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워킹맘의 존버실패기] #5
언제나 그렇듯, 퇴근 후 약속이 있는 날은 없던 업무도 나에게 떨어진다. 스쿠버 다이빙 첫 교육을 받던 날도 역시 오후에 긴급한 일이 발생했다. 급히 마무리한다고 하고 나왔는데, 탈의실에서 보니 다른 팀 상무에게 부재중 전화 3통과 문자 메시지가 와 있었다. 기분이 확 찝찝해졌고, 다시 회사로 돌아가 메일을 보내고 시원한 마음으로 그냥 집에 가고 싶었다. 퇴근 시간 즈음 왔던 연락이지만 보통의 직장인은 6시 즈음 사무실에 앉아있다. 나는 퇴근을 기다렸다가 날카로운 칼로 당근 깍둑썰기하듯 단박에 나왔는데, 역시 그런 날 딱 맞춰서 윗사람들에게 전화가 온다.
사실 잘 생각해보면 회사에서 스스로를 지치게 하는 건 나를 증명해 보이고 싶고, 내 업무로 칭찬을 받고자 하는 인정욕구다. 남들보다 업무를 빨리 처리하고 싶고, 돋보이고 싶고, 인정받고 싶은 그 마음에서 무리를 하게 된다. 화살표가 내 속에 뻗어나오는 게 아니라 타인의 기대와 인정에 맞춰져 있으므로 그에 부응하기 위한 목적으로 일하게 된다. 나는 직장에서 예전처럼 인정받고 싶었다. 반짝반짝하던 그 때처럼 칭찬을 듣고 싶었다. 상사에게 예쁨받는 부하가 되고 싶었고 후배들에게 멋있는 선배처럼 보이고 싶었다. 그래서 더 힘들었던 게 아니었을까. 하나도 멋지지 않은 내 자신을 보면서 계속 과거의 나를 버리지 못하고 지금 모습을 인정하지 못해서 그런게 아니었을까.
예전이라면 다이빙 수트를 입기 전 그냥 회사로 돌아갔을지도 모른다. 늘 열심히 하려했고, 다른팀 상무에게라도 나의 성실함과 신속성을 증명해 보이고 싶어했을 테니까. 그러나 나는 이제 언제 그만두어도 이상하지 않은, 배째와 존버 정신을 연마하는 중이었으므로 ‘퇴근해서 지금 밖에 있고, 요청하신 자료는 내일 필요한 시간 전에 보내 놓겠다’ 고 답문자를 보내고 핸드폰을 껐다. 교육받을 기분은 아니었지만 교육비 일부를 먼저 냈기 때문에 어쨌든 열심히 들어야 했다. 어쩔 때는 강제성이 큰 도움이 되기도 한다.
오픈워터 교육은 공기통을 매고 수영장으로 들어가 물에 적응하고 마스크 물빼기 등의 기본적인 기술을 배운다. 물속에서는 말을 할 수 없으니 기본적인 수신호를 익히고 그 다음 5M 깊이로 잠수해서 유영하는 것으로 진행됐다. 먼저 다이빙 수트를 입어야 하는데, 그 고무옷이 몸에 비해 턱없이 작았다. 분명 난 옷을 입고 있는데 빨가벗은 느낌이었다. 게다가 웨이트라고 불리는 무거운 납벨트 같은 것을 허리에 걸치다 보니 그 위의 불룩한 뱃살이 까꿍!하는데 가릴 수도 없었다. 나는 물이 무섭지 않다고 생각했는데, 막상 들어가보니 가슴이 답답하고 귀가 아파서 몇 분 있지 못했다. 올라가자는 수신호는 ‘최고다’ 할 때 엄지를 치켜드는 그 동작인데 나는 그것만 계속하면서 올라가자며 다이빙 강사를 쪼았다. 강사님은 처음엔 내 뜻대로 몇 번 올라가 주더니 두 번째 교육에서부터는 내가 신호를 계속 보내도 고개를 도리도리 하면서 요리조리 나를 끌고 다녔다.
수영장 교육이 끝나면 진짜 바다에 나가서 다이빙을 해야 오픈워터를 딸 수 있다. 나는 남편에게 같이 배워서 버디를 하고, 세계 바다의 각종 생선들을 보자고 꼬드겼다. 겁 많은 그는 절대 할 수 없겠다고 했다. 자기는 혈압이 높아서 안된다고 했다. 다이빙은 싫었지만 바다는 좋아하는 남편은 해양 실습에 같이 따라가기로 했다. 그리하여 나는 가족들을 이끌고 강릉에 가서 동해 바다를 경험하게 되었다. 나는 거기서 공포의 첫 다이빙을 하면서, 왜 수영 선생님이 가능하면 해외 바다에서 다이빙을 시작하라고 했는지 알 수 있게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