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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Gozetto Jul 25. 2022

당신의 손을 기억하는 망부석(2)

용산. CGV. 헤어질 결심. 서래, 사라져 지키다.

*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 1부를 읽고 와주시기 바랍니다.


사랑은 억지로 끝낼 수 있는 감정이 아니다. 자신을 이용했다는 배신감은 "우리 일"이라고 말하던 서래의 목소리와 공존한다. 그리움과 배신감이 공존하는 해준은 더 이상 산 사람이 아니다. 눈코입이 없고 생각도 없는 해파리이다. 서래 사건 이후로 답답하기 그지 없는 정안과 살면서 해준은 더 피폐해졌다. 정안은 해준을 걱정하며 사랑하지만 해준에게 정안의 사랑은 도움이 안 된다. 오히려 자라가 필요할 정도로 우울하고 우울함은 석류처럼 해준을 시들게 한다. 정안과 함께 있어 자신도 행복하다는 말은 흘러가고 살인과 폭력도 있어야 행복하다는 정안의 말에 슬프면서도 오랜만에 웃는다. 아, 지금 이곳은 어디인가.

출처. 왓챠피디아.

서래라고 다르지 않다. 자신의 생존을 위해 바람직하고 믿음직한, 품위 있고 친절한 남자를 배신한 것을 후회한다. 잊어야 살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하며 다시 한 번 바람직하지도 믿음직하지도 않고 품위라고는 찾아볼 수 없으며 잠깐의 담배도 참지 못하면서 입으로만 사랑한다고 말하는 사기꾼 남자와 결혼한다. 하지만 붕괴되어 가는 와중에도 마지막까지 서래를 위해 깊은 바다에 서래를 사랑하는 자신의 마음을 못 찾게 버리라는 해준의 사랑이 그립다. 신혼 부부처럼 편안한 분위기에서 함께 맛있게 먹었던 스시는 어딘가 부족하게 느껴진다. 무너지고 깨어진 목소리를 들을 때마다 자신을 위해 자부심을 잃고 희생한 해준의 사랑을 떠오르며 사무친 그리움에 잠긴다. 당신을 보기 위해서는 오직 이것밖에 방법이 없다.

출처. 왓챠피디아.

남편 호석과 자신을 쫓는 사기 피해자 사철성을 피한다는 핑계로 서래는 이포로 이사한다. 단지 해준을 보기 위해서. 다른 이유는 아무것도 없다. 사람들을 떠나게 하는 찝찝한 안개가 가득하지만 반대로 그 안개 안에는 해준이 있다. 과거의 기억으로 조금 불편하지만 여전히 서래는 해준을 올곧게 바라보며 "같은 옷을 입고 있는데 신발은 구두를 신고 있네요?"라며 눈으로 인사한다. 서래를 보며 다시 눈코입이 생기고 생각을 할 수 있는 인간이 된 해준은 서래에게 "여기서는 뛸 일이 별로 없어서요."라며 화답한다. 굳이 말로 표현할 필요가 없다. 바라보는 눈빛과 눈짓으로도 서로가 서로에게 하고 싶은 말과 전하고 싶은 감정이 전달된다.


하지만 서래 덕에 인간이 되었음에도 서래를 믿기는 어렵다. 1년 전과 비슷하게 사랑하지 않고 원한 관계가 있는 남편이 자기 관할에서 죽었다면? 막 다시 인간이 된 해준에게 작동하는 것은 감성에 기반한 관심의 논리가 아니라 이성에 기반한 의심의 논리이다. 범인은 왼손잡이임에도 오른손잡이인 서래가 어떻게 살인을 했는지 강구해야 한다. 청색인지 녹색인지 파악하기 어려운 드레스를 입고 해변가에서는 무엇을 하고 있었으며 남편의 살인과는 어떻게 연관이 있는지 생각해야 한다. 불쌍한 여자가 아니다. 무언가 원하는 것이 있으며 그것을 위해 다시 남편을 죽인 여자일 뿐이다. 증거와 진술을 토대로 왼손잡이 범인인 철성을 체포했음에도 여전히 의심을 멈출 수 없다. 저 여자가 범인이어야 한다.

출처. 왓챠피디아.

"제발 정신 좀 차리세요!" 파도가 뺨을 때린다. 그제야 정신이 든다. 들을라면 언제든 들을 수 있었던 스마트 워치 속 서래의 목소리를 그제야 들을 마음이 생긴다. 자신의 심장을 갖고 싶다고 하던 그 목소리. 잠 못 드는 밤 자신의 곁에서 숨소리를 맞추며 자신을 잠들게 했던 목소리. 자신이 그립다고 울먹이는 목소리. 이포에 자신을 보기 위해서만 왔다고 말하던 목소리. 의심의 논리 사이로 관심의 논리가 피어오른다. 서래가 이용과 관심의 경계를 넘나들었다면 이제는 해준이 의심과 관심의 경계를 넘나든다. 서래는 여전히 호석의 죽음에 연관이 있는 피의자이다. 아니 다른 곳에서는 내리지 않은 눈으로 하얗게 변한 호미산에서 서래는 자신을 안아주고 입술만큼이나 보드라워진 손으로 자신의 볼과 입술을 매만져준, 꼿꼿하기에 사랑하는 여자이다. 아니.


아니.


아니.


아니.


아니.


의심과 관심의 경계에서 이도저도 못하는 해준에게 찾아온다. 감히 담아낼 수 없을 정도로 숭고하고 아름다운 사랑이. 무너지고 깨어지기 이전으로 해준을 돌려 보내기 위해 서래는 해준이 자신에게 그랬던 것처럼, 아니 그것보다 더 크게 자기 목숨마저도 내놓을 각오를 한다. 이포에 와서 해준을 봤으니 그것으로 되었다. 해준 덕분에 살 수 있었던 402일이다. 자신을 사랑하기에 자부심이 무너지고 깨어졌음에도 온전히 자신을 희생한 해준. 희생의 사랑이 담긴 증표마저도 자신에게 마지막 처리를 맡기고 간 해준. 무너지고 깨어지기 이전으로 해준을 다시 올리기 위해 서래는 늙고 병드신 철성의 어머니를 편안하게 보내드린다. 서래 본인을 위해 온전히 자신을 희생한 해준의 사랑으로 자신을 협박한 남편 호석을 죽이기 위해.

출처. 왓챠피디아.

"당신이 사랑한다고 말했을 때 당신의 사랑이 끝났고, 당신의 사랑이 끝났을 때 내 사랑이 시작됐어요." 비록 해준이 기억하지 못해도 괜찮다. 이것으로 된 것이다. 그저 차분하게 모래사장에 땅을 파고 그 안에 가만히 앉는다. 지혜로운 자가 좋아한다는 바다가 지혜로운 자신을 씻겨준다. 모래로 더럽혀진 손이 씻기며 보드라운 그 모습을 보인다. 항상 마음에서 언제나 해결되지 않은, 미결인 자신을 기억하길. 미결이기에 원망스러울 수 있지만 이제는 입술만큼이나 보드라워진 이 손처럼 자신을, 우리의 사랑을 아름답게 기억하길. 그 아름다운 기억과 함께 모래와 바닷물에 파묻힐 자신을 딛고 해준이 다시는 무너지고 깨지지 말고 꼿꼿하게 서길.  


"깊은 바다에 버려요. 아무도 못 찾게 해요." 사랑한다고 했는데. 무너지고 깨어진다 해도 누구보다도 당신을 사랑하기에 스스로 무너지기를 택했는데. 서래와 관련이 있을 때만 흘렸지만 결국 가짜에 불과했던 눈물이 아니라 자신을 위해 스스로 무너지기를 택한 서래의 사랑에 눈물이 흐른다. 어디로 갔나요? 어디에 있나요? 서래가 묻힌 모래와 바닷물을 딛고 이리저리 돌아다닌다. 주위를 맴돌며 외친다. 어긋나버린 서로를 향한 시선을 부여 잡기 위해서 외친다. 해준에게는 저주가 걸렸다. 그것도 평생에 걸쳐 가장 사무치지만 아름다운 저주이다. 서래가 해준만 바라보듯 해준도 서래만 바라본다. 비록 엇갈렸을지라도.

출처. 왓챠피디아.

누군가는 서래와 해준의 사랑이 완결된 사랑이 아니라고 할지도 모른다. 서래가 해준에게 저주를 걸었으며 그 저주에서 해준은 평생 고통받을 것이라고 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애초에 사랑은 저주이다. 서로가 서로를 바라보건 서로를 바라보는 그 시선이 엇갈리건 사랑은 결국 상대를 바라는 것이기에 사랑은 끊임없는 미결의 고리를 만들고 순환할 뿐이다. 그 미결의 순환이 가장 아름다운 순간은 자신을 먼저 생각하는 것이 당연한 인간이 상대를 위해 온전히 자신을 바치는 것을 당연하게 생각하며 그렇게 행동하는 때일 것이다. 사랑함에도 영원히 헤어질 각오를 하면서까지 자신을 희생하는 순간말이다.








서래는 스스로 사라져 해준을 지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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