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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Gozetto Nov 05. 2021

욕망과 허영에 가려지는 명예와 진실:과거에서 현재까지

용산 CGV. 라스트 듀얼:최후의 전투

할리우드의 거물 영화제작자인 하비 와인스타인에게 성추행 및 성폭행을 당한 여성들이 자신들이 당한 부당함을 폭로하면서 2017년을 기점으로 미투 운동(Me Too Movement)은 전 세계로 확산된다. 2016년 발생한 강남역 살인사건을 기점으로 페미니즘 운동이 거세지고 있었기에 한국에서도 침묵하고 있던 여성들이 자신들의 부당함에 목소리를 담아 밝히기 시작했다. 부당함을 밝히는 것은 인간이면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임에도 오랜 시간 억압 당해온 여성들에게 미투 운동은 부당함에 대한 발화 권리를 되찾아 준 운동이자 남성(The Man)에 예속된 여성(The Woman)의 위치가 동등한 위치라는 점을 남성과 여성 모두에게 각인시킨 운동이기도 했다. 하지만 어느 순간 미투 운동은 부당함을 당한 여성이 아닌 부당함을 가한 남성들의 이야기로 채워진다. 여성은 자신이 당한 부당함마저도 남성에 의해 후경화된 것이다.

남성에 종속된 여성 혹은 남성에 의한 여성의 후경화는 중세 유럽 사회에서 특히 기사도 문화에서 확인할 수 있다. “하느님을 향한 신앙을 수호하고 약자를 보호하며 섬기는 주군에게 충성을 다하라.” 기사도를 한 문장으로 요약했을 때 알 수 있지만 기사들이 추구하는 명예는 기사 본인의 행동으로 달성할 수 있지만 동시에 그 행동에 대한 원인을 제공하는 누군가를 필요로 한다. 퀘스트를 줄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목적이 될 수 있는 존재. 무력을 갖고 있는 군인이 기사의 본질이기 때문에 기사는 홀로 존재할 수 없다. 수호하는 자이기에 반드시 타인에 있어야 존재할 수 있는 것이 기사이다.


문제는 존재론적으로 타인에 의해서 존재할 수 있는 기사가 사회적으로는 남성 중심의 상위 계급이라는 점이다. 오직 남성들만 기사가 될 수 있기에 명예도 남성만이 추구할 수 있다. 이런 상황에서 여성은 남성에게 종속된 존재로서 자신을 ‘소유’한 남성을 위해 행동해야 한다. 여성은 타인으로서 기사인 남성에게 퀘스트를 주고 목적이 되어 주지만 남성에게 소유된 존재인 것이다. 목적인 여성-타인을 소유했기에 남성-기사는 명예를 위한다는 말로 자신의 모든 행위를 정당화 한다. 명예는 욕망의 수단이자 허영이 되어 버리고 진정한 의미에서 명예와 추구되어야 하는 진실은 욕망과 허영의 걸림돌로서 가려지게 된다.


영화 <라스트 듀얼:최후의 전투>(이하, <라스트 듀얼>)에서 기사들의 모순성은 두 남성 인물의 배경에 의해서 더 극대화된다. 영화의 ‘장 드 카루주’와 ‘자크 르 그리’는 정식 기사가 아닌 기사를 목표로 하는 에스콰이어 즉, 기사 수련생이다. 가문의 명예를 드높이기 위해 기사가 되고자 하는 이들은 서로 친우임에도 각자의 욕망을 위해 서로를 배신하고 각자의 관점에서 서로를 비난한다. 이들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욕망으로 변질된 자신들의 명예일 뿐이다. 자신들의 행위를 명예를 위한 행위로서 가장 정당하다 여기기에 두 남성은 행동에서 거리낌이 없다. 자신의 명예에 방해가 되기 때문에 친우를 배신하고 명예로운 기사이기에 친우의 아내를 강간한 것은 사랑이라 말할 수 있으며 자신의 명예를 위해 강간당한 아내의 진실은 결투 재판을 위한 도구일 뿐이다. 이들에게 여성-타인은 남성-기사가 되기 위한 수단이지 추구해야 하는 목적이 아니다.

영화에서 두 남성 모두 아내인 마르그리트를 인간으로 대하지 않는다. 장 드 카루주는 마르그리트를 사랑으로 대했다고 생각하지만 실상은 자기 가문의 영광을 위한 지참금이자 후계자를 낳아줄 씨받이일 뿐이다. 그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자신과 가문의 명예이기에 자신의 주군이 결혼 지참금인 영지를 빼앗아 자크 르 그리에게 줬을 때는 자연스럽게 자신의 주군과 친우인 자크를 적대시한다. 세금이라는 적합한 명목이 있다 해도 자신의 명예가 침해됐기 때문이다. 자크 르 그리는 마르그리트를 강간하고는 자신의 행위를 마르그리트도 자신을 사랑하기에 둘의 정사가 정당하다고 말한다. 하지만 자크는 마르그리트에게 자신과의 정사를 남편인 장에게 말하지 말라고 한다. 그것은 곧 자신의 명예를 떨어뜨리는 행위이자 마르그리트의 목숨을 위협하는 행위이기 때문이다. 자크에게 마르그리트를 강간한 것은 정말 사랑의 행위였으며 그러한 사랑보다 앞서는 것은 자신의 명예였다.

그렇기에 영화에서 자신의 명예를 지키기 위해 자신이 강간당했다는 사실을 만천하에 공개하는 ‘마르그리트 드 카루주’는 영화에서 그 누구보다 기사답다. 동시대 수많은 여성들이 숨죽이고 있을 때 마르그리트 부인은 자신이 당한 부당한 사건을 스스로의 입으로 발화하며 자신의 명예를 지키고자 한다. 비록 사회적으로 자신의 명예를 지키기 위해서는 소유주이자 남편인 장 드 카루주의 입을 빌려야 했지만 인간으로서 명예를 지키기 위해서는 본인 스스로가 먼저 입을 연다. 남성의 소유물인 물성으로서 여성-타인은 발화를 통해 주체성으로서 여성-타인이 되는 것이다. 한 명의 인간으로서 존재성을 깨달은 부인은 남편의 눈을 똑바로 쳐다볼 수 있으며 자신이 죽을 수도 있다는 것을 숨기면서까지 결투 재판을 강행한 남편을 향해 분노할 수 있다.


하지만 영화 제목에서부터 알 수 있듯이 <라스트 듀얼>은 한 명의 존재자로서 세계 내 자신의 위치를 깨달은 여성이 남성에 의해 다시 가려지는 것을 반복한다. 라스트 듀얼, 마지막 결투 재판이라는 뜻인데 결투 재판은 고소 사건에 대해서 피고인과 고소인이 결투를 통해 “누가 더 진실한가?”를 가리는 재판 방식이다. 하느님께서 진실한 자를 선택할 것이라는 믿음에 기반했기에 결투 재판은 겉으로 보기에 종교적이고 신성하다. 하지만 무력을 통해 진실을 가리기에 욕망과 허영으로 가득하다. 강간 사건의 진실과 진실이 밝혀지면서 지켜져야 하는 마르그리트의 명예는 장 드 카루주와 자크 르 그리 사이의 힘과 유혈이 낭자한 전투에 의해 가려진다. 결투 재판 내내 진실보다 두 남성의 결투 결과에 더 관심을 갖는 관객들과 승리자인 장 드 카루주를 향해서 환호할 뿐이다. 자크 르 그리에게 강간당한 마르그리트에게는 누구도 위로의 말도 하지 않는다. 마르그리트는 여전히 장 드 카루주의 소유물이었으며 그녀가 자유로워진 것은 십자군 전쟁에 참여한 남편이 전사한 이후일 뿐이다.


영화 서사 전개 방식에서 <라스트 듀얼>은 <라쇼몽>과 비슷하게 세 인물의 관점에서 마르그리트 부인이 당한 강간 사건을 조명한다. 하지만 <라쇼몽>과 다르게 <라스트 듀얼>은 마르그리트 부인의 관점이 진실 혹은 진실에 가장 가깝다라는 것을 명시한다. 세 인물 모두에게 진실(The Truth)이라는 위상이 부여되는 듯하지만 세 인물 중 유일하게 진실의 위상을 지닌 것은 여성-타인의 위치에 있는 마르그리트 부인뿐이다. 그러나 영화라는 상상임에도 불구하고 <라스트 듀얼>은 여성-타인인 마르그리트 부인이 진실과 명예를 되찾게 하지 않는다. 진실과 명예는 남성-기사에게 돌아가고 여성-타인은 다시 후경화된다. 어떻게 보면 허무주의와 같은 시각으로 <라스트 듀얼>은 많은 여성-타인이 발화하고 있음에도 남성-기사에 의해 후경화되는 현실을 조명 혹은 비판하는 듯하다. 조명이든 비판이든 과거에서 크게 변한 것이 없는 현재에 어딘가 씁쓸할 따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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