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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Gozetto Oct 19. 2021

하나(The One)에 대한 다른 관점

영등포 롯데씨네마. 샹치:텐링즈의전설.

어린 시절 필독서 중 하나였던 <먼나라 이웃나라> 시리즈 중 한국 편에는 한국, 중국, 일본의 국민성을 분석한 부분이 있었다. 책에는 중국의 국민성을 ‘일(一)’이라고 정의했더랬다. 한 왕조가 오랫동안 통치하기에는 너무 넓은 영토를 지녔음에도 분열하는 순간 너무 거대한 혼란이 찾아와 중국인들에게 분열은 내면의 공포를 자극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중국만이 아니라 일(一) 혹은 하나는 인류 역사에서 가장 매력적인 숫자가 아닐까 한다. 누구라도 한 번쯤은 최고가 되고 싶다는 꿈을 갖고 있으며 실제로 최고를 달성하기 위해 질주하는 모습은 역사에서 너무나도 흔하다. 최근에는 하나에 대한 전통적인 이미지와 인식과 달리 현대에는 새로운 이미지와 인식이 나타나고 있는 듯하다. 다른 누구와도 비교할 수 없을 정도인 압도라는 의미에서 하나와 각자의 영역을 존중하며 함께 존재한다는 조화의 의미에서 하나. 서로 너무 다른 하나의 의미 중 현대 중국은 아직 전통적인 하나를 추구하는 듯하며 압도로서 하나를 추구하는 것은 누가 되었든 불안과 공포를 자극한다.

이런 와중에 첫 동양인 영웅이자 중국계 영웅인 샹치가 주연인 <샹치:텐링즈의전설>(이하, <샹치>)가 9월 개봉했다. 과거부터 근미래에 이르기까지 중국의 건축, 의상, 무술, 생활양식 등을 폭넓게 영화에 다루고 재현하고 있으며 중국계 히어로가 등장한다는 점에서 <샹치>는 당연히 중국에서 개봉될 것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예상과 다르게 일부 구역을 제외하면 중국에서 <샹치>는 상영이 금지됐다. 배우와 국가 주석의 모습이 비슷하다는 둥, 주연 배우의 과거 정치적 발언의 여파라는 둥 다양한 설이 있다. 그리고 <샹치>가 중국에서 상영이 금지된 이유 중 가장 눈에 띠는 이유는 현재 중국의 사회주의 질서 확립 및 유지 강화와 반대로 인물들이 모두 자유를 추구한다는 점이다. 하지만 이 모든 이유들은 표면적인 이유일 뿐 가장 중요한 것은 서사를 이끌어 가는 갈등의 결말이 중국이 추구하는 하나를 부정하기 때문일 것이다.

<샹치>는 크게 샹치와 아버지 웬우의 갈등과 샹치&웬우와 다크 드웰러의 갈등이라는 두 개의 갈등 구조로 진행된다. 이 두 갈등에서 샹치는 영역을 존중하며 함께 존재하는 조화로서 하나를 대표하며 그의 반대편에 위치하는 이들은 다른 누구와도 비교할 수 없는 압도로서 하나를 대표한다. <샹치>의 서사에서 웬우는 샹치의 어머니를 만나기 전까지 세상의 모든 것을 자기 손에 넣으려고 했으며 자신의 아내가 자신에게 반발하는 이들에 의해 죽자 그들 모두를 죽이고 자신이 모두의 위에 군림하려고 한다. 다크 드웰러는 닥터 스트레인지에서 모든 세계를 자신의 영역으로 흡수해 모든 것을 무의미하게 만드는 다크 디멘션의 도르마무와 비슷하게 모든 존재의 영혼을 흡수해 생명을 무의미하게 만든다. 이 두 캐릭터의 공통점은 다른 모든 존재를 무의미하게 만든다는 것이다. 즉, 웬우나 다크 드웰러는 세계에서 타인의 존재를 억압하고 나아가 존재 자체를 무의미한 것으로 만든다는 점에서 압도로서 하나에 해당한다. <샹치>는 압도로서 하나가 가지고 있는 파괴성을 지적하는 것이다. 이에 따라 <샹치>는 의도했든 안 했든 관객에게 하나의 체제를 확립하고 강화하려는 중국이 세계에 위협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암시하게 된다.


하지만 중국 입장에서 중국이 세계의 위협이 된다는 점을 암시하는 것보다 더 큰 문제는 샹치를 돕다 웬우가 죽는다는 점이다. <샹치>에서 웬우는 압도로서 하나를 추구하며 서사 상의 모습은 마치 모든 혼란을 해결하며 최고의 자리에 자신이 군림하려 한다는 점에서 진시황과 비슷한 위치에 있는 인물이다. 웬우는 중국이 추구하는 압도로서 하나를 대표할 뿐만 아니라 압도로서 하나의 이상에 해당하는 인물인 것이다. 반대로 조화로서 하나를 대표하는 샹치는 중국인이지만 중국인이 아니다. 그는 혈통으로는 중국인이며 외연적으로는 중국의 쿵푸로 악당들과 맞서지만 그가 추구하는 바는 군림보다 자신의 여동생이나 친구와 어떻게 평화롭게 살지에 관심이 있을 뿐이다. 샹치는 중국을 대표하는 히어로가 될 수 없는 것이다.


만약 <샹치>가 웬우와 샹치가 서로 화해하고 샹치가 아버지의 뒤를 잇는다면 중국에서 상영될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웬우는 아내의 목소리로 자신을 현혹한 다크 드웰러를 샹치와 함께 맞서면서 그 과정에서 자신을 희생한다. 중국을 대표하는 히어로 웬우가 오히려 샹치처럼 타인을 인정하고 타인을 위해 자신을 희생하는 것이다. 단순히 아버지가 아들을 위해 희생하는 것이라 보기 어려운 이유는 웬우의 목적은 자신의 아내를 되찾는 것이었으며 이를 방해하는 모든 이들은 모두 제거하려고 했다. 즉, 웬우가 다크 드웰러와 맞서는 것은 아들에게 위협이 되기 때문만이 아니라 다크 드웰러가 웬우의 목적 자체를 무의미하게 만들었기 때문이다. 이 과정에서 마지막에는 아들을 구하기 위해 자신을 희생까지 하기에 중국의 입장에서는 압도로서 하나라는 국가의 목표가 부정 당하는 것이며 <샹치>는 반체제적인 영화가 될 수밖에 없다.

이러한 갈등의 결말만이 아니라 <샹치>의 빌런 집단 텐 링즈는 웬우의 죽음 이후로 중국 입장에서 PTSD를 일으키는 집단이 된다. 웬우가 살아있을 때는 통일을 향해 나아가는 진시황의 진나라의 위치에 있던 집단이 웬우가 죽으면서 일개 군벌이 되어버린다. 웬우의 권력을 상징하는 무기 텐 링즈는 샹치가 가져가고 집단 텐 링즈는 딸인 샤링이 이끌게 된다. 즉, 중국의 입장에서는 적법한 상속자가 아닌 방계에 해당하는 인물-방계라고도 생각 안 할지도 모른다. 그럴 가능성이 더 크다.-이 권력을 상징하는 옥새도 없이 왕위에 오른 것이 된다. 심지어 집단 텐 링즈는 더 이상 세계를 통일할 수 있는 힘 자체도 없는 상태이기에 텐 링즈는 자체적인 무력을 갖고 있는 군벌이 된다. 이는 중국의 입장에서 가장 피하고 싶은 분열과 혼란의 원천이 사라지지 않은 채 남아있게 되는 것이다. “텐 링즈는 다시 돌아온다.”는 영화의 마지막 문구는 중국에서 결코 받아들일 수 없는 문구이자 PTSD를 유발하는 문구인 것이다.

개혁‧개방과 함께 엄청난 성장을 이루고 있던 중국은 돌연 강박적일 정도로 국가와 체제를 강조하고 유지하려고 하는 모습을 보인다. 단순히 내부 단속으로 국가와 체제를 유지하는 것이 아니라 경제적‧문화적 팽창을 통해 국제적인 영향력을 행사하며 중국의 영역을 넓히려고도 한다. 자신의 영역을 넘어서 타인의 영역을 침범하면서까지 하나를 강조하는 중국의 모습은 불안과 공포를 자극한다. 하지만 동시에 이러한 중국의 모습은 역사에서 압도로서 하나라는 체제를 추구하고 유지해오면서 조화로서 하나라는 체제에 대해 중국이 공포스러워 하는 것이 아닌가 한다. 그렇기에 그들의 입장에서 <샹치>라는 영화는 자신들의 체제를 인물이 아닌 텍스트 서사 자체에서 대놓고 부정할 뿐만 아니라 압도로서 하나라는 체제가 결국 다른 모두에게 위협이 되고 결코 좋은 결말에 도달할 수 없다는 걸 보이는 것이다. 현재에도 중국은 체제를 벗어나는 움직임을 놓치지 않고 억압하는 모습을 보인다. 하지만 그런 노력이 과연 좋은 결론에 도달할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샹치>라는 텍스트의 결말만이 아니라 역사적으로 자유를 억압하면서 조화가 아닌 압도를 추구했던 이들의 결말이 어땠는지 우리는 이미 알지 않는가? 중국만이 아니다. 어쩌면 우리도 조화와 압도라는 두 가지 길에서 후자의 길을 택하고 있을 지도 모르겠다. 결말을 알고 있기에 결말에 도달하기까지 너무 돌아가지 않길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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