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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Gozetto Dec 25. 2021

주제의 성장과 세계관의 성장을 맞춰야 하는 이유

Netflix. 비스타즈 시즌 1기&2기.

* 스포일러가 있을 수 있습니다.


욕망의 관점에서 육식동물과 초식동물의 관계는 끊어질래야 끊어질 수 없다. 욕망은 '나'에게 결핍된 무언가를 타인에게서 발견하고 바라는 것이다. 즉, 육식동물은 태생부터 초식동물을 갈구하고 초식동물은 태생부터 육식동물에게서 벗어날 수 없다. 쫓고 쫓기는 이 둘의 관계는 한쪽의 일방적인 집착처럼 보인다. 하지만 일방적인 집착은 영원할 수 없다. 집착하는 주체는 자신의 권력으로 집착하는 대상을 파괴하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 육식동물이 육식을 포기하면서 살 수는 없다. 하지만 육식동물이 육식을 포기하면서 공존하는 것은 애초에 불가능한 전제이다. 불가능한 전제로 시작하는 이야기는 가시밭길일 뿐이다. 가시밭길을 버티면서 끝을 보기 위해서는 불가능한 전제에 적절한 상상력을 발휘하고 그 상상력이 너무 커지지 않게 잘 붙잡고 있어야 한다.


불가능하다고 하면 하고 싶은게 인간이라고, 넷플릭스의 <비스타즈>는 이 불가능한 전제에 손을 댄다. 이 불가능한 전제를 손댄 것이 <비스타즈>가 처음은 아니지만 이토록 도발적으로 도전하는 것은 <비스타즈>가 처음일 것이다. 비슷한 설정인 <주토피아>가 어린이를 대상으로 하는 우화를 기반으로 현실의 생태계에 대한 설정을 가져가되 설정을 귀엽게 포장한다면 <비스타즈>는 어른을 대상으로 하는 군상극을 기반으로 현실의 생태계에 대한 설정을 그대로 가져가면서 서로를 갈구하면서도 두려워하는 동물들의 심리를 깊이 있게 다룬다. 집착하게 되는 대상에게 집착하지 말아야 하며 두려워 해야 하는 대상에게 두려워 하지 말아야 하는 상황. 이런 상황에서 육식동물 학생이 초식동물 학생을 잡아먹는 식살(食殺) 사건이 육식동물과 초식동물이 함께 다니는 체리톤 학원에서 발생하고 그 와중에 늑대 레고시는 토끼 하루를 좋아하는 초유의 사태가 발생한다. 어느 이야기든 혈기왕성한 젊은 학생들이 사건사고를 일으키는 법이다.

출처. 넷플릭스 공식 사이트

안 그래도 식살 사건의 피해자가 친구라고 생각했던 알파카 테무였기에 레고시는 서사적으로 식살 사건과 연결되어 있다. 여기에 토끼 하루를 놓고 학원 내에서 가장 명망 높고 동물들의 리더인 비스타(Beastar)가 될 것이라 여겨지는 회장인 사슴 루이와 삼각 관계까지 맺고 있다. <비스타즈>의 서사는 레고시를 중심으로 하루, 루이가 양 날개인 것이다. 이들의 관계는 어딘가 기묘하다. 같은 초식동물이지만 이종인 하루와 루이의 관계도 파격이지만 아예 포식자와 피식자인 레고시와 하루의 관계는 파격을 넘어 불가능이다. 파격은 가능하기라도 하지만 불가능은 말 그대로 불가능이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비스타즈> 1기는 삼각관계가 1대1 관계로 변화하면서 초식동물과 육식동물이 서로 공존하기 위해서 필요한 가치를 제시한다. 피식자인 하루에게 느끼는 감정이 포식자의 감정인지 정말 사랑하는 감정인지, 사랑의 경쟁자이지만 존경할 뿐만 아니라 소심한 자신을 변화시켜준 선배 루이를 향한 감정은 애증을 넘어선 감정인 듯하다.

출처. 나무위키

복잡한 감정 속에서 레고시는 육식동물인 자신이 초식동물인 하루를 사랑하기 위해서는 육식 본능을 억제해야 하기 때문에 억제하는 것이 아니라 하루를 사랑하기 때문에 억제해야 한다는 것을 깨닫는다. 어딘가 나사가 빠진 듯한 동물 세계는 하루를 피식자가 아닌 동등한 존재로 보기 위해 육식 본능을 성찰하는 레고시의 자기 성찰과 그런 성찰의 모습에서 스스로 변화하려는 하루의 자기 성찰을 통해 사랑이라는 가치로 공존을 위한 방안으로 제시하는 것이다. 이런 레고시의 변화와 성찰을 기반으로 <비스타즈> 1기는 불가능할 수도 있는 서사를 적절한 상상력으로 사랑이라는 감정이 적절한 대안이라는 점을 관객에게 설득하는 듯하다. 얼굴을 제외하면 사실상 몸은 성인 인간의 몸을 가지고 있는 일본 수인물의 컨셉에 인간의 몸이 지닌 육체성이 부각되는 연출은 불편하게 느껴질 수 있지만 어느 정도의 단점을 잠시 제쳐두면 주제와 상상력을 상당히 적절하게 붙이고 있다.

출처. 넷플릭스 공식 사이트

그러나 2기에 오면서 상상력의 범위를 주제가 감당하지 못하는 지경까지 왔다. 2기는 시작부터 잘못 끼워진다. 초식동물과 육식동물의 공존을 위해 사랑이 필요하다는 주제는 2기에 오면서 레고시와 루이 각각의 성장에 초점을 맞춘다. 서사 전개에서 인물의 성장은 중요하다. 하지만 <비스타즈>의 주제는 포식자와 피식자의 공존을 위해서는 사랑이 필요하다는 것이기에 인물 각자가 혼자 성찰하면서 성장하는 것이 아니라 서로를 미친듯이 원하고 부딪히면서 성장해야 한다. 1기에서 서사의 원동력이 된 레고시-하루-루이의 삼각관계는 인물들이 서로의 마음을 확인하고 경쟁하면서 불명확했던 마음을 서서히 명확하게 잡아가게 했고 결국 레고시-하루가 이어진다. 하지만 2기에서는 이렇게 이어진 레고시-하루가 함께 움직이지 않는다. 오히려 레고시-루이 각각에게 초점이 맞춰지면서 서사에서 중요한 하루는 거의 사라지다시피 한다. 레고시와 루이는 각각 체리톤 학원과 암시장에서 자기들이 알아서 성장에 도달한다.

출처. 넷플릭스 공식 사이트

물론 레고시와 루이에게 초점이 맞춰지면서 식살범, 사자회 간부들, 새로운 연극부원 등 새롭게 부각되는 인물들로 서사가 채워지면서 공존을 위해 사랑이 필요하다는 주제도 부각되는 듯하다. 하지만 레고시와 루이 모두 공존이 필요하다면서 노력은 혼자서 한다. 함께 할 수 있는 친구와 동료가 옆에 있음에도 서사는 레고시와 루이가 친구와 동료에게 도움을 청하지 못하게 하고 각자가 홀로 노력해 자신들이 원하는 이상에 도달하도록 한다. 레고시는 하루와 만나지도 않으면서 혼자 식살범을 찾아 체포하기 위해 육식을 끊고 강해지려고 노력하고 루이는 불법 고기를 납품하던 사자회를 상인과 정당한 거래를 수호하는 회로 탈바꿈해 새로운 권력으로 부상한다. 1기부터 서로에게 기묘한 애증을 갖고 있던 이 둘은 각자의 성장에도 크게 관여하지 않고 계속 애증하기만 한다. <비스타즈> 2기는 두 인물이 각자 노력해 성장하고 그저 감정적 유대만 유지하게 한다. 어느 순간 공존을 향한 성장물이 아니라 한 개인의 성장물이 된다.

출처. 넷플릭스 공식 사이트

<비스타즈> 2기는 레고시와 루이를 영웅화하면서 세계관만 키우고 주제는 그대로 내버려둔다. 육식을 하지 않고 이해와 사랑으로 초식동물과 공존하겠다던 레고시는 식살범과 대결을 앞두고 단백질을 섭취하기 위해 곤충을 먹다가 난데 없이 나방의 영혼에게 훈육 당하면서 생명에 대한 경의를 가져야 함을 깨닫는다. 심지어 결국 식살범과 대결에서 승리하기 위해 자신을 이해하고 찾아와 다리를 내어주는 루이의 다리를 먹는다. 커져가는 세계관에 주제가 뒤쳐지면서 <비스타즈> 2기는 기형적인 결말에 도달하는 것이다. 곤충을 먹어도 되고 생명에 대한 경의를 가지고 루이의 다리를 먹어도 된다. 뭘 해도 되는데 적어도 그 사이 과정은 인물 간 관계에 의해 더 치열하게 진행돼야 했다. 레고시는 하루와 연애를 하면서 함께 식살범을 뒤쫓아야 했고 루이는 초식동물의 약함이라는 이미지를 권력으로 뒤집기 위해 사자회를 포기하면서 레고시를 찾아와서는 안 됐다. <비스타즈> 2기의 서사는 1기와 마찬가지로 하루-레고, 루이가 함께 부각되어야 했다.

출처. 넷플릭스 공식 사이트

이루어지기 어려운 사랑. 서로에 대한 이해. 상대방에 대한 경의. 전부 좋다. 하지만 이 앞의 소재는 모두 관계에 기반해 있다. 인물 각자에게 가장 중요한 관계에서 인물들은 상대를 원하고 바라고 경쟁하면서 함께 깨달음을 얻고 다음 단계로 나아간다. 혼자 성장하는 인물은 뒤쳐진 주제를 비슷한 위치로 끌고 오기 위해 무리한 도약을 할 수밖에 없다. 한 개인이 성장해 공동체의 공존으로 나아갈 수도 있다. 하지만 인물 개인의 성장이 자기 혼자의 노력을 중심으로 진행된다면 성장의 주체를 제외한 다른 모든 인물은 주체를 위한 도구가 된다. 성장 서사에서 성장의 주체를 제외한 다른 인물은 어느 정도 주체를 위한 도구이지만 이들도 함께 성장해야 세계관이 성장하는 것에 맞게 주제도 성장할 수 있다. 인물이 혼자 성장하고 그것만 부각되면 세계관만 웅장해지고 주제는 뒤쳐진다. 어려운 소재에 정면으로 부딪히는 <비스타즈>의 여정이 용기가 아닌 만용으로 끝는 이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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