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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Gozetto Nov 07. 2021

그대의 발이 되고자 하노라 : 하늘로 향하는 발

서울미래연극제. <발이 되기>.

바리데기. 자신을 버린 부모를 위해 산 사람의 몸으로 저승에 가 생명수를 가져오고 상으로 불쌍한 영혼들을 저승으로 인도하는 신이 되고자 하는 신화의 인물이다. 살아온 평생 동안 단 한 번도 타인 위에 서지 않고 아래에서 고통을 감내하며 타인에게 봉사한다. 그럼에도 바리데기는 누구에게도 감사를 바라지 않고 겸손했으며 그의 발은 땅에서 떨어진 적이 없어 온갖 상처와 피로가 쌓여있다. 연극 <발이 되기>는 누구에게도 인정받은 적 없고 고통으로 가득한 삶을 살면서도 잊힌 바리 혹은 바리의 발을 경쾌하고 유쾌하게 풀어내면서도 그저 다른 타인에게 도움이 되고 싶다는 바리의 일념을 온 육체를 사용해 묵직하게 전달한다.

<발이 되기>는 한 명의 배우가 모든 역할을 소화하면서 65분 동안 온 몸을 던지는 육체의 연극이다. 등장하는 16명의 인물을 배우 한 명의 몸으로 오고 가면서 배우의 몸은 65분 내내 역동성을 획득한다. 인물이 뒤바뀌면서 생성된 역동성은 이내 바리라는 인물로 집중된다. 현실의 인물이자 신화의 인물인 바리는 어느 세계에서든 타인에게 버려지고 폭력을 당하지만 아무도 바리에게 가해지는 폭력에 반응하지 않는다. 그저 일상이라 여겨지듯 바리에게는 폭력이 가해진다. 일상에서 가해지는 폭력에 바리는 자신이 세상에서 그렇게 중요한 존재가 아니라고 생각하며 바닥으로 쓰러진다.


바닥은 발이 닿는 곳이다. 평생 몸을 지탱하면서 몸의 모든 무게를 당연하다는 듯 받아들여야 하는 발은 가장 더러운 곳에 자신이 책임을 진다. 하지만 몸을 지탱하는 것이 발의 일상이기에 아무도 발의 노력을 알지는 못한다. 일상이기에 고통 받는다는 것을 아무도 기억하지 않는 발처럼 바리도 바닥으로 온 몸이 떨어진다. 무대 이 곳 저 곳을 밟던 바리의 발은 이내 바리의 몸 자체가 발이 된다. 바리는 온 몸을 바닥에 굴리고 닦으며 백신을 찾기 위해 기꺼이 바다로 몸을 던진다. 그렇게 하는 것이 다른 사람들에게 자신의 존재를 알릴 수 있는 일이자 궁극적으로 세상을 구할 수 있는 일이기 때문이다.


온 몸이 발이 되면서 현실의 바리는 신화의 바리처럼 비록 아무도 자신의 고통을 일상이라 여기며 알아주지 않지만 타인을 위해 기꺼이 고통을 감내한다. <발이 되기>는 이러한 바리의 모습을 통해 고통의 일상화로 아무도 고통을 알아주지 않는 ‘잊힌 타인’을 조명한다. 동시에 자기 스스로도 잊힌 타인이라는 점을 알려준다. 경쾌하고 유쾌한 공기로 가득한 무대에서 바리는 어느 순간 타인을 위해 자신의 몸을 자연스럽게 발로 받아들이고 바닥에 몸을 던진다. 관객은 무대 위 바리의 육체를 통해 잊힌 타인을 눈으로 보면서도 스스로가 잊힌 타인이라는 점을 느끼게 되는 것이다. 잊힌 타인은 누구나 더럽다고 생각한 바닥에서 숭고한 하늘을 밟는다. 타인을 위한 숭고한 희생. 고통 끝에 신이 된 바리처럼 우리 주변의 잊힌 타인은 숭고한 것이다.

서사를 온 몸으로 표현하기에 <발이 되기>의 무대는 시각화 된 육체만이 아니라 후각화 된 육체, 청각화 된 육체, 촉각화 된 육체로 가득 찬다. 65분이라는 시간 동안 무대를 서서히 채운 발-육체는 단순히 배우의 몸만이 아니라 배우가 사용한 무대 도구에도 남아 진한 몸의 향기를 남긴다. 배우의 몸이 발-육체로 변모해 홀로 무대를 채우면서 연극이라는 무대 공간을 채우는 일상화된 고통을 겪었기 때문이다. 배우이기에 당연히 겪는 고통. 시각으로 거리를 둔 채 바라보던 발-육체의 고통을 다양한 감각으로 느낄 수 있기에 <발이 되기>는 육체의 연극이다. 보는 것을 넘어 자신의 몸을 숭고한 발-육체로 느끼게 하는 연극. 그 숭고함에 그저 겸손해질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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