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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Gozetto Dec 09. 2021

꽃과 같은, 같은 곳을 바라보며 걷던 이의 흔적

네이버 Series on. 꽃다발 같은 사랑을 했다.

꽃처럼 아름답지만 영원하지 않은 사랑을 우리는 항상 바란다. 누군가를 사랑하는 순간은 그와 함께 하며 일치하는 순간이고 그 순간은 어느 때보다 행복감으로 충만하기 때문이다. 즉, 사랑은 서로 차이점으로 꽉찬 수많은 존재자들 사이에서 '나'와 비슷하다 못해 일치하는 듯한 '그' 누군가를 만나는 행위이다. 하지만 사람은 모두 다르기 때문에 어느 순간 일치감은 신기루처럼 사라지고 낯섬과 혐오의 순간이 부지불식 간에 찾아온다. 상대방이 바라보는 곳을 바라보며 함께 나아가는 것이 사랑이라고 하는데 언제 같은 곳을 봤는지 알 수 없어지는 것이다. 그렇게 이별이 찾아오고 다시는 사랑을 하지 않겠노라고 마음을 다잡는다. 그러나 <꽃다발 같은 사랑을 했다>에서 밝히듯 사랑은 끝이나도 완전히 사라지지 않는다. 새로 사랑하게 될 그 누군가를 만날 때 이전의 사람은 자기 안에서 흔적으로 남아있으니 말이다.

<꽃다발 같은 사랑을 했다>의 야마네 무기와 하치야 키누는 정말 기적처럼 5년의 사랑을 시작한다. 같은 날, 같은 역에서 막차를 놓치고 술집에서 밤을 지새우던 중 일본 영화계의 거장을 본 다음 영화 얘기를 하다가 서로 취향이 비슷하다 못해 거의 완벽히 일치하는 누군가를 만날 확률이 기적이 아니라고 할 수 있을까? 심지어 고백을 하고 관계를 시작하는 과정도 기적과 같다. 썸을 타며 상대방의 마음을 몰라 안절부절 못하다 세 번째 만난 날 카페에서 잘못 나온 파르페를 찍는 척하며 핸드폰으로 서로를 바라보다 용기를 내 키누를 바라보며 무기가 고백하자 무기를 바라보며 사랑을 받아주는 키누. 그 때 파르페가 잘못 나오지 않았다면. 그 때 핸드폰으로 서로를 바라보지 않았다면. 그 때 용기를 내지 않았더라면. 이처럼 무기와 키누는 만남부터 시작까지 모든 것이 기적과 같았고 함께 하는 모든 순간이 아름다운 사랑을 한다.

같은 책을 읽으며 서로의 감상을 듣고 여행을 가도 항상 서로 옆에 있기를 바라며 아르바이트를 마치고 함께 사는 집까지 강변을 따라 걸으며 커피를 마셨다. 이들에게 사랑하는 순간은 같은 곳을 바라보며 서로가 비슷하다는 걸 느끼는 일치의 순간이다. 서로를 바라보고 있지만 사실은 서로의 안에서 자신의 모습을 보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항상 위기는 외부에서 다가오고 사랑의 위기는 잊고 있던 현실에서 온다. 항상 같은 곳을 바라보며 영원히 사랑할 것만 같던 이들에게 현실은 서서히 낯섬과 혐오의 순간을 무기와 키누에게 들여온다. 키누는 대학 졸업을 앞두고 취업 전선에 나서지만 취업에는 계속 실패하고 무기는 일러스트를 그리며 생활을 영위하지만 일러스트의 단가는 점점 떨어진다. 사랑을 지키기 위해 현실을 직시하며 어른이 된다는 이유로 취직을 하지만 취직 후에는 같은 곳을 바라보는 것도 힘들다. 간신히 서로를 바라보는 순간이 왔을 때 보이는 것은 자기 자신이 아니라 상대방이 보인다.

키누와 더 오래 함께 하고 싶다는 생각으로 직장 생활을 견디는 무기와 무기가 과거처럼 자신의 꿈을 좇길 바라며 자신이 하고자 했던 기획 일을 시작한 키누. 둘은 더 이상 같은 곳을 바라보지 않는다. 무기는 미래를 바라본다는 이유로 키누를 신경쓰지 않고 키누는 과거를 유지하는 것이 미래로 나아가는 길이라 생각해 무기를 이해하지 못한다. 함께 가던 노부부의 빵집이 사라진다는 키누의 말에 무기는 짜증을 내고 키누는 무기의 짜증에 실망할 뿐이다. 누군가는 이 둘이 대화를 했더라면 조금은 바뀔 수 있지 않았을까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대화를 해서 나아진다기 보다는 대화로 서로가 다르다는 것을 더 알게 될 뿐이다. 오히려 이 둘에게는 대화 자체보다 서로가 다르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그 다름을 어떻게 사랑할 것인지 생각할 시간이 필요했다. 서로가 다름에 실망하고 슬퍼하기만 하는 사이 둘은 더 이상 건널 수 없는 다리를 건너고 만다. 가까운 선배의 죽음에 서로 다른 애도의 깊이를 보이는 상대방에게 "아무래도 좋았다."라 말하는 둘은 이별을 생각하는 듯하다.

하지만 5년의 사랑이 끝나간다고 무기와 키누에게 아무런 의미가 없는 것이 아니다. 서로 같은 곳을 바라보다 다른 곳을 바라보는 5년이라는 시간은 각자의 몸과 마음에 다양한 흔적으로 남아 있다. 무기와 키누는 친구의 결혼식에서 서로에게 "행복하게 지내!"라고 말하며 이별을 고할 것이라 말하고 식장을 나오는 친구 부부에게 "행복해라!"라고 말한다. 5년이라는 시간을 이전의 모든 순간을 무의미하게 만드는 끝이 아니라 서로에게 흔적을 남긴 과정으로 생각한 것이다. 물론 미래를 바라보던 무기와 과거를 유지하려 한 키누는 서로에게 처음 사랑을 고백한 카페에서 아직 자신들에게 기회가 있을지도 모른다 생각한다. 하지만 기회가 있을지도 모른다 느끼는 감정은 둘 사이 사랑의 감정은 다 타버리고 그 재에 남은 온기일 뿐이다. 자신들이 고백했던 자리에 다른 커플이 자신들과 비슷한 과정을 거치며 사랑을 고백하는 것을 보고 무기와 키누는 깨닫는다. 자신들과 비슷한 커플만큼의 감정이 남아 있지 않은 자신들이 타버린 재의 온기를 유지하려면 할수록 힘들 뿐이기에 둘은 이별을 맞이한다.


서로에게 이별을 고하고 함께 살던 집에서 짐을 정리하며 무기와 키누는 이별을 준비하며 바쁜 와중에 읽지 못했던 책을 함께 읽고 밀크티를 마시며 소소하게 대화를 나눈다. 사랑한다고 느꼈던 때에는 하지 못했던 서로의 다름을 하나 둘 인정하고 남아 있는 감정을 정리하는 것이다. 하지만 이 정리가 감정을 완전히 잊는다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5년 동안 쌓인 감정을 하나 하나 몸과 마음에 새기는 것이다. 둘은 헤어지고 1년 후 어느 날 서로 다른 사람과 데이트를 하던 중 우연히 서로를 보게 된다. 당황스럽지만 아련한 감정을 느끼는 와중에 둘은 데이트 하는 사람과 걸어가며 서로가 모르게 서로에게 가볍게 손인사를 한다. 이별할 때 하지 못했던 "행복하게 지내!"라고 말을 전하는 것이다. 헤어진 뒤 둘은 서로가 함께 했던 순간을 떠올리며 과거를 생각해본다. 그리고 무기는 구글맵에서 키누와 사랑하며 함께 살던 시기 손을 잡고 노부부의 빵집을 가는 둘의 모습이 찍혀 있는 모습을 발견한다. 사랑은 끝이라 하여 잊히는 것이 아니라 사랑하던 시기의 감정과 모습이 자신에게 흔적으로 남아 있다.

누군가를 사랑한다는 것은 기적과도 같은 행운이다. 알랭 드 보통은 <왜 나는 너를 사랑하는가>에서 사랑이 엄청난 확률을 뚫어야 가능한 기적이라 말한다. 생각해보면 100명의 사람이 있다면 최소 100개의 개성이 있다 할 정도로 우리는 서로 너무나 다르다. 그렇게 다름에도 누군가에게 사랑을 느끼고 연인으로 발전한다는 것은 정말 엄청난 기적이다. 하지만 사랑은 꽃과 같다. 꽃은 시각, 촉각, 후각 등 수많은 감각들이 한데 어우러지며 아름다움을 뽐내지만 화무십일홍이라 영원할 수 없다. 사랑도 그 어느 관계보다 상대방을 향해 그리움, 애정, 미움, 분노 등 다양한 감정이 소용돌이 치기에 아름답지만 영원할 수 없다. 누군가를 사랑한다면 그것은 끝을 향해 달려가는 여정일지도 모르겠다. 그럼에도 그 끝이 사랑의 끝은 아니다. 은은하게 향을 풍기는 드라이 플라워처럼 같은 곳을 바라보며 걷던 상대방은 어떤 형태로든 흔적으로 남아 있다. 누군가를 사랑한다는 것은 자신의 몸에 흔적을 남기는 것이다. 그 흔적이 풍기는 향기에 우리는 고통스러울지라도 다른 사람을 사랑한다. 비록 그 사랑이 꽃다발처럼 잠깐 화려할지라도 말이다.


P.S. 영화의 주연인 아리무라 카스미(키누 역)와 스다 마사키(무기 역)는 <콩트가 시작됐다>라는 일드에서 함께 출연하기도 했다. 두 배우의 또 다른 매력을 느끼기에 정말 좋은 일드이기에 한 번쯤 <콩트가 시작됐다>를 보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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