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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Gozetto May 18. 2022

가능성이라는 아슬아슬하고 위험한 줄타기

용산. CGV. 닥터스트레인지:대혼돈의멀티버스.

* 스포일러가 있을 수 있습니다.


다중우주라와 시간여행을 엮으면서 보라색 외계인과 운명을 건 전쟁을 그린 <어벤져스:엔드게임>(이하, <엔드게임>)은 페이즈4 이전 MCU 10년 역사에서 사실상 MCU를 다시 시작한다는 의미와 같을 것이다. 기존의 MCU가 하나의 시간선을 두고 관객에게 스펙타클을 선사했다면 <엔드게임> 이후 MCU에서는 다중우주와 다중시간선 즉, 멀티버스를 통해 더 방대한 서사 속에서 다양하고 매력적인 히어로들을 재현할 수 있기 때문이다. 어벤져스의 주축이었던 아이언맨과 캡틴아메리카가 동시에 은퇴한 것을 시작으로 1세대 어벤져스 히어로들이 차례차례 은퇴를 하거나 은퇴 예정 중이면서 현타가 와 떠나간 관객들이 있을 것이다. 하지만 멀티버스를 통해 더욱 거대해진 MCU에 대한 기대 역시 커졌기에 여전히 MCU는 끊을 수 없는 이야기라 여기는 관객들도 많다. 그야말로 멀티버스는 MCU에게는 성공가도를, 관객에게는 평생을 함께 할 수 있는 이야기를 제공해주는 보물처럼 느껴진다.

출처. 왓챠피디아

하지만 이야기에 대한 관객들의 기대에 반해 <블랙위도우>에서 시작한 MCU 페이즈4는 이번에 개봉한 재수없는 천재 마법사의 다중우주 대탐험을 담은 <닥터스트레인지:대혼돈의 멀티버스>(이하, <닥터스트레인지2>)까지 소문난 잔치라기엔 그렇게까지 성대하고 먹을 거 많은 잔치인 경우가 거의 없다. <스파이더맨:노웨이홈>이 현재까지 나온 페이즈4 영화 중에서는 멀티버스가 공식화된 페이즈4의 영화들 중 관객들에게 가장 성공적인 반응을 얻었을 뿐이다. 단순히 서사 전개나 인물 재현이 산만하다는 것 같은 영화 내적 요인에서만 문제가 있는 것이 아니다. 영화와 마찬가지로 MCU 세계관을 넓히고 있는 마블 드라마까지 봐야 할 것 같은 중압감과 그에 따른 피로감과 같은 영화 외적 요인도 MCU에 대한 관객들의 기대와 반응을 점점 식게 만들고 있다. 그리고 MCU와 관객이 마주한 현재의 불안감은 모두 멀티버스라는, 가능성이 넘치는 세계관에서 시작한다.


멀티버스는 IF이다. 현재 세계와는 다르지만 비슷한 세계에서 현재 세계의 '나'와 다르지만 비슷한 '나'가 존재한다면 그 세계의 '나'는 어떤 삶을 살고 있을까?'라는 물음. 리즈 시절이 과거를 향한 향수라면 멀티버스는 현재에 대한 회한이다. 하지만 향수와 회한 모두 가능성을 기반으로 한다는 점에서 같다. "그 때 그랬더라면...", "지금 다른 곳에서는 행복할지도..."와 같은 가능성은 힘든 현실을 잠시라도 잊을 수 있게 해준다는 점에서 삶의 휴식처이자 나아가 삶을 유지하는 원동력이라 할 수 있다. 지나칠 경우 스칼렛 위치가 된 완다처럼 흑화할 수도 있지만 사랑하는 비전을 잃고도 완다가 계속 살아갈 수 있던 것도 행복에 대한 가능성을 상상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심지어 MCU는 가능성을 단순히 상상하는 것만이 아니라 그 상상을 실재화할 수 있는 기술과 능력이 존재하는 세계이다. 현실태에 가까운 가능성이 존재하는 세계는 닥터 스트레인지에게 "정말 그게 최선이었어?"라고 묻는 닉 웨스트의 말처럼 항상 가능성을 되물을 수밖에 없는 불안정한 세계이다.

출처. 왓챠피디아

문제는 현실태에 가까운 가능성인 멀티버스는 MCU라는 거대한 세계관에 내적으로만 영향을 미치는 것이 아니라 MCU 외부 즉, 현실의 마블에까지 영향을 미친다. 이미 서술했듯 마블은 영화만이 아니라 드라마를 통해서 10년이라는 세월동안 MCU라는 거대한 세계관을 구축했고 <엔드게임> 이후부터는 멀티버스라는 설정으로 세계관의 확장을 더욱 가속화했다. 이 가속은 어떤 한 히어로가 MCU 시간선 중 어느 한 시점에 존재했으며 기존의 히어로들과 한 팀을 이루는 단선의 과정이 아니라 다차원의 우주에서 히어로들이 동시다발적으로 존재하며 서로에게 영향을 주는 다중의 과정이다. 사실상 마블에서도 자신들의 세계가 어떻게 발전할 지 예측할 수 없는 것이다. 이 경우 겉잡을 수 없는 서사를 마무리하기 위해 파워 인플레이션과 같은 무리수를 사용할 수밖에 없어진다. "원래라면 이길 수 없는 보라 외계인을 연인을 잃은 슬픔과 분노로 더 강력한 힘을 내며 홀로 압도했다."는 서사에도 불구하고 설정이 잘못됐다는 비판을 받은 <엔드게임>의 완다를 보라. 심지어 이번 <닥터스트레인지2>에서는 카마르타지의 모든 마법사들을 홀로 학살하는, 믿을 수 없는 위용을 보였다.

출처. 왓챠피디아

영화 외적으로 세계관의 겉잡을 수 없는 성장과 영화 내적으로 파워 인플레이션과 같은 과도한 설정은 일부분에 불과한 멀티버스의 영향력이다. 가장 위험천만한 멀티버스의 영향력은 지나칠 정도로 도덕적인 주제의식이다. 얼마나 대단하고 잘 만든 세계관이든 간에 MCU는 결국 권선징악에 기반한 영웅 서사이다. 즉, 관객은 MCU의 서사가 어떻게 진행되든 간에 이미 큰 결말은 알고 있다. 마블은 세부적으로 얼마나 거대한 역경이 있으며 그 역경을 영웅이 어떻게 이겨내 세계의 선을 지키는지를 섬세하게 연출할 뿐이다. 이러한 마블의 섬세한 연출이 가장 빛을 발한 순간은 어벤져스-타노스를 명확하게 선악으로 구분하지 않은 상태에서 <어벤져스:인피니티워>에서 타노스가 승리하게 한 것이다. 타노스만이 아니라 페이즈3까지 마블 영화의 인물들은 선악을 명확히 구분해 정의내릴 수 없었다. 즉, 페이즈3까지 MCU는 권선징악이라는 도덕적 주제의식에 기반한 영웅 서사임에도 주제의식이 지나치게 도덕적이라는 생각을 하기 어려웠다.

출처. 왓챠피디아

하지만 페이즈4부터는 다르다. 선악의 경계가 모호했던 어벤져스-타노스의 구도에서 타노스는 완전히 몰락했고 어벤져스 역시 적잖은 피해를 받으며 상처 뿐인 승리를 얻었다. 작게는 선이라 여겨진 측도 역시 악이라 여겨진 측만큼이나 구심점을 잃었으며 크게는 완전한 선이 정해진 것이다. 이로 인해 페이즈4 이후 마블 영화의 인물 구도는 어벤져스 측의 인물들이 반드시 선이고 반대측 인물들이 반드시 악이라는 명확한 선악 구도를 형성한다. 이러한 명확한 선악 구도는 멀티버스라는 거대한 가능성의 세계를 만나면서 극단적인 형태로 나아간다. 멀티버스에는 어느 정도 예측하거나 대항할 수 있는 빌런이 아니라 압도적인 빌런이 있을 수밖에 없다. 자기 세계에서 어깨 좀 피고 다닌 일루미나티가 본체도 아닌 빙의한 완다에게 전원이 학살당하는 것을 보라. 놀라우리만치 지식이 없는 멀티버스에서 각 세계는 서로가 예측 불가능하고 나아가 압도적일 수도 있다. 하지만 이미 확고해진 선악 구도에서 애초부터 도덕적인 권선징악이라는 주제의식은 선이 반드시 승리해야 한다는, 법칙에 가까운 당위성으로 모순되게 작용한다.

출처. 왓챠피디아

실제로 <닥터 스트레인지2>는 개인의 행복을 위해 학살을 하는 스칼렛 위치와 다수의 생명을 위하면서도 개인의 행복을 선택하되 자신은 희생하는 닥터 스트레인지를 대조하면서 명확하게 스칼렛 위치를 압도적인 악으로 명확하게 구분한다. 멀티버스에 다양한 닥터 스트레인지가 있다는 것을 보여주지만 MCU의 닥터 스트레인지는 자신의 행복을 희생하는 것을 받아들이면서 다수를 구하는 영웅으로 다시 우뚝 선다. 나아가 압도적인 악이었던 스칼렛 위치가 된 이쪽 세계 완다는 저쪽 세계의 완다에게 "사랑으로 키울게.(Know that they'll be loved.)"라는 말을 들으며 개인의 행복이 아닌 다수의 생명을 선택하게 된다. 가장 문제적인 것은 스칼렛 위치가 다수의 생명과 멀티버스 속 자기 아이들의 행복 중 어떤 지점을 옳다고 생각하며 희생했는지 명확하지 않은 가운데 영화에서는 그녀가 옳은 일을 선택한 것으로 발화된다는 것이다. 어떤 지점을 옳게 생각했는지 명확하지 않은 가운데 어쨌든 선으로 회귀한 것으로 발화되는 완다의 희생은 법칙으로서 작용하는 도덕적인 주제의식으로 해석되거나 당연히 그렇게 될 것이었음을 암시하는 듯하다.


마블이 자신들의 만화를 영화와 드라마라는 영상 기반의 서사 텍스트로 재가공하는 과정에서 멀티버스를 활용해 단일 세계관으로는 가장 거대할지도 모를 MCU 세계관을 구축하고 있다는 것은 대단한 것임에 틀림없다. 하지만 멀티버스가 MCU 세계관에 활력을 불어넣은 것인지는 아직 속단할 수 없다. <이터널스>에서 마블은 가능성과 관련해서 기계론의 세계관과 목적론의 세계관에서 영웅은 목적론의 세계관에 입각해야 한다고 말하는 듯했다. 그러나 페이즈4 영화에서 특히 이번 <닥터 스트레인지2>는 꽃밭이라 생각한 가능성의 영역에서 어느 정도 안전하게 착지하기는 했으나 멀티버스의 예측 불가능함과 겉잡을 수 없음이라는 특징으로 인해 아슬아슬한 줄타기를 한 모양새다. 이번에야 압도적인 악인 스칼렛 위치에게 적절한 감정 서사를 부여해 해결하면서 지나친 도덕적 주제의식으로 회귀하지는 않았으나 점점 더 거대해질 가능성의 멀티버스에서 마블에게 경직으로 인해 좌초할 위험은 여전하다. 센스 있는 유머나 거대한 스펙타클으로만 가능성 위를 줄타기하는 것은 관객만이 아니라 MCU 자체에도 단순히 불안함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실제 위기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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