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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Gozetto Dec 13. 2021

아름답게 포장된 리즈 시절에 대한 향수

영등포 CGV. 프렌치 디스패치.

누구에게나 인생에서 돌아가고 싶은 순간 즉 리즈 시절이 있다. 떠올리기만 해도 괜히 미소가 지어지기도 하고 이불킥을 하고 싶어지도 하는, 그런 이상야릇한 시기. 인생에서 어느 한 순간이 그만큼 강렬하고 행복했다는 의미이니 리즈 시절이 있다는 것은 그만큼 행복한 인생이라는 것의 반증일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다르게 생각해보면 리즈 시절을 그리워 하는 것은 현재의 삶에 만족하지 못한다는 것을 보여주기에 슬프기도 하다.  자매품 "라떼는 말이야..."와 함께 리즈 시절을 말하는 것은 현재가 자신이 생각하는 이상적인 삶에 근접하지 않았다는 것을 뜻하기 때문이다. 즉, 리즈 시절은 현재에 대한 불만이자 과거로 회귀하고자 하는 욕망이다.


과연 과거는 현재보다 좋은 세상이었나? 리즈 시절은 그 시절이 현재와 비교해 너무나 아름답기 때문에 돌아가고자 하는 것이다. 그 시절로 돌아가기만 하면 현재의 모든 문제가 해결될 것이니 말이다. 그러나 과거에도 지금과 비슷한 문제가 다른 모습으로 존재했다. 오히려 불편하다면 더욱 불편한 삶만이 존재할 뿐이다. 간단한 예로 명작이라 평가 받은 <WOW>의 클래식은 출시 이후 "추억의 게임이 돌아왔다."는 평가와 "추억은 추억으로만 남겨둬야 한다."는 평가가 함께 나오고 있다. 과거가 현실에 나타나면 잠시 기쁘지만 현재에 익숙한 인간에게 과거는 잊고 있던 불편한 점들을 꺼내놓을 뿐이다. 인간은 한 순간에 머무는 존재가 아니라 시간의 흐름을 타고 나아가는 존재인 것이다.

출처. 다음 영화

웨스 앤더슨 감독의 <프렌치 디스패치>도 이와 같은 지점을 명확히 보여준다. 미국 캔터키 출신인 아서 하워츠 주니어를 중심으로 정치, 예술, 대중문화 등 다양한 분야의 최고 집필진이 활동하고 있는 <프렌치 디스패치>는 상당히 잘 나가는 주간지다. 잘 나가는 주간지 <프렌치 디스패치>가 전하는 20세기 초 유럽의 모습은 낭만적일 뿐만 아니라 온갖 아름다움으로 가득하다. 웨스 앤더슨 감독 특유의 강박적인 대칭 화면 구조 혹은 몬드리안식 화면 구조가 여기서 빛을 발한다. 대칭 화면 혹은 몬드리안식 화면은 보기에는 굉장히 아름답다. 질서와 비율이 주는 아름다움은 마치 과거 20세기 초 유럽이 우리가 따라야 하는 온갖 아름답고 이상적인 가치로 가득한 시절이라고 말하는 듯하다.

출처. 다음 영화

하지만 <프렌치 디스패치>가 전하는 20세기 초 유럽의 모습은 사실 아름답게 포장되어 있을 뿐이다. 예술가의 예술관은 자본주의의 돈으로 환산되며 부자들에 의해서 이미지만 향유될 뿐 실제로는 아무도 그 예술관을 이해하지 못하고 하려고 하지도 않는다. 심지어 예술가는 자신의 폭력성을 예술성으로 둔갑해 행동하고 아무도 그의 폭력성을 문제 삼지 않는다. 정치 혁명을 통해 세상을 변혁하려는 학생들은 사실 혁명 의식이라고는 쥐뿔도 없다. 그저 혁명을 하는 자신들의 모습이 쿨해 보일 뿐이고 그런 서로의 모습에 취해 있을 뿐이다. 사회 상류층이 즐기는 고급 요리는 아무에게도 제대로 인정 받지 못하고 차별 받았던 이민자 요리사에 의해 만들어지고 있다.

출처. 다음 영화

<프렌치 디스패치>라는 잡지사 자체도 마찬가지다. <프렌치 디스패치>는 가상의 프랑스 도시 블라제에 위치해 있지만 집필진이 항상 원하는 방향으로 글을 쓰게 하는 아서 하워츠 주니어의 방침으로 세계에 50만 명의 구독자를 있을 정도로 잘 나간다. 단순히 집필진의 자유를 보장해주는 것만이 아니라 환경도 신경 쓰면서 글을 제 때 마무리 못하는 집필진은 내버려둔다. 가만히 내버려두면 알아서 좋은 글을 써올 것이라는 믿음이 있기 때문이다. 편집진과 소통하며 잡지의 글들을 편집하고 그 달 잡지의 방향성을 잡아나가는 편집장 아서의 모습은 다른 사람의 의견을 경청하는 장인의 모습이다.

출처. 다음 영화

실상은 조금 다르다. 아서 하워츠 주니어는 집필진에게 은근히 압력을 넣으며 자신의 입맛에 맞지 않은 내용을 바꾼다. 조금이라도 저속하거나, 자신의 생각에 재미가 있는 부분이 빠졌거나, 자극적인 면이 조금 부족하다거나. 다양한 이유로 집필진의 글은 편집 당한다. 편집진과 소통하며 잡지의 방향성을 잡아간다는 것도 사실은 편집진에게 들어오는 질문에 아서 자신이 결정을 내리는 것뿐이다. 타인의 의견에 경청하는 것이 아닌 무소불위의 권력자일 뿐이다. 그런 권력자의 눈에 조금만 어긋나도 직원은 그 자리에서 바로 해고된다.


다양한 색채로 꾸며진 질서와 비율의 아름다움은 낭만과 아름다움으로 가득해 보이는 20세기 유럽의 실상과 아서의 권력성을 가린다. 마치 <미드나잇 인 파리>와 같다. 아름다운 파리의 밤 거리를 걸으며 만나는 과거 유럽의 황금기는 수많은 아름다움으로 현재의 우리를 유혹한다. 하지만 실상 그 황금기에는 여전히 문제점이 많고 심지어 오늘날보다 더 큰 문제점들이 있다. 그럼에도 우리는 현재에 만족하는 것이 아니라 과거로 돌아가려고 한다. 마치 과거의 황금기로 가기만 하면 현재의 모든 문제가 해결될 것이라고 생각하듯 말이다. 하지만 과거로 계속 회귀하는 것은 어디에도 만족하지 못한 채 계속 다른 과거를 원할 뿐이다.


<프렌치 디스패치>의 장면 구성도 관객들에게 말을 건다. 이 시기가 아름다워 보이는 것은 그저 겉만 그럴 뿐이라는 것을. 이 시기가 지금 아름답게만 보이는 당신들은 정말 이 시기로 돌아와서 살고 싶은지를. 물론 과거의 시기는 현재에는 없는 낭만과 추억이 존재한다. 보기만 해도 취할 것 같은 아름다운 색채와 질서는 과거로 돌아오라고 손짓한다. 하지만 보다시피 그 색채와 질서 뒤에 있는 현실은 오늘날과 별반 다를 것이 없다. 자본에 의해 쥐락펴락 되는 문화, 젊음을 빌미로 자신들의 행동에 책임을 회피하는 세대, 수없이 존재하는 차별과 혐오를 애써 무시하는 현실. 어쩌면 문제의 양태만 바뀌었을 뿐 문제의 본질은 과거나 현재나 하나도 바뀌지 않은 것인지 모르겠다.

출처. 다음 영화

하지만 이런 문제의 본질에서 우리가 벗어나지 못하는 것도 아니다. 어딜 가나 차별 받던 이민자 요리사가 독을 맛보던 순간을 짜릿하게 여기며 독보다 차별 받던 때를 두려워할 때 그의 손을 잡아주며 자신도 똑같은 현실에서 버티고 있다 말하며 연대의 손길을 내밀 수 있다. 갑작스럽게 죽은 독재 편집장 아서를 추모하며 그의 과거를 함께 글로 구성하며 새로운 미래를 준비할 수도 있다. 손을 내밀어 연대하고 함께 과거를 구성하고 반추하며 미래로 나아가기 위해 무엇을 준비할 수 있을지 생각하는 것. 과거부터 똑같은 실수를 반복한다 해도 언제나 있는 가능성을 좇는 것이 지금까지 우리가 존재할 수 있었던 방식인 것이다.


리즈 시절은 아름답다. 20세기 유럽, 1990년대 한국, 1980년대 일본 등 장소만이 아니라 첫 사랑, 가장 잘 나간 전성기 등 누구에게나 돌아가고 싶은, 아름다운 리즈 시절이 존재한다. 하지만 리즈 시절을 돌이켜 본다는 것은 어쩌면 아름답게 칠해진 과거의 색을 하나 둘 벗겨내며 직면해야 하는 실상을 바라보려는 노력일지도 모르겠다. 그 시절이 아름다울 수 있던 이유는 무엇인지 고민하고 현재에서는 연대하며 함께 과거를 구성해 나아갈 미래를 그리는 것. 단순히 과거의 색채와 질서로 회귀하는 것이 아니라 모두가 과거, 현재, 미래를 관통하는 하나의 이상향을 고민하며 연대할 때 아름답게 포장된 리즈 시절에 대한 향수는 가치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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