런 켄마가 히나타에게만 보이던 흥미를 카라스노와 벌이는 쓰레기장의 결전에 재미있다고 말하는 장면. 켄마의 혼잣말과 같은 단말마에 히나타가 무려 "좋았어!"라고 3번이나 코트와 경기장을 가득 메우는 메아리로 채우는 장면. 두 장면의 연결로 집약된 이 극장판은 미치도록 뜨거워 극장 좌석에서 똑같이 화답하고 싶었다. 좋았어!


하지만 그렇기에 아쉽기도 하다. 시라토리자와전처럼 한 시즌으로 구성되었다면 카라스노와 네코마의 선수들이 어떤 심정으로 경기에 임하는지를 더 면밀히 들여다보며 경기의 매순간에 천천히 하지만 더 뜨겁게 화답할 수 있었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히나타와 켄마의 우연한 만남에서 시작한 영화의 서사는 히나타와 켄마 외에 다른 선수들의 서사를 히나타와 켄마의 관계를 위한 일종의 배경처럼 활용한다. 켄마와 쿠로오의 관계든, 히나타와 카게야마의 관계든, 쿠로오와 츠키시마의 관계, 야마구치의 열정 가득 서브 스토리, 카라스노 3학년 3인방, 네코마 3학년 3인방 등. 84분의 극장판만으로는 다 풀어낼 수 없을 정도의 수많은 서사가 히나타와 켄마의 서사를 위한 배경으로만 사라진 기분이다. 단순 배경이 아니라 태피스트리의 한 부분을 차지할 수도 있는 이야기라 더욱 아쉽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번 극장판이 관람하는 중에는 위의 아쉬움을 다 잊을 정도로 강렬한 몰입과 감동을 선사한 것도 분명하다. 그렇기에 마냥 아쉬워만 하며 느낀 감동들을 휘발시킬 시간도 아깝다. 삶에 한 순간을 스쳐지나가는 어떤 바람으로 이 영화를 놔두고 싶지 않다. 이따금 떠오르면 그 때의 감동을 곱씹으며 잠깐이라도 좋으니 잊었던 불씨를 타오르게 할 바람으로 이 영화를 기억하고 싶다. 언제고 어떤 순간이 너무 즐거워 끝났다는 사실도 잊고 "재미있어"라고 말하고 싶다. 그런 스스로에게 기꺼운 마음으로 "좋았어!"라고 외치고 싶다. 그런 순간을 상상하게 한 이 영화가 좋다.

P.S. 그냥 하이큐를 봐라. 그리고 OST <Orange>를 번역해 자막 작업을 하지 않은 것은 진짜 이 영화를 본 관객 모두에게 사죄해야 하는 일이다. 가장 큰 옥의 티 중 하나이다.

매거진의 이전글 악은 존재하지 않는다 단상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