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고집엄마 Mar 29. 2021

'나'를 위한 브런치

모든건 '시작'에서 시작된다.


결혼한 지 13년째가 되어간다.

1호는 초등학교 5학년이 되었고, 2호는 3학년이 되었다.

남편과 나는 10년이 넘는 기간 동안 서로에게 너무나 익숙해졌고 피 터지게 싸웠던 날들도 많이 줄었다.

새로운 문제들도 직면하고 있는 중이지만 예전에 비하면 우리 가족은 평화가 찾아온 것 같다.

마음의 여유가 생기기 시작하니 '나'를 위한 무언가를 하고 싶었다.

몇 년 전에는 코바늘의 매력에 빠져 1년을 넘게 배웠는데 손재주가 없어 가방 하나 만들어내기 벅차다.

내가 할 수 있는 게 뭐가 있을까? 하며 생각해보니 일단 무엇이든 '배워야겠다'라는 욕심이 생겼다.


요리?

매일매일 질리게 하고 있는데 뭐하러.

먹고살 만큼만 잘하면 되는 거지.

영어공부?

나보다 아이들에게 투자해 여행을 따라다니기로 남편과 함께 약속했다.

이제 1호는 나보다 영어는 더 많이 한다.

나에게는 번역 어플과 바디랭귀지면 된다.

운동?

댄스도 배워봤고 여성만 다닌다는 순환운동도 해봤고 스피닝도 배워봤다.

스쿼시도 해봤고 짧았지만 집에서 영상을 보며 요가도 배워봤다.

저질체력인 나는 운동을 배울수록 에너지가 급격히 떨어져 집안일에 소원해진다는 걸 깨달았다.

그리고 알게 된 건 나에게 제일 잘 맞는 운동은 걷기였다.

이젠 시간이 나면 열심히 걷는다.


내가 좋아하는 게 뭐가 있을까?

집 좋아하는 내가 집 밖을 안 나가고 애들을 케어하면서 할 수 있는 일은 없을까?

그러다 문뜩 내가 하고 싶은 건 '글쓰기'라는 걸 알았다.


난 유료 일기 어플에 일기를 간간히 쓰고 있었고 그곳은 아무에게도 말하기 싫은 감정을 쏟아내는 곳이었다.

처음 일기의 시작은 나의 운동기록이었다.

2020년 3월. 코로나로 인해 전국의 학교들은 계속해서 개학이 연기됐고

우리 집 1호와 2호는 24시간을 나와 함께 했다.

목숨도 바꿀 만큼 내가 사랑하는 아이들이지만 하루 종일 붙어있으면 정말 숨이 턱턱 막힐 때가 있다.

그렇게 숨 쉴 구멍을 찾아낸 게 '나가서 걷기라도 하자.'

저녁에는 퇴근 후 운동하려는 사람들로 왠지 불안하니 새벽에 나가자고 생각했다.

남편 출근할 때 따라나서서 1시간이라도 걷고 애들이 깨기 전에 들어오자고..

새벽 루틴을 시작한 나 자신이 대견스러워 기록으로 남기고 싶은 마음으로 시작한 게 일기였다.

사진으로 지나가는 길에 핀 동백꽃을 찍고 벚꽃도 찍으며 내가 운동한 시간을 기록했다.

그 날 하루를 아주 짧게 '글'로 기록했고 그 외 지나갔던 일이 생각나도 기록을 하고

나의 생각들을 글로 표현하고 싶을 때마다 짧게나마 기록했다.

하지만 만족하겠거니 생각했던 그 일기는 무언가 부족한 느낌이 들었다.

핸드폰으로 글을 입력하기엔 손가락 2개로만 지금 머릿속 말들을 얼른 정리하기에는 역부족이었다.

다른 방법을 찾아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어디에다 써야 할지 막막했다.

온 가족이 다 같이 쓰는 노트북이라 내가 문서로 남겨 놓으면 금방 들통날 것 같았고

왠지 놀림거리가 될 거라 생각했다.

그렇게 찾고 찾은 게 '브런치'였다.

블로그로 사람들이 올린 수많은 경험들과 방법들, 작가 승인 이야기 등 자료는 많았다.

일단 난 그렇게 브런치에 등록을 했지만 처음부터 작가 승인에 눈독을 들이지는 않았다.

너무나 많은 사람들이 작가 승인은 어렵고 어떤 사람은 9번째 도전에 승인을 받았다고 했다.

역시 세상에 쉬운 건 없다고 생각해서 난 그냥 일기 용도로 쓰기 위해 브런치를 '이용'하려 했다.

글을 하나 썼다. 그리고 하나 더 썼다.

하지만 역시나 만족감이 들지 않았다. 왜 일까. 난 도대체 뭘 원하는 걸까.


그렇게 고민을 하다가 그래. 그림이나 그려보자.

코로나 시대로 인해 온라인 클래스가 많이 늘어나 있다.

유명한 인터넷 플랫폼을 찾아내 등록을 했고 집에 애들이 쓰던 아이패드로 수업을 배워나갔다.

어플 쓰는 법을 터득했고 서툴지만 난 나만의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그렇게 SNS로 나의 일상을 그림으로 올리기 시작했고 반응은 그리 나쁘진 않았다.

사람들과 소통하는 게 재밌었고 비슷한 사람들끼리 서로 위로해주고 기뻐해 주는 글들이 좋았다.

그렇게 난 '브런치'를 잊어가고 있었다.

한 달 정도를 열심히 일상으로 그림을 그려댔다.

난 그림실력이 좋지도 못하고 표현력도 많이 떨어진다.

그곳에 나의 '생각'을 간단명료하게 짧은 글로 표현하려니 답답함이 느껴졌다.

그러다 문뜩 다시 한번 여기 '브런치'가 생각이 났다.

고민할 것도 없었다.

SNS에 올렸던 마음에 드는 그림 몇 개만 뽑아 그때 떠올랐던 생각을 글과 함께 이 곳에 저장했다.

그런 뒤 정말 아무런 걱정도 부담도 없이 '안되면 말지 뭐'라는 생각으로 몇 개의 저장 글을 선택한 뒤

작가 신청을 했다.

신청할 때도 옆에 2호가 시끌시끌해서 나에 대한 소개를 어떻게 썼는지 기억도 잘 나지 않는다.

신청을 하고 노트북을 닫음과 동시에 깊게 생각하지도 않았다. 기대가 없었기 때문에..

분명 다른 블로그에서는 며칠 뒤 브런치 측에서 메일이 온다고 했다.

보통 오는 메일은 승인 거절 메일이라고 했고 승인의 길은 멀고도 험하다고 강조하고 있었다.

그런데 난 바로 다음 날 축하한다는 메일과 함께 작가 승인이 됐다고 메일이 왔다.

메일을 읽고 있으면서도 두 눈을 의심했다.

정상적으로 온 메일이 맞는지 혹시 브런치 측에서 잘못 보낸 건 아닌지 온갖 생각을 다 했지만 맞았다.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소중한 글 기대하겠습니다."

현실을 받아들이는 순간부터 내 기분은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날아갈 것 같았다.

결혼을 하고 엄마로 10년을 넘도록 살아오면서 '나'라는 존재는 크지 않고 거의 잊어가고 있었다.

그런 내가 '인정'을 받는 기분이 들었다.

오롯이 나 혼자 이뤄낸 결과에 인정받는다는 기분은 정말이지 짜릿했다.

사실 생각해보면 운이 좋은 것 같기도 했다.

온전한 글로 인정받기보다는 몇 개의 그림과 거기에 살짝 붙은 나의 감정이 잘 들어맞았다고 생각했다.

그림 덕분에 내 글의 힘이 발휘된 건지 아닌지는 모르겠다.

브런치 측에서도 '아무나' 작가 승인을 하지 않았을 거라고 믿고 있다.

그럼에도 한 번만의 승인을 보면 난 운이 좋았던 것 같다.

하지만 그 운도 '시도'했기 때문에 일어난 일이다.

만약 생각에 그치고 하고 싶다는 마음을 가지고만 있었다면 이 일들이 과연 일어났을까?

지금 이 브런치에는 수많은 작가분들이 탄생하고 좋은 글들이 쏟아져 나오고 있다.

난 이제 시작해 이렇다 할 내세울 수 있는 건 없지만 분명한 건 있다.

'나'를 위해 '글쓰기'를 해야겠다는 것.

어디든 '시작'을 해야 한다. 시작은 어떠한 거라도 얻는다.

지금 나는 이 곳에서 날 지키고 있고 '나를 위해' 글을 써 내려간다.

그렇게 나는 나를 위해서 브런치를 '이용'하고 있다.

이 시간이 행복하다.

머릿속을 정리해서 말 주변 없는 내가 이렇게 글로 풀어나간다는 게 너무나 매력적이고 평안한 시간이 된다.





매거진의 이전글 갑자기 조회수가 폭발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