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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Gozetto Jan 05. 2022

가혹한 운명 속 연대의 위로

신도림 씨네Q. 스파이던맨:노웨이홈.

* 스포일러가 있을 수 있습니다.

어른이더라도 외톨이가 되는 것은 두렵다. 세계에 자신이 존재하고 있다고 해도 살면서 쌓아온 모든 관계가 사라지고 누구도 자신을 기억하지 못한다면 자신의 존재를 누구도 증명할 수 없기 때문이다. 존재하되 존재하지 않는 상황. 누구도 바라지 않는 상황임에 틀림없다. 그렇기에 누구에게나 타인과 맺는 관계만이 아니라 타인 자체가 소중하다. 하지만 영웅은 존재하되 존재하지 않는 상황이 오히려 편하다. 영웅도 존재자이기에 외톨이는 두렵다. 자신들을 수호하는 사람이 누군지 누구나 알고 있지만 정작 그 영웅이 누구인지는 아무도 모르는 상황. 누가 영웅과 관계를 맺고 있는지, 어디서 영웅이 살고 있는지, 무엇을 영웅이 좋아하는지 등 영웅의 개인사를 아무도 모른다면 오히려 영웅은 더 편하게 활동할 수 있는 것이다. 그렇기에 언제나 타인을 바라만 보되 다가가지 못한 채 주변에 있는 친절한 이웃이되 외톨이인, 누구보다 타인이 필요한 가련한 숙명의 존재이다. 즉, 영웅에게는 연대의 위로가 필요한 것이다.

출처. 다음 영화

아마 수많은 영웅들 중 평범한 범인과 비슷한 위치에 있기에 스파이더맨은 영웅의 숙명과 가장 맞닿은 영웅일 것이다. 도시에 살고 있으나 가난한 중산층이며 특출난 지능을 갖고 있으나 특유의 소심한 성격으로 크게 눈에 띄지 않는 너드(Nerd). 흔히 알고 있는 영웅들은 특출난 능력 하나가 다른 모든 단점을 잊게 하지만 스파이더맨은 특출한 능력과 별개로 자신의 단점에 계속 고뇌한다. 거대한 뉴욕이라는 도시에서 범죄를 소탕할 수 있는 능력이 있지만 가난한 중산층으로 매일 생계를 걱정해야 하고 사랑하는 애인 MJ에게는 당당한 연인으로 나서기에는 자신이 볼품없게 느껴진다. 자신의 삶과 스스로가 불안한 와중에도 자신이 영웅인 것을 감춘 채 홀로 주변을 맴돌며 우리를 수호하는 이웃이 스파이더맨인 것이다. 이처럼 영웅의 숙명과 가장 맞닿아 있는 스파이더맨과 관련해서 <스파이더맨:노웨이홈>(이하, <노웨이홈>)은 마블 톰 홀랜드의 스파이더맨(이하, 톰 파커)이 친절한 이웃이되 외로운 영웅이 되는 마지막 여정이다.


하지만 토비 맥과이어의 스파이더맨(이하, 토비 파커)과 앤드류 가필드의 스파이더맨(이하, 앤드류 파커) 즉, 역대 스파이더맨과 마블의 톰 파커는 시작부터 전개까지 너무나 다르다. 스파이더맨 시리즈를 관통하는 주제는 설정상 백부인 피터 파커의 삼촌의 조언, "큰 힘에는 큰 책임이 따르는 법이란다."이다. 토비 파커와 앤드류 파커 모두 백부의 조언을 들은 이후 능력이 있음에도 잡지 않은 길거리 강도에 의해 백부가 눈앞에서 살해당하는 것을 보면서 영웅으로 각성하기 시작한다. 하지만 토비‧앤드류 파커에게는 자신의 영웅 행위가 얼마나 부담되고 외로운 일인지를 함께 나눌 수 있는 동료 영웅들이 없다. 즉, 혼자서 자신의 삶만이 아니라 영웅의 숙명까지 짊어져야 하기에  토비‧앤드류 파커는 법적 성인이 되기 바로 직전의 나이이면서 조숙하고 성숙한 심리와 성격을 갖고 있다. 가끔 무너져 내릴 수도 있으나 다른 영웅들에게 도움을 바랄 수 없는 토비‧앤드류 파커는 보다 어른스러우면서도 어두울 수밖에 없다.


반면 톰 파커는 15세 청소년의 나이부터 동경하는 영웅 아이언맨을 비롯해 수많은 영웅들과 함께 위기를 이겨낸다. 법적 성인이라고 해서 어른은 아니지만 토비‧앤드류 파커는 조숙하고 성숙한 심리와 성격을 갖고 있기에 영웅이 되면서 자연스럽게 어른이 된다. 하지만 톰 파커는 15세의 나이에 갑작스럽게 능력을 얻은 상태에서 아이언맨에 의해 갑작스럽게 영웅으로 콜업된다. 토비‧앤드류 파커와 달리 톰 파커에게는 영웅만이 아니라 어른이 되는 과정이 하나 더 필요한 것이다. 콜업을 시작으로 <스파이더맨:홈커밍>(이하, <홈커밍>)과 <스파이더맨:파프롬홈>(이하, <파프롬홈>)까지 톰 파커는 외톨이면서 친절한 이웃인 영웅이 아니면서도 산전수전을 다 겪은 기괴한 형태의 영웅인 상태이다. 그렇기에 <홈커밍>과 <파프롬홈>을 지나면서 톰 파커는 자신의 능력이 지닌 위험성과 그에 따른 책임감을 배우며 어른으로 성장하는 것이다. 하지만 톰 파커는 어른으로서 성장하는 출발선에 섰을 뿐만 아니라 여전히 외톨이면서 친절한 이웃인 영웅은 아니다.

출처. 다음 영화

그렇기에 <노웨이홈>의 서사는 톰 파커를 외톨이로 만드는 서사이며 그런 점에서 이전의 시리즈와 비교해 훨씬 폭력적이고 가학적이다. 우선 미스테리오의 계략을 타파하기 위해 닥터 스트레인지에게 전 세계 사람들의 기억을 소거하는 마법을 부탁하는 선택부터 시작해 토비‧앤드류 파커와 함께 싸우며 빌런들을 치료하기로 하는 선택까지 이 모든 선택에서 톰 파커는 홀로 선택의 결과를 감내해야 한다. 이전 시리즈에서 톰 파커는 자신의 선택을 온전히 홀로 감내하지 않는다. 아이언맨, 메이 백모, MJ, 네드, 해피 등 주변의 모든 가족과 친구들이 항상 톰 파커에게 기꺼이 어깨와 등을 대주며 함께 위기를 극복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멀티버스가 열리는 <노웨이홈>에서 톰 파커는 홀로 선택하면서 위기를 맞이하지만 정작 자기 차원의 주변 인물들과 위기를 함께 극복하지 못한다. 톰 파커는 외톨이가 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출처. 다음 영화

둘째로 <노웨이홈>에서 도와줬음에도 자신을 배신하는 그린 고블린에 의해 톰 파커는 메이 백모의 죽음을 경험한다. 역대 스파이더맨이 영웅으로 각성하는 백부의 조언, "큰 힘에는 큰 책임이 따르는 법이란다."를 메이 백모가 톰 파커에게 남기면서 서사적으로 톰 파커에게 외톨이가 되어 친절한 이웃 영웅이 되는 선택이 강요된다. 비록 힘들고 어려운 사람을 도와야 한다는 메이 백모의 신념에 영향을 받았을지라도 다른 차원에서 넘어온 빌런인 그린 고블린, 닥터 옥터퍼스, 리저드, 일렉트로, 샌드맨을 치료하기로 결정한 것은 어른-영웅이 되고자 한 톰 파커 본인의 선택이다. 외톨이가 되고 싶지 않았으나 외톨이가 되지 않으려고 선택하면 할수록 자기 주변의 가족과 친구가 죽을 지도 모른다는 것이 현실화 되는 순간 톰 파커에게 남은 선택지는 외톨이가 되어 친절한 이웃 영웅이 되는 것뿐이다.

출처. 다음 영화

마지막으로 메이 백모의 죽음에 대한 복수를 톰 파커가 선택하게 한다는점에서 <노웨이홈>은 이전 시리즈보다 훨씬 폭력적이고 가학적이다. 메이 백모가 그린 고블린에게 죽는 순간 톰 파커에게는 영웅임에도 불구하고 개인의 복수를 위한 살인이 선택으로 주어진다. 살인을 하는 순간 톰 파커는 외톨이이면서 영웅이 아닌 살인자가 된다. 톰 파커도 살인을 하는 순간 자신은 더 이상 스파이더맨으로 있을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다. 그러나 노먼 오스본에 대한 배신감과 그린 고블린에 대한 분노으로 복수를 포기할 수 없다. 외톨이가 되고 싶지 않다는 것과 외톨이가 되어 친절한 이웃 영웅이 되어야 한다는 것 사이에서 갈등하는 와중에 혈연의 복수까지도 선택해야 하는 극한 상황으로 주어진 것이다. 이러한 선택들이 이전 시리즈에서 하나씩 풀어졌다면 <노웨이홈>은 덜 폭력적이고 가학적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이제 막 어른-영웅이 되기 위한 출발선에 선 톰 파커는 <노웨이홈>에서 이 모든 선택을 해야 하는 극한 상황에 처했기에 그 어떤 시리즈보다 폭력적이고 가학적이다.

출처. 에펨코리아

이러한 폭력성과 가학성으로 <노웨이홈>은 멀티버스라서가 아니라 필연적으로 톰 파커를 토비‧앤드류 파커와 만나게 하며 이들이 서로 연대하게 할 수밖에 없다. 이미 외톨이이되 친절한 이웃으로서 활동한 토비‧앤드류 파커는 톰 파커가 거쳐가야 할 미래이면서도 비추고 있는 거울이다. 즉, 톰 파커가 스파이더맨으로서 겪은 고난은 비슷한 고난을 겪으며 단단해진 다른 스파이더맨을 통해 치유할 수 있다. "걱정하지마. 너와 똑같이 활동하는 '우리'가 있어.", "너가 꼭 복수의 길을 걸을 필요는 없어. '우리'가 함께 해줄게."라고 말하고 행동하는 듯한 토비 파커와 앤드류 파커의 모습은 이제 막 어른이 되어 영웅이 되는 출발선에 선 톰 파커의 마지막 아이언맨이다. 각자의 차원에서 스파이더맨으로 활동하면서 어떤 일을 겪었는지 나누는 것, 빌런들을 정상으로 되돌리기 위해 해결책을 함께 마련하는 것, 함께 웹스윙을 하며 빌런들을 정상으로 되돌리는 것을 거치며 톰 파커는 스파이더맨이라는 외톨이가 되어 가되 한 명의 영웅으로 우뚝 설 수 있게 되는 것이다.


물론 <노웨이홈>의 폭력성과 가학성은 지나치다고 할 수도 있다. 이제 막 어른이 된 사람에게 세상 모든 사람들이 사생활을 알게 될 뿐만 아니라 그걸 해결하는 과정에서 가족과 친구들이 피해를 받고 심지어 하나 뿐인 가족이 죽음에 이르는 상황이 펼쳐진다. 가족에 대한 복수는 선택할래야 선택할 수도 없는 상황이기도 하다. 이러한 상황에서 정신을 유지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며 사실상 톰 파커가 어린애처럼 답답하게 느껴질 수밖에 없는 서사인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토비‧앤드류‧톰 파커가 연대하는 것은 정말 값지다. 그린 고블린을 죽이려는 톰을 막아서면서 톰을 대신해 그린 고블린의 칼에 찔리는 토비 파커와 떨어지는 MJ를 구해 포옹하는 톰을 보며 자신과 다른 운명을 살아갈 톰에게 진심으로 기뻐하는 앤드류 파커는 지치고 포기하고자 하는 톰의 손을 붙잡고 부축하는 친구이자 형제이다. 각자의 차원에서는 친절한 이웃이지만 외톨이인 영웅이지만 서로 만나면서 서로의 존재를 기억하며 가혹한 영웅의 숙명을 이겨낼 수 있게 되는 것이다.


톰 파커의 부담감과 그에 따른 답답함은 사실 인간이라면 당연히 보이게 되는 모습이다. 외톨이가 되고 싶지 않다는 욕망과 영웅이기 위해서는 외톨이어야 한다는 운명 사이에서 인간이라면 당연히 전자를 따라가려고 한다. 하지만 영웅인 이상 선택과 책임을 항상 짊어질 수밖에 없으며 그렇기에 외톨이는 영웅에게 필연이다. 그런 가혹한 영웅의 숙명에 <노웨이홈>은 멀티버스라는 수단을 통해 연대라는 위로를 제시한다. 헤어질 수밖에 없지만 언제나, 어디에서나 비슷한 고난을 하고 있는 친구이자 형제가 다른 뉴욕을 지키고 있을 것을 알기에 선택과 책임을 짊어질 수 있다. 기억을 잃은 친구와 연인은 기억하지 못하는 상처를 가슴에 담아둔 채 외톨이이지만 친절한 이웃이 될 수 있다. 어쩌면 정말 톰 파커의 행동이 어린애 같고 영웅답지 않을 수 있다. 그저 톰 파커의 선택을 조금이라도 이해하고 세 명의 파커가 연대하며 서로를 위로하는 것에 좀 더 집중해주길 바랄 뿐이다. 영웅도 인간일 뿐이다. 영웅도 연대의 위로가 필요하다.


P.S. 편히 쉬기를 메이 파커 & 부디 빛이 찾아오길 피터 파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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