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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Gozetto Dec 02. 2022

올곧게 보는 것을 향한 아쉬운 추리

평촌. CGV. 올빼미.

* 스포일러가 있을 수 있습니다.


개봉 전부터 너무나 기대하던 영화이다. 유해진 배우가 왕으로 등장하는 영화라니. 포스터와 예고편을 보고 맡은 역할이 인조라는 것을 알고는 더욱 확신했다. 역대 왕 캐스팅 중 이렇게 잘한 경우는 다시 없을 것이라고. 실제로도 영화를 보는 내내 유해진-인조는 절대 잊히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배우의 이미지와 연기가 인물과 딱 맞아떨어진다. 다만 만족스럽다가도 일부 사실이 감춰진 채 기록되어 상상력을 자극하는 역사적 사실에 소경 침술사인 경수라는 상상의 인물을 가미해 매력적으로 시작한 영화가 마지막에는 역사 기록이라는 사실에 휩쓸린다. 특히 영화의 긴장감이 유지되지 못한 이유는 조선의 유교 질서 속 왕권의 위치라는 역사적 사실과 범인과 빌런이 일치하지 않는 가운데 사건의 범인은 입체적인 것에 반해 서사의 빌런은 평면적이라는 영화적 사실이 상호작용하기 때문이다.


1. 유교 질서와 왕권의 관계 : 뒤틀린 왕 인조


<올빼미>는 역사의 사실에 허구의 상상력을 가미한 팩션 영화라는 점에서 조선의 왕권에 대한 역사의 사실을 일부 알고 보면 영화에 몰입하기가 좋다. 특히 인조 역할에 유해진 배우만한 이가 없을 것이라는 필자의 입장을 이해하게 될 것이다. 1392년 이성계와 정도전의 합작으로 건국된 조선은 왕국이지만 왕이 아닌 양반이 중심인 국가였다. 일단 태조 이성계부터 고려인이되 북방 원나라의 피가 섞인 군부 군인 출신이다. 이러한 이중적인 혈통으로 이성계는 정도전을 중심으로 한 고려 말 중앙 유생들에 의해 왕으로 추대되어 정통성을 획득한다. 고려인의 혈통은 새로운 국가의 정통성이 될 수 있는 최소한의 조건이면서도 북방의 혈통은 결국 양반에게 의지해야 하는 왕의 정통성으로 이어지는 것이다.  이렇듯 조선 왕족의 혈통은 시작부터 양반에게 의지해야 성립하게 된다.

출처. 왓챠피디아

양반에 의지해야 하는 왕조의 정통성을 확고히 하는 방법은 유교를 국교로 삼은 조선에서 장자상속 즉, 적자이면서 장자인 왕자가 지속적으로 왕이 되는 것이었다. 장자를 중심으로 왕위가 세습되어 태조의 혈통이 '순수'하게 전해져야 양반에 의해 형성된 왕권의 정통성을 양반에게 그나마 덜 의지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선의 왕족들이 적장자상속에 눈에 불을 켠 이유이다. 하지만 알다시피 이건 태종 때부터 이미 물 건너 갔다. 태종 이전에 정종이 적장자상속을 한 최초의 왕이었으나 태종 이후부터는 조선의 왕 중 장자이기에 왕위에 오른 경우가 문종과 단종 등을 합해 7명 즉, 정종까지 합쳐 8명에 불과하다. 일부의 경우를 제외하면 조선은 왕이 아닌 양반에 의해 다스려지는 국가였던 셈이다.


특히 선조-광해군-인조로 이어지는 왕위 세습의 정통성은 위의 논거에서 봤을 때 땅에 떨어진 시기이다. 선조는 서자인 명종의 이복형 덕흥군의 아들로 서자 출신이며 광해군도 선조의 서자 출신이다. 하지만 이 중 인조의 정통성이 가장 처참한데 서자 출신인데다 반정으로 왕위에 올랐으며 동시에 삼전도에서 청 황제에게 항복해 사대의 예조차 지키지 못한 왕이다. 사대의 예는 조선 왕족과 양반 사회의 구성원이라면 겉으로라도 따라야 하는 기본 중의 기본이다. 서자임에도 반정으로 왕위에 올랐다는 점에서 인조의 승계는 양반에 의한 승계이며 그렇기에 인조의 정통성은 이미 흔들리고 있다 봐야 한다. 그런데 당대 권력 사회의 가장 기본 중 기본인 사대의 예조차 오랑캐라 무시한 청에 항복하면서 지키지 못했으니 인조가 본인의 지위와 권력에 대해 얼마나 불안해 했을지 알 만하다.


이러한 인조의 불안감을 <올빼미>는 '뒤틀림'으로 이미지화 하고 그에 맞게 유해진 배우를 캐스팅한 것으로 보인다. 단순히 유해진 배우의 외모를 일반적으로 추()로 인식하기 때문이 아니다. 뒤틀림(醜)은 마음의 문제에서 시작한다. 본인의 정통성이 불안정하다는 것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으며 몰락한 왕 광해군의 최후를 눈으로 직접 본 인조이기에 유해진의 인조는 마음이 뒤틀려 용모까지 뒤틀린 이다. 아들 소현세자는 삼전도의 굴욕을 떠올리게 해 마음의 뒤틀림이 겉으로 드러나게 한다. 얼굴의 한 쪽이 마비되면서 뒤틀린 심사를 드러내니, 구완와사다. 진실을 숨기는 왼손으로 마비가 오는 왼쪽 얼굴을 가리는 모습이 섬뜩하되 애처롭다. 마음과 용모의 뒤틀림이 끝도 없이 얽히며 더욱 단단해지니 유해진의 인조는 옹졸하면서도 잔인하고 위엄을 꾸밀 뿐 가엽다. 유해진이라는 배우 한 명으로 <올빼미>는 영화의 세계관에서 반절 이상을 완벽하게 성립시킨다.


2. 범인과 빌런의 불일치 : 소현세자를 중심으로


하지만 이 영화에서 중심인 인물은 뒤틀린 인조도 주맹증인 경수(류준열 역)도 아니다. 소현세자(김성철 역)의 죽음에 대한 진실을 밝히려 한다는 점에서 <올빼미>는 추리 영화의 성격을 띤다. 즉, 소현세자는 1차적으로 사건의 피해자라는 점에서 영화의 중심에 해당한다. 나아가 추리 장르는 "누가 세자를 죽였는가?"라는 범인 찾기, "어떻게 세자를 죽였는가?"라는 범행 방법, "왜 세자를 죽였는가?"라는 범행 동기, 이렇게 세 영역으로 구분된다. 이 중 <올빼미>는 범행 방법은 대놓고 보여주고 범인은 관객에게 슬쩍 흘리면서 범행 동기를 주된 영역으로 내세운다. 범행 동기를 추리의 결과로 제시한다는 점에서 소현세자는 단순한 피해자가 아니게 된다. 수많은 사람들이 있는 궁에서 범인은 소현세자에게 모종의 원한 혹은 이유가 있기에 살인을 저지른 것이기 때문이다. 소현세자는 살인 사건의 피해자로 영화의 중심에 있으면서 동시에 피해자이기에 다른 인물의 욕망을 비추는 거울이기도 하다.

출처. 왓챠피디아

소현세자는 몸은 유약할지라도 강건하고 올곧게 보려는 인물로 뒤틀리지 않으려 한다는 점에서 아버지 인조와 다르며 올곧게 보려 한다는 점에서 경수와 다르다. 조선을 사랑하되 청에 굴복하지는 않으려 하는 점에서 최대감(조성하 역)과도 다르다. 즉, <올빼미>의 세계관과 인물들은 실제 역사를 기반으로 기초가 잡혀 있으되 서사적으로는 소현세자를 중심으로 구축된다. 소현세자라는 거울에 비치는 인물의 형상이 명확해질수록 소현세자는 인물에게 방해자 혹은 지원자가 된다. 소현세자가 자신에게 지나치게 방해가 된다고 여기는 인물이 명확할수록 범인이 명확해지기도, 이를 이용한 추리의 반전과 과정의 긴장감도 커지게 다.


그러나 <올빼미>는 사건의 범인은 있어도 서사 전체의 빌런은 명확하지 않다. 범인이 빌런이지 않느냐고 할 수 있지만 영화는 진실을 밝히는 과정에서 범인과 빌런을 온전히 일치시키지 못한다. 나아가 범인인 인조는 입체적으로 그려지는 것에 반해 빌런 최대감이 평면적으로 그려진다. 인조의 동기는 소현세자가 지닌 경계성에 기인한다. 인조에게 소현세자는 왕권의 정통성을 세울 수 있는 왕실의 적장자이지만 반대로 정통성에 의해 뒤틀리지 않으면서도 다음 대의 후계자로서 자신의 왕위를 위협하는 경쟁자이기도 하다. 소현세자를 통해 인조의 뒤틀림은 아버지와 왕이라는, 공존할 수 없는 두 지위 사이에서 더욱 입체적으로 그려진다. 관객은 입체적인 인조를 보며 "설마..."와 "분명..." 사이에서 추리하는 긴장감을 갖게 되는 것이다.

출처. 왓챠피디아

반면 최대감은 청과 관계를 견고히 하며 조선의 변화를 꾀해야 한다 말하지만 실제로는 자신의 권력을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인물이다. 그렇기에 최대감에게 소현세자는 다음 대 왕이라는 점에서 당연히 지지해야 하는 인물이다. 문제는 최대감이 소현세자를 불편하게 생각할 이유가 없다는 것이다. 인조는 정통성이 약하며 소현세자는 만성질환이 있을 정도로 병약하기에 둘 모두 최대감에게 위협적이지 않다. 즉, 서사에서 최대감은 전형적인 권력자일 뿐 실상 추리 서사에서 관객의 의심을 받을 정도로 중요한 위치에 있지 못한다. 오히려 권력의 실세라는 빌런의 위치에서 후계자인 소현세자를 노골적으로 지지해 안 그래도 정통성으로 불안해하며 뒤틀려 있는 인조를 자극하는 역할만 할 뿐이다.

출처. 왓챠피디아

인조와 최대감 이외에 범인이면서 빌런이 될 수 있는 인물이 있다면 소용 조씨(안은진 역)를 들 수 있다. 하지만 조씨 역시 소현세자와 대립각이 이미지로만 제시될 뿐 마찬가지로 추리 서사에서 관객의 의심을 받을 정도가 되지는 못한다. 서자이되 왕자를 낳은 왕실의 여인이기에 소현세자는 조씨에게 왕위 경쟁자이다. 그러나 역사상 왕위계승권을 가지고 있는 서자는 적자에 의해 항상 목숨을 위협받음에도 영화는 조씨가 소현세자의 귀환에 걱정하는 모습도 보여주지 않는다. 그저 조씨는 어리고 아름다운 빈이라는 팜므파탈의 이미지로만 그려질 뿐이다. 하다못해 자신의 아들을 왕위 계승자로 만들기 위해 직접적으로 소현세자와 대립하며 최대감과 결탁하는 모습도 없다. 조씨는 소현세자를 불편하게 생각할 여지가 충분함에도 평면적으로 그려져 사실상 없어도 문제 없는 인물이 된다. 서사에서 존재할 이유는 인조의 밀서를 어의인 이형익(최무성 역)에게 전달하는 역할 하나 때문이다.

출처. 왓챠피디아

주맹증이라는 경수의 병과 이를 알고 있는 인물이 소현세자를 제외하면 없다는 정보의 비대칭성에서 오는 영화의 긴장감은 범인이 인조라는 사실이 밝혀지기 전까지는 어떻게든 유지된다. 하지만 이는 아직 범인과 빌런이 일치한다고 관객이 인식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완벽하게 범인이 밝혀지지 않았기에 더 두고 봐야 하는 상황이기에 남아있는 허상일 뿐이다. 등에 꽂힌 침이 떨리면서 인조가 범인이라는 사실이 밝혀지는 순간은 유해진 배우의 연기, 시야가 불명확한 왕의 침실과 등의 떨리는 연출의 합작에 의한 긴장일 뿐 범인이 인조였다는 것에 의한 긴장은 아니다. 그 이전까지 인조를 제외하면 소현세자를 죽일 만큼의 동기가 명확하게 구축된 범인(진)의 인물이 없었기에 <올빼미>의 추리는 예측 가능한 결말을 향해 가는 요식 행위에 불과하다.


이러한 요식 행위의 정점은 인조와 최대감이 결탁해 세자의 죽음을 학질로 꾸미는 장면이다. 이 장면은 살인의 동기가 권력욕임을 단순하게 보여줄 뿐만 아니라 서사의 진정한 빌런이 소현세자를 죽인 인조가 아니라 자신의 권력을 위해 인조와 소현세자 모두를 이용한 최대감임을 보인다. 관객은 추리 서사에서 동기가 평범하게 밝혀질 뿐만 아니라 아무런 의심도 받지 않던 최대감이 서사의 실제 빌런으로 부상하는 격차가 너무나 허무하게 느껴진다. 살인의 동기가 권력욕일 수 있으나 그 동기를 지닌 인물들 중 인조만이 범행을 하게 만들어진 서사에서 심지어 인조는 무의미한 범행을 저질렀다는 것이 허무하다. 더 큰 권력욕을 가진 최대감은 아무런 행동도 하지 않고 사건의 진실과 진실을 밝히면서 받는 과실을 모두 손에 넣는 것이 서사를 더욱 허무하게 만든다. 마치 모든 것을 봤다고 외치는 경수의 감동스러운 마지막 행동에 도달하는 것이 목적이었던 것처럼 아는 것이 아니라 올곧게 보는 것이 중요하다는 영화의 주제의식을 형상화하면서 영화는 요식 행위의 질주를 멈춘다.


<올빼미>는 '본다'와 '안다'를 구분해 알지라도 제대로 보지 않으려 하거나 보더라도 모른 척하는 것에서 결국 제대로 보고 피하지 않는 경수의 변화를 명확하게 제시한다. 궁궐의 밤에 희미하게나마 보이는 경수의 시선, 발이 쳐져 있어 제대로 보이지 않는 인조와 조씨, 구완와사가 도질 때 진실을 가지고 있는 왼손으로 마비가 온 왼쪽 얼굴을 가리는 인조의 모습 등을 통해 제대로 그리고 올곧게 봐야 한다는 것을 지속적으로 강조한다. 몇몇 연출의 측면에서 이미지를 연결해 구체화하여 주제로 도달하는 것이 상당히 탁월하다. 유해진 배우의 연기는 말할 것도 없으며 다른 배우들의 연기도 굉장히 안정적이다. 특히 소현세자를 맡은 김성철 배우의 연기가 영화의 중심을 잘 잡고 있다. 이렇듯 여러 장점들이 눈에 보인 영화인 만큼 서사의 가장 큰 맥인 추리 서사가 결말을 위한 요식 행위마냥 허무하게 끝나는 것은 너무나 아쉽다. 보는 것을 통해 아는 것에 도달하는 영화가 정작 스스로를 보지 못한 것이 아이러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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