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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Gozetto Oct 17. 2021

당신에게 사죄의 신호를 전하며

서울미래연극제. <SIGN>

폭력이 일상화된 시대. SNS와 미디어로 연결되어 거의 매순간 타인과 마주하고 좋든 싫든 관계를 맺기에 현대인은 폭력에 항시 노출되어 있다고 할 것이다. 그래서 그런지 현대인은 폭력에 대해서 이중적이다. 자신과 관련 없는 폭력에는 둔감하지만 자신과 관련 있을 때는 예민하다. 타인과 관계를 맺는 방법이 다양해지면서 관계에 따른 피로도도 높아지니 당연하다면 당연하다. 하지만 이런 과정에서 가해자와 피해자의 구분이 모호해졌다. 정확하게 말하면 피해자는 피해자로서 정체성만 갖는 것이 아니라 가해자 정체성까지 함께 갖고 있다. 폭력의 일상화는 폭력을 당하는 것만이 아니라 폭력을 행하는 것이기도 하다.

<Sign>의 세 인물. 편의점에서 알바하는 여학생, 일진으로 살다가 평범한 대학 생활을 꿈꾸는 남학생, 엘리트 법대생이었으나 수많은 낙방으로 자신감을 잃은 장수 고시생. 3명 모두 자기 앞에 펼쳐진 삶을 살고 있었을 뿐이다. 하지만 어느 순간 장난처럼 인생이 꼬여버린다. 어린 시절 어느 순간 일진의 삶을 살게 된 남학생은 대학교에 진학하면서 평범하게 살 줄 알았지만 과거의 폭력이 현재를 가로막는다. 그런 남학생과 잠시 대화를 하고 대학교 술자리를 함께 도망친 것뿐인 여학생은 남학생과 안 좋은 소문이 나 휴학을 하고 알바를 시작한다. 사법고시 합격으로 잘 나가는 인생을 꿈꾼 엘리트 고시생은 10년째 낙방하고 마지막 사법고시를 준비하던 중 취객과 시비가 붙어 500만 원의 합의금을 내야 하는 상황을 맞이한다.

어디서나 흔히 볼 수 있지만 서로 만날 일이 없어 보이는 인물들이다. 동시에 현대에서 이들은 어떤 방식으로든 교차했으며 결국 서로에게 폭력을 휘둘렀다. 서로가 서로에게 경계를 지으며 적어도 자신은 다른 사람보다 낫다고, 자신이 피해자이고 가해자는 다른 사람이라고 말한다. 생각해보면 정말 억울할 일이다. 실제로 세 인물 모두 서로에게 직접적으로 피해를 입히지 않았다. 익명의 누군가에 의해 혹은 오해로 인해 갑작스럽게 폭력을 당한다. 더 억울한 것은 자신이 피해자인 것은 명확해 보이는데 누가 가해자인지는 확신할 수 없다는 것이다.

피해자는 있는데 가해자를 알 수 없는 현실. 그런 현실에서 <Sign>은 “현대는 피해자이기만 할 수 없으며 동시에 가해자이기만 할 수 없다.”는 것을 강조한다. 자신에게 가해지는 폭력만을 직시하면 자연스레 타인에게 가하는 폭력은 잊게 될 뿐이다. 죄의식은 쌓이지만 다른 감정으로 잊기 때문에 타인을 향한 폭력에는 둔감해지고 자신에게 가해지는 폭력에만 분노하며 타인을 억압하려 한다. 타인을 가해자로 만들어 피해자만 명확한 채 익명의 다수인 가해자로 넘치는 공포스러운 현실. <Sign>은 사죄의 신호를 먼저 표현해 공포만이 가득한 현실에서 벗어날 것을 권한다. 피해자이자 가해자이기에 폭력을 직시하고 상대에게 먼저 손을 내밀어야 한다는 것이다.

사죄가 어렵고 어색한 일이란 것. 손을 먼저 내민다고 모든 것이 해결되지는 않는다는 것. 연극 <Sign>도 너무나 잘 안다. 다만 <Sign>은 적어도 먼저 사죄하는 것으로 서로에게 소통할 수 있는 기회가 된다는 점을 강조한다. 행실이 좋지 않은 남학생에게 여학생은 3만 원의 조의금을 그의 장례식에 전달하며 남학생에게 말한다. 용서하는 것은 아니라는 점. 다만 적어도 당신의 입장을 이해하고 함께 대화를 나눌 수 있는 사람이었다는 점. 앞으로도 당신은 대화를 나눌 수 있는 사람이라는 점. 피해자인 채 가해자일 수 있다는 가능성 혹은 가해자란 것을 잊으면 해결 자체를 시작할 수 없다. 적어도 어떤 상대라도 먼저 손을 내밀며 사죄의 신호를 보내야 함께 대화할 수 있을 것이다. 우리 모두는 가해자이면서 피해자일 수밖에 없는 가련한 시대를 살고 있으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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