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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Gozetto Oct 27. 2021

미래라는 욕망, 과거라는 망령

대학로. 홍대 대학로 아트센터. 이광수의 꿈, 그리고 꽃.

친일파는 모순을 내재한 존재다. 민족 공동체를 배신하면서도 배신하는 것이 아니었고 삶을 포기하면서도 포기하지 않은 존재다. 살아남기 위한 배신이었으나 동시에 민족을 위한다는 마음이 있었다. 자신의 삶을 지키면서도 민족의 삶까지 부흥할 수 있으니 이보다 완벽하게 미래를 향한 선택도 없다. 조선의 근대 문학을 이끌면서 민족의 근대화와 계몽을 이룰 수 있다고 믿으면서 자신의 삶을 위해 친일을 선택한 이광수도 똑같이 생각했다. 배신이라 해도 자기 스스로를 위해, 민족을 위해 미래를 선택하는 것이기에 친일이 부끄럽지 않았다. 그렇기에 갑작스럽게 맞이한 독립은 미래를 욕망하던 삶을 한 순간에 과거라는 망령이 판치는 삶으로 바꿔버린다. 과거의 망령으로 인해 미래가 사라진 삶에서 인간은 삶의 모든 지점에서 두려움을 직면하게 된다. “무엇을 위한 삶이었는가?”라는 회한만이 남는다.


연극 <이광수의 꿈, 그리고 꽃>(이하, <이광수의 꿈>)은 삶에서 과거의 망령과 마주하며 미래가 사라진 이광수가 자신의 삶이 무엇을 위한 삶이었는지 고뇌하고 회한에 도달하는 것을 조명한다. 이러한 조명을 위해 독립이 된 조선에서 친일파가 된 춘원 이광수 본인의 현실 세계와 이광수가 소설로 각색하고 있는 <삼국유사>의 「조신지몽」의 소설 세계가 액자식으로 구성되어 있다. 육당 최남선에게 <삼국유사>에 기록된 「조신지몽」을 들은 이광수는 「조신지몽」을 소설 <꿈>으로 각색하는 가운데 친일이라는 과거의 그림자를 마주보게 되는 것이다. 이러한 액자식 구성에서 관객은 조신과 관련된 소설의 결말을 고민하는 이광수를 보며 전향한 이광수가 어떤 선택을 할지 관찰하게 된다. 월례를 향한 욕망에 갈등하다 진리를 배신하고 파계할 뿐만 아니라 자신의 친우인 평목까지 죽이는 조신의 모습은 독립을 갈망하다 전향해 수많은 조선 청년을 전쟁으로 내몬 친일파 이광수의 모습과 비슷하기 때문이다. 소설의 결말에 따라 곧 친일파 이광수가 자신의 죄에 대해 스스로 어떤 판결을 내리는지 알 수 있는 것이다.


이광수의 현실 내부에 존재하는 조신의 세계는 친일로 전향하면서 행복했고 미래를 꿈꿀 수 있었던 일제강점기의 과거를 암시한다. 월례와 함께 도망친 조신은 버들과 미력, 두 딸을 낳은 뒤 행복하기만 한 시간을 보낸다. 독립을 명목으로 권력 다툼만 하던 상해에서 반도로 돌아와 허영숙과 결혼하고 근대화 되었을 뿐만 아니라 세계와 맞서는 일본에 굴복하되 민족의 미래를 꿈꿀 수 있게 되었다고 믿는 이광수의 모습이 비친다. 하지만 조신과 이광수에게 잊고 있던 과거가 망령처럼 나타나는 순간 미래를 향한 욕망은 헛된 망상이 된다. 조신에게 망령처럼 친우 평목과 월례의 정혼자였던 모례가 다가온 것처럼 이광수에게는 잊고 있던 민족의 독립이 다가왔다. 그 순간 월례를 향한 욕망은 진리에 대한 배신이 되고 민족과 자신의 삶에 대한 욕망은 민족과 자기 자신에 대한 배신이 되어 버린다.


과거의 망령이 현재에 나타나는 순간 이광수의 현실 세계라는 액자틀 안에 있던 조신의 소설 세계는 액자틀을 깨부수고 현실 세계와 동일한 위치성을 지니게 된다. 소설의 결말을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평목의 시체를 숨기고 들킬까 벌벌 떨고 있는 조신과 언제 자신의 친일 행적이 지탄을 넘어 법적 처벌을 받게 될지 두려워하는 이광수는 동일한 인물이 된다. 사슴을 향한 모례의 화살은 이내 춘원에게 겨눠지고 평목을 죽인 죄를 고하는 원님의 외침은 춘원의 친일 행적을 낱낱이 고한다. 과거의 망령이 두렵기에 이광수는 조신처럼 친일 행위를 비난하는 서울에서 낙산사로 도망칠 수밖에 없다. 궁지에 몰린 순간에는 자신의 죄가 정상 참작할 부분이 있다 말하며 너무나 인간적인 말을 한다. “그 때는 살기 위해 선택한 것이다. 독립이 될 줄 어떻게 알았겠나?” 조선의 근대를 이끌고 민족을 밝히는 희망의 등불이라 여겨진 이광수도 그저 인간이다. 그 역시 세파에 휩쓸리며 자신의 삶을 살아가는 것도 버거운 인간일 뿐이다.

하지만 이광수의 그림자, 자신감 넘쳤던 20대 시절의 이광수는 말한다. 조선의 근대를 이끌며 젊은이들을 독립 운동에 투신하게 한 민족의 등불인 사람, 춘원 이광수. 이광수를 향한 찬사는 이광수를 향한 조선 민중의 외침이었다. 맞서는 사람보다 굴복하는 이가 많았다는 점은 그에게 방패막이 되지는 못한다. 이광수가 인간임을 부정하지는 않는다. 적어도 이광수 본인이 진정으로 바랐던 민족의 미래와 자기 자신의 삶에 대한 책임을 저버리지는 말아야 했다. 부모를 잃었어도 희망을 잃지 않고 모두에게 사랑을 받고 싶었던 이광수는 민족만이 아니라 자신의 삶마저 배신하면서 결국 모두에게 손가락질 당하고 미움을 받는 사람이 되었다. 관음보살에게 잠시나마 자신의 고뇌와 두려움을 위로받지만 후대에까지 남아있을 자신의 글과 행적으로 계속 비난받을 것이라는 점은 자신이 진정으로 원했던 삶에서 너무 멀리 와버렸다는 것을 알려주기에 이광수는 절망할 수밖에 없다.


이광수는 낙산사에서 서울로 돌아가기 직전 영숙에게 젊은 시절 일본에서 진달래와 비슷한 철쭉을 주며 고백했던 것처럼, 하지만 이번에는 진짜 조선의 진달래를 꺾어 주며 고백한다. 영숙은 이광수의 진달래를 받지 않고 서울로 돌아가자는 말을 할 뿐이다. 영숙에게 일본의 철쭉이 아니라 조선의 진달래를 주었더라면. 조선으로 돌아오지 않고 상해에서 독립 운동에 투신했더라면. 일제의 강압을 버티고 전향하지 않았더라면. 꼬리의 꼬리를 물며 이광수는 땅에 버려진 진달래를 보며 회한에 젖는다. 자신의 꿈에 취해 조선의 꽃을 꺾는, 조선의 근대를 배신하는 행위가 후회스러울 뿐이다. 마지막까지 진달래를 꺾어버린 자신의 행위에서 이광수는 과거의 실수를 통해 자신이 진정으로 바랐던 삶이 무엇인지 뒤늦게 상기하며 씁쓸하게 산을 내려간다.

미래는 욕망의 시공간이고 과거는 잊힌 망령이다. 잊힌 과거의 망령을 현재에서 마주할 때 인간은 미래라는 욕망을 잃어버리고 과거에서 도망 다니는 가련한 존재가 된다. 민족을 미래로 이끄는 존재라고 느낀 이광수는 친일이라는 과거의 망령을 마주하면서 민족을 배신한 자이자 죄인으로서 도망 다닌다. 이광수만이 아니라 어느 인간이든 언제나 자신의 과거를 잊고 있다가 과거를 마주하는 순간 회한으로 가득 차 도망치는 가련한 존재가 된다. 욕망을 위한 미래를 잃은 인간은 과거의 망령을 통해 자신의 삶이 어떤 의미가 있었는지 떠올리며 회한에 잠길 뿐이다. 미래라는 욕망만이 아니라 과거라는 잊힌 망령을 기억하고 마주해야 하는 이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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