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란 적 없는 호의
'보상심리'
사람들은 무언가 일정한 일을 하게 되면 거기에 부합되는 보상을 받고 싶어 한다.
그것이 물질적일 수도 있고 정신적이거나 또 다른 무언가를 원하기도 한다.
만약 보상을 얻지 못했을 때는 미움이나 복수까지 이어지는 상황이 생기기도 하는데 그것마저도 보상에 대한 심리라고 한다.
여기서 가장 힘든 것이 상대방은 원하지 않은 일을 계속적으로 하면서 보상을 원할 때이다.
원한적도 없고 시킨 적도 없었는데 스스로 선택하고 행했던 일로 상대방에게 대가를 바란다면 일방적으로 그 행동을 당한 사람은 어떻게 해줘야 할까?
여기에 해당되는 '보상'의 종류 중에서 가장 까다롭고 조심해야 하는 부분이 '감정에 대한 보상'이다
물질적인 부분의 보상은 돈이든 물건이든 눈에 보이는 보상으로 인해 깔끔하게 해결할 수 있는 부분이 크다.
하지만 감정을 요구할 때는 절대 만족감을 줄 수가 없다.
나는 결혼을 한 뒤 사람들과의 만남이 더 어려워졌다.
처음에는 아이들이 어려서 누군가와의 만남이 너무 피곤하고 힘들었던 탓에 쉽게 이루어지지가 않았다.
아이들이 커가면서도 정신적으로 아이들을 더욱더 신경을 쓰다 보니 다른 무언가에는 에너지를 쏟고 싶지 않았지만 그 와중에도 인연은 계속해서 만들어지고 있었다.
(나 같은 게으른 성격에도 옆에 있어주는 지인들에게 너무 고맙다는 생각을 늘 한다.)
나는 혼자 있는 시간이 절대적으로 필요한 사람이다.
성격이 외향적이지 못하고 원래부터 가지고 있는 에너지가 턱없이 부족한 사람이기 때문에 혼자만의 충전시간이 꼭 필요하다.
그렇다고 사람들을 안 만나고 은둔형 같은 외톨이 스타일은 절대 아니고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고 소통하는 것을 좋아해서 막상 만나면 정말 즐거운 시간들을 보내고 들어온다.
하지만 그 뒤에는 내가 먼저 약속을 잡거나 나갈 일을 최대한 만들지 않는다.
혼자 몸을 쉬게 하고 뇌도 최대한 일을 덜 할 수 있도록 휴식을 취해야 또 다음의 소통을 최상의 에너지로 즐길 수 있는 힘이 생기기 때문이다.
그런 나에게 가끔 본인 삶의 스타일을 함께 하길 원하는 사람이 다가올 때가 있다.
일방적인 친절함으로 나에게 베풀어놓고는 무언가를 요구하는 사람이다.
처음에 그 사람은 물질적이거나 정신적으로 무조건 잘해주며 받으라고 말한다.
상대방의 친절을 끝까지 거절하는 건 예의가 아니라고 생각한 나는 결국 몇 번의 호의 중 한 번을 받게 되면 난 그 사람에게 거기에 대한 답례를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초반에는 답례도 기분 좋게 시작하지만 원하지 않은 친절을 받고 답례를 해야 하는 상황이 반복되다 보면 나도 모르게 점점 그 사람을 피하게 된다.
분명 그 사람도 처음에는 나에게 대가를 바라지 않고 친절을 베풀고 마음을 전달했을 것이다.
나 또한 그 마음을 무조건 내치지 않고 받은 것에 대한 답례를 하고 나의 좋은 마음도 전달했다.
그렇게 주고받는 상황이 몇 번 생기고 나면 이제부터 그 사람은 나에게 제대로 된 더 큰 대가를 원하게 된다.
앞서 말했다시피 나는 혼자 있어야 하는 시간이 철저하게 필요한 사람이다.
하지만 그 사람은 모든 걸 공유하고 사소한 생활 패턴까지도 함께해야 하는 사람이었던 것이다.
난 당연히 몰랐지만 이미 그 사람은 원하는 게 뭔지 확실하게 보여주기 시작하면서 나에게 무언의 요구를 시작하고 있었다.
'나에게 너무 잘해줬으니까'라는 생각으로 상대방이 원하는 모습을 몇 번 보여줬지만 그건 나의 진짜 모습이 아니기 때문에 당연하게 금방 지쳐버리게 됐고 더 이상 맞추기가 힘들다고 판단되면서 난 결국 그 사람을 피하게 되는 일이 생겼다.
문제는 여기서부터다.
자신을 피한다고 인지한 상대방은 그때부터 나로부터 본인이 이용당했다고 생각하기 시작하면서 주변에 알리기 시작했다.
'그렇게 잘해줬는데 어떻게 나한테 이럴 수 있냐'는 식상한 멘트를 날리며 자기의 기대에 못 미치는 나를 사정없이 주변인들에게 공격해버렸다.
분명히 나는 원하지 않았지만 다가와주는 마음에 결국 나도 마음을 열고 지냈다.
서로 마음으로든 뭐든 오고 가는 게 있었고 내가 혼자 일방적으로 받지만은 않았다고 분명히 기억하고 있다.
하지만 그 사람은 나에게 '기대'가 너무 높았다.
자기 삶의 색깔대로 나를 맞추고 싶은데 거기에 맞춰지지 않으니 나는 그 사람에게 나쁜 사람이 돼버린 거다.
난 그 사람의 기대만큼 잘해주지도 못했고 '난 그런 사람이 되지 못한다'라고 표현도 했지만 상대방은 그렇게 들리지 않았었나 보다.
결국 그 사람과 나는 등을 돌리고 지금은 우연히 만나면 인사 정도만 하는 껄끄러운 사이가 되어버렸다.
사실 이런 비슷한 일이 나에게는 몇 번 일어났다.
그때마다 나는 내가 할 수 있는 방어를 최대한 하고 의사표현도 하면서 나에게 '기대'하지 말라는 뜻을 다른 표현들로 전달했고 상대방은 그걸 수긍했었다.
하지만 어쩔 수 없는 보상심리에 대한 기대감은 원하지 않아도 본인이 모르는 사이에 생겨버렸기 때문에 거기에 맞춰지지 않을 때는 결국 실망을 하고 상처만 남게 된다.
의도하지 않았지만 그 사람들은 나로 인해 상처를 받아 관계에 대한 서운함과 허무함을 느꼈을 것이다.
나 역시도 점점 더 사람 관계에 대해 두려움이 생기고 나 스스로를 믿지 못하게 돼버리는 바람에 절대 깊은 관계가 되지 않으려 노력하고 웬만해서는 스쳐 지나가려 노력한다.
나 때문에 다른 사람이 상처 받아 힘들어하는 것도 싫지만 나도 원하지 않았던 일로 인해 내가 가해자가 된 기분이 드는 게 싫어서 더욱더 혼자의 시간을 선택하는 게 마음이 편해졌다.
다행히 그런 일들 반면에 날 있는 그대로 받아주고 이해하며 기다려주는 고마운 사람들도 있다.
그 사람들 덕분에 외톨이가 되지도 않고 인생이 외롭지도 않게 소통의 행복을 느끼며 살고 있지만 그 와중에도 나는 내가 어떤 사람인지 각인시켜준다.
나에게 '기대'하지 않으면 나는 알아서 당신을 끝까지 놓지 않고 당신이 변하지 않는 이상 나는 당신의 어떠한 상황도 '당신은 내 사람'이라고 표현한다.
'기대'는 '보상'에 대한 심리와 비례한다.
서로에게 너무 큰 기대를 하지 않으면 그 사이는 변질되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사람의 마음은 볼륨을 조절하 듯 내 마음조차도 내 마음대로 조절할 수 없기 때문에 기대를 하지 않는다고 다짐을 했어도 나도 모르는 사이 그 기대라는 싹이 피어오를 수가 있다.
그 마음은 어쩔 수가 없기 때문에 괴로워하거나 자책하지 않아도 된다.
대신 상대방에게 그 기대에 대한 보상을 '요구'하지 않는다면 아주 특별하거나 아주 깊어지지 않더라도 잔잔히 관계를 이어나갈 수 있지 않을까?
그러다 보면 그 관계는 뜨거운 불 속에 잘 구워진 윤기 나는 도자기 같은 사이가 되지 않을까 생각한다.
난 그렇게 믿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