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워킹맘의 존버실패기] #4
어렸을 때부터 나는 바다와 물을 좋아했는데 여행도 항상 바닷가로 갔고, 회사 다닐 때에는 휴가내고 물 좋다는 바다를 찾아다니는 게 낙이었다. 바다에 가서는 근본없는 개헤엄을 치거나 물 속에 잠수하는 것이 좋았다. 물 안에 머리를 모두 담그고 도리도리를 하면 머리카락이 한 올 한 올씩 풀어지면서 검은 수초처럼 파도에 흔들렸다. 나는 머리가 미친년처럼 풀어지는 그 때 황홀한 자유로움을 느꼈다. 물 속에서 그렇게 있다가 갑자기 퍼뜩! 고개를 들면, 공포영화 주온의 주인공처럼 머리카락이 앞 얼굴을 다 덮게 된다. 아들이 이걸 보고 꺄르르 좋아해줘서 한 동안 우리는 바닷가에서 미친년 놀이를 하면서 천진스럽게 놀았다. (이걸 보면 아들이 세 네살 정도 되었을 것이라 짐작하시겠지만, 우리집 원숭이는 만 11세다.)
머리 미역 놀이를 하지 않는 날에는 스노쿨링을 했다. 구명조끼를 입고 물 위에 둥둥 떠서 보는 바다 속 세상은 To do list가 가득 찬 회사 말고도 또 다른 삶이 있다고 말해주는 것 같았다. 땅 위에 살 때는 육지만 보이지만 지구의 70%는 바다이지 않나. 오로지 입을 이용해서 작은 대롱으로 숨쉬는데 집중하다 보면, 지랄맞은 상사나 그 지랄에 말 한마디도 못했던 븅신같은 내 자신, 시어머니에 대한 미움, 엄마 노릇을 잘 하지 못한다는 죄책감 따위가 생각나지 않았다.
그렇게 바다에서 시간을 보내는 게 좋았다. 물 위에 떠서 생선을 보는 일을 즐기다보니 이제는 물 속에 들어가 좀 더 가까이 바다를 느끼고 싶어졌다. 스쿠버다이빙은 몇 년 동안 나의 버킷리스트에 장기 주차 되어 있었지만 겁나서 시작을 못했던 일이었다. 공기통을 들고 시커멓게 깊은 바다로 내려가는 게 두려웠다. 만약에 사고라도 나면 어쩔… 이래저래 할 일이 많아 안그래도 정신없는데 취미에까지 신경쓰기 싫어서 미뤄왔던 일이었다.
그렇지만 내가 언제까지 존버할 수 있을지 모르고, 그 동안에는 갖은 뻘짓을 해보기로 단단히 결심했으므로 더 미루지 않고 시작하기로 했다. 나는 업무 중간중간에 다이빙 강습, 오픈워터 자격증 등을 검색했다. 관련한 블로그 글을 읽을 때면 다른 때보다 짜증이 훨씬 덜 났다. 스쿠버 다이빙 자격증은 대략 오픈워터와 어드밴스드- 레스큐 정도로 볼 수 있는데 다이빙 단체별로 이론 교육과 필기시험, 실습을 잘 수행해야 해당 자격증을 딸 수 있었다.
나는 PADI라는 단체의 오픈워터 자격증부터 시작하기로 하고 여러 카페와 개인 강사 등등을 서치해서 그 중 한 분과 1:1로 교육을 받게 됐다. 같이 할 수 있는 친구나 동료, 가족이 있었다면 훨씬 좋았겠지만 나는 내 자신을 설득하기에도 이미 시간을 많이 썼으므로 늦은 대로 그냥 혼자 배우기로 마음먹었다.
퇴근 후, 아이가 실내 체육관에서 트렘플린을 하고 늦게 오는 날로 첫 교육을 잡았다. 종합운동장에 있는 5m짜리 잠수풀 앞에서 강사님을 만났다. 간단하게 설명을 듣고 사고가 나도 내 책임이다…가 써 있는 문서에 사인을 한 뒤 수영장으로 갔다. 강사님은 내 몸을 재빨리 훑으시더니 수트는M으로 입으면 되겠네요. 하셨다. 나는 큰 소리로 아뇨, 아뇨!! 라지요, 라지로 주세요!! 부끄러움을 잊은 채 다급하게 말했다. 결국 몸보다 훨씬 작은 다이빙 수트를 들고 탈의실로 가는데, 그 계단길이 무척 신선했다. 뭔가 단단히 배울 수 있을 것만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