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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Gozetto Dec 03. 2021

연애가 아닌 사랑이라는 목적을 향해

영등포 CGV. 연애 빠진 로맨스.

연애를 약 5년 동안 못한 적이 있다. 5년 동안 연애를 못하다 보면 다양한 심경의 변화가 생긴다. '못 만날 수도 있지.'라며 별 생각이 안 들다가도 '이러다 진짜 연애 못하는 거 아냐?'하는 불안감이 들고 '진짜 누구라도 만나야겠어! 연애 못하고 죽겠어!'라는 공포감이 든다. 첫 반응 때는 연애가 급하지 않고 연애를 한다면 정말 사랑하는 사람과 하고 싶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뒤로 갈수록 사랑이 중요한게 아니라 연애 그 자체가 중요해진다. 외로워서 만나고 싶고. 누군가에게 중요한 사람이 되고 싶고. 사랑해야 가능한 관계가 아니라 그저 누군가와 순간이 즐겁고 잠시라도 아낌 받는 관계를 맺고 싶다.


모순이다. 연애는 사랑이 있어야 가능한 관계 아니었던가? 하지만 사랑을 위한 연애가 아닌 오직 연애 하나만 바라는 경우는 이제 너무 일상이다. 어쩌면 우리 시대가 마음 편히 사랑에만 몰두하는 관계를 봐주지 못하기 때문인가 싶다. 집세, 학자금 대출, 성과를 원하는 직장 상사 등 일상 도처에서 사랑에 몰두하는 순간 "너가 지금 그럴 때니?"하며 이른바 현실로 돌아오게 하는 것이 현재 2, 30대의 현실이다. 그래서 그런지 사랑과 연애라는, 비슷한 두 관계를 조명하며 연애 말고 사랑을 부르짓는 <연애 빠진 로맨스>(이하, <연.빠.로>)가 반갑기만 하다.

출처. 나무위키

흔하다면 흔한 로코 영화 시장에서 <연.빠.로>는 처음부터 끝까지 쿨함과 시니컬함으로 무장하고 유머를 무기로 연애라는 관계를 비웃는다. 연애는 고작 잠깐의 화학 반응에 기반해 서로에 대한 환상으로 만나다가 가면 갈수록 누가 더 중요한지 주연 경쟁이나 하는 것이다. 연애는 안 할수록 행복하다며 인생의 행복을 논하는 취한 함자영은 연애에서 행복을 찾는 이들을 향한 비웃음이다. 부장의 명령으로 섹스 칼럼을 써야 해 만남 어플로 사람을 만나는 박우리는 결국 어떤 목적이 있어야 다른 사람을 만나려고 하는 것이 연애라고 말하는 듯하다. 어떻게 보면 단순히 연애만이 아니라 인간 관계 전체를 비웃는 듯하다.


나아가 <연.빠.로>는 사랑이라는 감정마저도 비웃는 듯하다. 서로 쿨하게 섹스만 하고 연애 같은 거 할 생각하지 말자고 하는 자영과 우리는 만나면 만날수록 쿨하지도 시니컬하지도 못하다. 섹스는 구멍과 기둥이 만나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서로의 몸을 만지며 체온을 느끼고 그 와중에 서로를 향해 소리를 내지르는 행위다. 섹스만이 아니라 타인을 만나는 것은 그 자체로 타인의 육체와 교류하는 것이다. 서로 쿨하게 연애 없이 섹스파트너로 지내기로 한 자영과 우리는 육체와 육체의 만남 속에서 서로 궁금해지고 묻고 답하게 된다. 흔히 말하는 고귀한 사랑은 사실 육체를 기반으로 가능하다.

출처. 경향신문

잠시 제목으로 돌아가보자. 왜 굳이 <연.빠.로>는 연애가 빠진 로맨스를 보여줄까? 분명 연애는 자영과 우리의 관계나 두 사람이 만나는 과정을 보면 어떤 목적이 있어야 한다. 여기서 <연.빠.로>는 연애와 사랑을 분리한다. 그럼에도 연애가 사랑을 위한 수단이라고 보는 현대인에게 <연.빠.로>는 자영과 우리만이 아니라 자영을 이쁘고 착한 줄로만 알았다가 실망하고 차버리는 자영의 전 남자친구, 다른 여자들 만나서 섹스하며 즐기다 마음 맞아 만나면 그게 연애라고 말하는 최마초, 약혼남이 있음에도 우리와 이상야릇한 관계를 원하는 우리의 직장 선배 등을 통해 한껏 비웃어준다. 연애는 절대 사랑을 위한 수단이 아니다. 상대방에게서 뭔가 바라는 목적이 있기에 가능한 것이다.


동시에 <연.빠.로>는 사랑을 비웃는 것이 아니라 사랑과 고귀함을 분리한다. 사랑에는 고귀하다는 이미지가 있어 바로 옆에서 "사랑해."라고 말해도 진정한 사랑을 다른 곳에서 찾는다. 사랑은 절대 흔하지 않고 육체가 아닌 정신으로 어딘가 흠집 없이 완벽하게 아름다운 진정한 사랑이 있을 것이라 믿는 것이다. 오죽하면 사랑을 에로스, 플라토닉, 아가페로 나누며 육체적 사랑을 가장 하위에 놓을까. 하지만 <연.빠.로>는 섹스를 즐기며 만나는 자영과 우리를 통해 사랑은 고귀한 것이 아니라 우리 도처에 있다고 말한다. 자기 주변의 수많은 육체들은 모두 사랑의 가능성이 있으며 그 사랑은 정신이나 마음으로 가능한 것이 아니라 일단 육체와 육체가 서로 부딪혀야 가능하다.

출처. 나무위키

그렇기 때문에 <연.빠.로>는 후반부로 갈수록 무겁다. 육체의 부딪힘보다 정신과 마음을 통해 상대방을 기억하고 감정적으로 대하기 시작하는 자영과 우리는 전반부처럼 튈 수 없다. 자영과 만남을 기반으로 쓴 섹스 칼럼이 대박을 쳐 작가가 될 수 있을지도 모르는 우리에게 자영은 더이상 섹스 칼럼 대상이 아니다. 마음으로 기억나고 섹스 도중 벅차오르는 감정을 주체 못해 "사랑해."라고 말하고 싶은 상대방이다. 자기 인생의 주연은 자신이라 말하며 연애가 아니라 섹스만 즐기겠다고 한 자영에게 우리는 단순한 섹스파트너가 아니다. 자신을 대상으로 섹스 칼럼을 쓴 개새끼이지만 함께 자신에게 상처를 준 전 애인의 결혼식에 가 축의금 노트를 훔쳐와 마음을 뒤흔드는 상대방이다. 육체에서 시작한 둘의 사랑은 정신과 마음으로 이어져 상대방을 또렷이 보게 한다.


연애를 하고 싶다는 마음에서 서서히 사랑하는 누군가가 아니라 자신의 부족한 것을 채워줄 누군가를 바라게 된다. 하지만 누구도 부족한 그 무엇을 채워줄 수는 없다. 코로나 시국은 여전하지만 극장가는 연인들을 위한 영화로 가득 채워지고 있다. 극장가만이 아니라 크리스마스와 연말 분위기로 치장한 거리는 안 그래도 겨울 바람으로 시큰한 솔로의 몸을 더 시큰하게 한다. 거리 가득한 연인들에게서 벗어나고 싶으면서도 '내 님은 어디에...'하며 연애가 하고 싶어진다. 연애가 하고 싶다는 그 순간, 잠시 되돌아보자. 사랑하는 누군가를 만나고 싶은 건지, 채워줄 누군가를 만나고 싶은 건지. 주변의 수많은 사람들은 모두 사랑할 수 있는 가능성은 있어도 채워줄 수 있는 가능성은 없다. 만나고 싶다면 묻지도 따지지도 말고 일단 부딪히자. 사랑은 육체의 부딪힘에서 시작한다.


P.S. 그렇다고 섹스만 생각하지 말기. 육체의 부딪힘은 섹스가 아니라 서로를 바라보면서, 서로의 소리를 들으면서도 가능하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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