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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Gozetto Oct 29. 2021

빌런, 서사를 이끌어 나가는 또 다른 중심

강변CGV. 베놈2:렛데어비카니지.

때때로 불편함은 우리에게 재미를 선사한다. 불편함을 츤데레라 느끼며 좋아할 수도 있고, 불편함을 고구마로 느끼면서 사이다를 기대하기도 한다. 2018년 개봉한 <베놈>은 스토리 개연성도 떨어지고 인물의 생각, 행동 양상, 반응 등을 이해하기 힘드며 원작보다 한참 모자르게 잔인하지 않다고 여겨진 불편한 영화에 해당한다. 하지만 관객들에게 굉장히 매력적인 안티히어로로 인식되면서 의외로 흥행에 성공하기도 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불편해도 재미만 있으면 된다가 아니라 불편함을 어떻게 관객들이 받아들일 수 있는 재미로 승화할 것인지가 관건인 것이다. 불편함을 관객들이 만족할 수 있는 재미로 승화하지 못하면 관객은 불편함을 있는 그대로 느끼며 떠나갈 것이다.

<베놈2:렛데어비카니지>(이하, <베놈2>)는 전작과 비교해 여전히 불편한 영화다. 전작처럼 얼기설기 짜인 채 “아, 대충 그렇다고 쳐.”하며 넘어가는 서사. “쟤 대체 왜 저런다니...”를 유발하는 인물들. 서사의 주제를 중심으로 인물들이 각자의 목표를 추구하는 와중에 짜임새 있게 갈등이 전개되는 것이 아니라 일단 들이박는다. 에디-베놈이 서로 “야 이 미친놈아.”, “너 없어도 살 수 있다고!” 하며 싸우고 헤어지더니 정신없이 서사를 따라가다 보면 클리터스 캐서디-카니지와 캐서디의 애인 프랜시스 배리슨(슈리크)가 깽판을 치고 있고 다시 어느새 화해한 에디-베놈에게 패배해 죽어 있다. 거칠게, 좋게 말하면 이해하기 참 편한 서사지만 정확하게는 딱히 아무런 감흥도 없고 이해도 안 가는 서사다. 전체 97분 상영 시간에서 본편이 아니라 쿠키 영상이 본체라는 평은 실제 본편 서사가 얼마나 별로인지 말해주는 단적인 예이다.

사실 <베놈2>도 <베놈>처럼 “불편하지만 재밌더라.”로 넘어갈 수 있지만 <베놈>과는 달리 <베놈2>는 “불편하기만 하다.”고 말하게 된다. 이는 <베놈>에서 빌런을 구축한 방식과 <베놈2>에서 빌런을 구축한 방식이 너무 다르기 때문이다. <베놈>의 빌런인 칼튼 드레이크는 거대 기업을 경영하며 인류의 발전을 위해 심비오트를 연구하는 매드 사이언티스트이고 라이엇은 영화에서 등장하는 외계 생명체 심비오트들 중 가장 강력한 심비오트다. 이 둘은 모두 사회 지배층에 있는 빌런들인 것이다. 이것도 하나의 편견이자 폭력일 수 있지만 사회 지배층의 경우 피지배층을 재현할 때와 비교해 덜 섬세하게 재현해도 이해하기에 쉽다는 특징이 있다. 지배층은 지배 담론에서 가장 대중적으로 널리 받아들여지는 존재들이기 때문이다. 이들 개개인의 특성은 지배 담론에서 이미 폭넓게 사용되기 때문에 굳이 구체적으로 구축할 필요가 없으며 서사에서는 대체로 쉽게 재현할 수 있다. 아사모사하게 넘어가는 것이 더 편하단 거다.

하지만 <베놈2>의 빌런인 캐서디와 배리슨은 사회 피지배층이자 하층민에 가깝다. 여기에서 더 나아가 이들은 사회적으로 억압당하며 인간으로서 대우를 받지 못한 잊히거나 감춰진, 차별 받은 존재들이다. 지배층이었던 칼튼-라이엇과 달리 캐서디와 배리슨은 지배 담론에 의해 왜곡되고 억압된 이들이기 때문에 지배 담론의 시각에서 이들을 거칠게 재현하면 단순한 미치광이이자 죽어도 싼 인물들로 요약될 수 있다. 실제로 이 두 인물은 그저 살인 욕구가 충만한 빌런이라는 점이 강조될 뿐 어떤 과거가 있는지, 주인공인 에디-베놈과는 어떤 과거가 있는지 등을 통해 각 인물이 목표로 추구하는 바는 재현되지 않는다. 목표를 파악하기 어려운 인물일수록 인물의 행동은 의미가 없어지며 단순한 공포로 받아들여진다. 하지만 이 두 인물은 괴물이 아닌 인간이기 때문에 관객은 단순한 공포로 받아들일 수 없고 이해하려고 한다. 결국 이해하지 못하지만.


물론 이들은 어렸을 때 가정에서 폭력을 당했으며 서로를 제외하면 그 누구와도 인간적인 교류를 한 적이 없다는 점은 어느 정도 드러난다. 하지만 이는 캐서디와 배리슨이라는 두 인물 사이 유대 관계만 강조할 뿐 두 인물의 목표는 알 수 없다. 어린 시절의 폭력이라는 지점에서 두 인물이 사회에 가지고 있는 복수심을 인지하고 사회에 복수하는 것을 두 인물의 목표로 이해할 수도 있다. 하지만 이미 닳고 닳은 설정인 만큼 지나칠 정도로 평면적인 인물만 나오며 이런 평면적인 목표에 캐서디와 배리슨으로 인물을 둘씩이나 할애하는 것은 비효율적이다. 인물이 나오면 결국 관객에게 설명할 거리만 생기는데 평면적이니 설명은 조야해진다. 거기에 상영시간도 짧으니 결국 인물은 인물대로 설명이 안 되고 관객은 관객대로 설득당하지 못하는 것이다.


이 와중에 <베놈2>는 캐서디와 배리슨 중 그나마 캐서디에게 “인간적인 교류를 할 수 있는 친구를 갖고 싶다.”는 목표를 제시한다. 즉, 캐서디는 2가지 목표를 가지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목표가 2가지인 경우 인물의 행동 양상은 복잡해지고 관객에게 설명해 설득해야 할 거리는 많아진다. 심지어 무슨 일이 있었는지는 모르나 97분으로 정해진 짧은 상영 시간 동안 빌런이 크게 2명씩이나 나오는데 거기에 에디와 베놈도 비슷한 목표가 설정된 상황에서 서로 싸우고 있으니 상대적으로 빌런인 캐서디와 배리슨을 재현하는 것은 더욱 제한된다. 실제로 캐서디는 영화 초반 이유도 알 수 없이 에디에게 접근했으며 영화 말미에는 그저 친구가 되고 싶었다는 뜬금포를 날린다. 물론 이 뜬금포에 베놈은 “개소리!”로 응수해주며 관객의 마음을 대변해준다. 아, 이거 노렸나 보다.

캐서디와 다르게 배리슨은 아예 뭐가 목표인지 알 수 없는 인물이다. 복수심에 불타는 미치광이 살인마가 이 인물의 전부인데 캐서디와 다르게 과거도 거의 알 수 없고 그나마 알 수 있는 과거도 캐서디를 경유하거나 캐서디와 관련이 있을 경우에만 알 수 있다. 그냥 이 인물은 아예 없어도 된다. 사실상 이 인물의 모든 특성은 캐서디가 동일하게 갖고 있기 때문이다. 단순한 미치광이 악녀 살인마라는 이미지와 캐서디의 광기어림에 애정을 한 작은 술 정도 첨가해주는 것이 이 인물의 역할이다. 인물이 가지고 있는 특수 능력인 음파 방출 능력은 심비오트들의 약점인 만큼 캐서디-카니지의 약점으로 작용하며 실제로 카니지는 배리슨과 갈등을 빗기도 한다. 하지만 이 갈등이 서사에서 엄청 중요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것으로 보이지 않는다. 결국 배리슨은 영화에서 큰 활약도 못하고 관객에게는 이해 받지도 못한 채 갑자기 교회 종에 깔려 죽는다. 그냥 여성 빌런 인물 한 명이 필요한 거 같아서 급하게 원작에서 따온 인물 같다.

<베놈2>의 관객들은 97분의 상영 시간에서 본편보다 쿠키 영상에서 환호성을 지르는 어처구니없는 경험을 한다. 고작해야 1~2분 정도 되는 쿠키 영상이지만 실제로 <베놈2>의 쿠키 영상은 본편보다 파급력이 크긴 하다. 하지만 파급력이 크다 해서 관객이 본편에서는 만족감을 못 느낀 상태로 쿠키 영상에 환호하는 일은 없어야 했다. 이 같은 일이 발생한 것은 히어로와 갈등을 갖는 빌런을 큰 고민 없이 구축했기 때문이다. 손바닥도 맞부딪혀야 소리가 나는 것처럼 타인이 있기 때문에 누군가는 히어로가 되고 누군가는 빌런이 된다. 이 과정에서 히어로와 빌런은 서로를 움직이는 원동력이며 존재 이유다.


그런 빌런에 대해서 없어도 되는 인물을 서사에 사용하고 심지어 사회에서 억압 받으며 왜곡되어 온 존재들인데 빌런 인물들에게 평면적인 이미지만 제공해 사실상 이해할 필요도 없이 죽어 마땅한 인물들로 재현한다. 빌런 인물들을 구축할 때 무조건 과거를 상세하게 보여주며 관객이 이해할 수 있는 여지를 만들어줘야 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적어도 인물을 구축할 때 사용하는 특성이 억압과 왜곡을 거친 특성이라면 이를 입체적으로 재구성해 관객이 충분히 몰입하고 받아들일 수 있는 매력적인 인물로 만들어야 한다. 단순한 도덕적인 이유가 아니라 서로가 서로에게 히어로이자 빌런인 두 축을 짜임새 있게 고민하지 않는 텍스트는 안일한 텍스트이기 때문이다. 안일함의 불편함은 모두 관객들이 받았는데 누구도 관객의 불편함에 대해서 AS를 해주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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