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WatchTalk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Gozetto Jan 08. 2022

다크나이트가 되고 싶었던 경찰의 참새짓

용산 CGV. 경관의 피_시사회.

* 스포일러가 있을 수 있습니다.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의 <배트맨> 시리즈에서 배트맨은 영웅이 되고 싶은 것이 아니라 고담시의 선의와 정의에 대한 상징이 되고 싶어한다. 영웅은 현재의 혼란을 해결할 수 있지만 장기적으로 봤을 때 인간 사회를 붕괴시키기 때문이다. 당장 <다크나이트>만 보더라도 배트맨이 오랫동안 고담시의 범죄를 해결하기 위해 활동하자 오히려 배트맨의 활동으로 자신의 활동을 정당화하는 조커가 등장한다. 배트맨의 활동은 법을 넘어선 초법적인 활동이기에 법과 규범으로 정의와 질서를 유지하는 기존 사회에서 배트맨은 합법과 불법을 오고 가는 경계 위의 인물이다. 즉, 배트맨이 선한 의미에서 합법과 불법을 오고 가는 인물이라면 조커는 악한 의미에서 합법과 불법을 오고 가는 인물인 것이다. 그렇기에 배트맨은 자신의 활동에 의해 정의와 질서가 유지되는 것이 아니라 악을 단죄하는 자신의 활동을 보며 시민들이 자신들의 선함을 깨닫고 행동으로 옮기길 바라며 자신은 언젠가 사라지길 바란다. 배트맨은 겉으로 드러나는 영웅이 아니라 어둠 속에서 묵묵히 사회를 지키는 수호자 즉, 다크나이트여야 하는 것이다. 다크나이트는 육체가 아닌 상징으로 우리 주변에 있어야 한다.


이러한 다크나이트에 대한 고찰에 이어서 봤을 때 원리원칙을 준수하는 경찰 최민재와 범죄 수사를 위해 범죄 집단과 연대도 불사하는 광역수사대 반장 박강윤의 갈등을 중심으로 경찰이 지닌 다크나이트로서 면모와 가능성에 집중한 영화 <경관의 피>는 도전적이되 문제적인 영화이다. 해당 영화가 도전적이되 문제적인 이유는 다크나이트의 가능성을 <경관의 피>가 경찰 즉, 공권력 집단의 구성원에서 찾고 있기 때문이다. 범죄 집단의 수법은 기술의 발전과 함께 빠르게 변화해 날이 갈수록 기존의 법으로 합법과 불법을 판단하는 것이 어렵다. 사회 유지와 정의를 위해서 범죄 집단을 척결해야 하는 경찰 입장에서 기존의 법이 오히려 방해가 되고 있는 것이다. 그렇기에 사회 유지와 정의를 위해 저지른 편‧불법은 스스로 해결하거나 책임을 질테니 편‧불법을 저지르더라도 범죄 집단을 척결하는 박강윤과 그에게 감화되어 변화하는 최민재의 모습은 <경관의 피>가 제시하는 다크나이트로서 경찰이다. 자신이 저지른 편‧불법까지 책임을 다 지면서까지 범죄와 전쟁을 벌이는 박강윤과 최민재의 모습은 현실에서 나타났으면 하는 이상적인 경찰처럼 보이기도 한다.

출처. 다음 영화

하지만 배트맨의 예에서 알 수 있듯 다크나이트는 경계 위 육체와 상징성이라는 특성을 갖고 있어 박강윤과 최민재의 모습은 다크나이트가 될 수 없으며 다크나이트보다 더 문제적이다. 법의 관점에서 경계 위 육체를 설명하자면 경계 위 육체는 곧 합법과 불법 사이에 존재하는 사회 구성원을 의미한다. 쉽게 말해 다크나이트가 되려면 정부와 같은 공권력 집단에 속하지도, 마피아 같은 범죄 집단에 속하지도 않은 일반 시민이어야 한다. 두 집단 중 어느 한쪽에 속할 경우 자신이 속한 쪽과 반대쪽을 오고 감을 반복하다가 어느 한 쪽을 선택해야 한다. 서로 완전히 반목하는 두 집단 사이를 오고 가는 것은 영원히 지속될 수 없다. 두 집단 모두 집단 사이를 넘나드는 주체에게 정체성을 명확히 하라고 하기 때문이다. 두 집단 사이 경계에 걸쳐 있을 수는 없다. 경계에 걸쳐 있을 경우 자신의 소속과 반대 소속 모두에게서 쫓기는 현실의 다크나이트로 남기 때문이다.


경계에 걸쳐서 현실의 다크나이트로 남는다면 결국 다크나이트가 되는 것이라고 할 수도 있다. 하지만 경계 위 육체인 현실의 다크나이트는 앞서 말했듯 붕괴할 수밖에 없으며 더 큰 문제는 반대급부의 경계 위 육체를 정당화한다는 것이다. 선한 입장에서 경계를 넘나드는 인물은 합법과 불법 사이 경계를 모호하게 하면서 합법의 영역을 넓히는 것처럼 보일 수도 있다. 배트맨의 자경 행동을 똑같이 따라하려는 시민들의 모습은 배트맨에 의해 넓어진 합법의 영역을 시민들이 향유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배트맨이 합법과 불법의 영역을 넘나들수록 악한 입장에서 경계를 넘나드는 인물도 정당화된다. 합법과 불법 사이 경계가 모호해진다는 것은 합법의 영역이 불법의 영역을 잠식하는 것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불법의 영역이 합법의 영역을 잠식하는 것도 의미하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조커는 배트맨에게 "You complete me!"라고 한다. 베인의 폭정을 무너뜨리면서 배트맨이 스스로 사라지고 언제나 고담시를 지켜보는 수호자이자 인간의 선을 떠올리게 하는 상징으로 남는 이유이다. 언젠가 다크나이트는 현실이 아닌 신화 혹은 상징으로 남아야 하는 것이다.

출처. 다음 영화

<경관의 피>에서 박강윤은 자신의 수사를 이해하지 못하고 방해하는 최민재에게 경찰은 합법과 불법을 넘나들 수 있는 경계 위 존재라고 말한다. 어느 정도는 맞는 말이다. 범죄 집단과 최전선에서 맞서는 의무를 지고 있기에 경찰 집단은 합법과 불법 사이 경계를 바라볼 수 있다. 경계를 바라볼 수 있다는 것은 경계를 넘나들 수 있는 가능성 역시 있다는 것이다. 박강윤은 이러한 가능성을 실제로 행하면서 도덕성까지 잃지 않은, 다크나이트와 다름없는 경찰이다. 경찰 외부 조직에서 스폰을 받아 수사를 진행하는 경찰 내부 조직 연남회 소속인 박강윤은 합법과 불법을 넘나들며 수사를 진행한다. 경찰 외부 조직의 스폰만으로 부족할 경우 자신이 비호해주는 범죄 집단의 도움을 받으면서까지 수사를 진행해 성과를 낸다. 하지만 범죄 조직에게서 받은 도움은 반드시 갚으면서 자신이 저지른 불법에 대해서 책임도 진다. 합법의 영역을 중심으로 불법의 영역으로 자유롭게 넘나들면서 범죄 집단과 연계까지 하지만 불법의 영역을 합법의 영역으로 단죄하고 모든 행위의 결과에는 책임을 지기에 박강윤은 다크나이트라 할 수 있는 것이다.


하지만 한국 사회만이 아니라 수많은 사회에서 공권력이 합법과 불법을 넘나드는 초법적인 권력을 가졌을 때 어떤 일이 있었는지 생각해보라. 당장 민주 사회라 칭해지는 현대 한국에서도 몇 년 전 모 정권에서 헌법과 인권을 뛰어넘는 초법적인 권력을 통해 불법사찰과 블랙리스트 제작을 자행했다. 불법사찰과 블랙리스트만이 아니라 인류 역사에서 등장한 수많은 독재 정권처럼 공권력은 초법적인 권력을 갖는 순간 사회 구성원들을 억압한다. 더 심각하게는 스스로를 정당화하기 위해 내세운 헌법과 같은 합법의 영역을 스스로 붕괴시킨다. 즉, 다크나이트와 같은 비슷한 박강윤은 경찰로 활동할 수는 있으나 합법과 편‧불법 사이를 오고 가는 행위로 인해 경찰로서 자신의 정체성을 붕괴시키는 것이다. 이러한 모습은 상황에 따라 범죄 집단을 눈감아줄 뿐만 아니라 때로는 범죄 집단을 이용하거나 결탁해 수사를 하는 박강윤의 모습에서 알 수 있다. 나아가 최민재가 자신의 수사를 방해하는 순간 최민재의 이마를 수술 도구로 찢어버리는 박강윤의 모습에서 극대화된다. 초법적인 권력을 지니는 순간 박강윤에게 합법의 영역은 더 이상 지켜야 하는 대상이 아니라 때에 따라 파괴할 수도 있는 억압의 대상이 되는 것이다.

출처. 다음 영화

<경관의 피>에서 더욱 문제적인 것은 공권력이 초법적인 권력을 갖은 상태에서 상징으로 남는 것이 아니라 합법의 영역이 초법적인 권력으로 흡수된 채로 현실에서 계속 유지된다는 것이다. <경관의 피>에서 초법적인 권력은 경찰 외부 조직과 범죄 집단의 조력과 그러한 조력을 박강윤을 앞세워 현실의 실제 행위로 만들어내는 경찰 내부 조직 연남회로 이어진다. 즉, 경찰 내부 조직 연남회를 붕괴시키지 않고서는 공권력이 소유한 초법적인 권력은 파괴될 수 없다. 앞서 말했듯이 초법적인 권력은 현실에서 작동하는 자신의 권력을 스스로 파괴하면서 상징으로 남아야 한다. 하지만 초법적인 권력이 스스로를 파괴하지 못한다면 외부에서 초법적인 권력을 파괴해야 한다. 즉, 박강윤과 연남회의 대척점으로 등장하는 최민재가 초법적인 권력을 파괴할 수 있는 외부의 힘이다. 원리원칙을 반드시 지키는 성격으로 최민재는 자신의 원래 팀에서 배척당했을 뿐만 아니라 청문감사실에서 박강윤의 언더커버로 뽑혔다. 초법적인 권력 내부에 합법의 화신이 내재하게 된 것이다.


하지만 <경관의 피>는 서사 전개에서 최민재와 박강윤 사이를 최민재의 아버지로 연결하면서 최민재가 박강윤에게 감화되도록 한다. 최민재의 아버지는 연남회 소속으로 자신의 경찰 정체성이 흔들리면서 아들에게 경찰이 되지 말라 말했으며 심지어 범죄자에 의해 목숨을 잃기까지 한다. 반대로 최민재의 아버지는 마약 중독자인 박강윤의 아버지가 죽자 박강윤을 위해 장례식에 홀로 찾아갔을 뿐만 아니라 박강윤이 경찰의 꿈을 가지고 경찰로서 온전하게 활동할 수 있게 도와준 존재이다. 이에 따라 최민재의 아버지는 아들 최민재에게 이해할 수 없으면서도 영원히 인정을 받을 수 없어 욕망의 대상이 되고 박강윤은 최민재의 욕망을 해결해줄 수 있는 유일한 존재가 된다. 연남회 소속인 아버지가 스폰을 받는 경찰, 때로는 범죄 조직을 비호하는 경찰 등으로 인해 경찰 정체성을 흔들린 것과 달리 자신의 아버지와 마찬가지로 연남회 소속인 박강윤은 아버지와 달리 경찰 정체성을 흔들리지도 않고 끝까지 경찰의 책무를 다하기 때문이다. 즉, 박강윤과 최민재 사이에는 절대적인 상하 관계가 이미 서사적으로 형성되어 있는 것이다.

출처. 다음 영화

<경관의 피>에서는 더 이상 초법적인 권력을 지닌 경찰을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이 없다. 박강윤이라는 인물을 변화시키기에는 사회 유지 및 질서 수호를 위해 합법과 불법 사이 경계를 넘나들 수 있는 것이 경찰이라는 관점을 <경찰의 피>는 서사적으로 완전히 긍정하고 있다. 초법적인 권력을 지닌 공권력 집단에 대해 제시된 문제의식은 초법적인 권력을 지닌 공권력 집단 내부에서 단합하고 긍정하는 과정으로 후경화된다. 나아가 공권력 집단을 내파할 수 있는 합법 영역의 인물은 공권력 집단의 초법적 권력을 긍정할 뿐만 아니라 경찰이라면 당연히 초법적 권력을 행사할 수 있다고 믿는 인물과 절대적인 상하 관계를 맺고 있음과 동시에 그에게 감화된다. 물론 <경관의 피>는 마약 범죄 집단과 연관되어 있으나 연남회를 후원하는 외부 조직의 후계자라 처벌받지 않은 범죄자를 잡기 위해 유럽으로 갈 것을 암시하며 끝이 난다. 하지만 이미 초법적인 권력이 여전히 현실에 존재한다는 것은 바뀌지 않는다. "당신이 심연을 오랫동안 들여다본다면, 심연 또한 당신을 들여다보게 될 것이다."라는 니체의 말처럼 초법적인 권력은 공권력만이 아니라 범죄 집단 역시 가질 수 있다. 공권력 집단인 경찰을 다크나이트로 제시한다는 점에서 <경관의 피>는 분명 도전적인 영화이지만 그 도전은 봉황을 따라하는 참새짓과 다를 바가 없다.

매거진의 이전글 가혹한 운명 속 연대의 위로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