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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집엄마 Apr 29. 2021

엄마가 엄마 때문에 울었다

나의 엄마도 '딸'이었다

외할머니가 요양병원으로 입원하셨다.

몇 년 전 외할아버지가 돌아가신 뒤 급격히 건강이 약해지셨던 외할머니는 자식들의 걱정 1순위셨는데 외할머니의 치매 증상이 조금씩 나타나더니 이제는 가족이 돌볼 수 없을 만큼의 증상이 보여 결국 요양병원으로 들어가시게 됐다.

들어가시기 전 날 엄마가 영상통화로 외할머니와 인사도 시켜주셨고 이모들과 삼촌들도 분위기가 좋아 나도 크게 생각하지 못해서 엄마의 마음이 어떤지 몰랐다.

외할머니가 입원하신 다음날, 사실 난 그새 잊고 있었는데 동생이 엄마에게 전화를 했다가 처음으로 통곡에 가까운 엄마의 서러운 울음을 들었다고 했다.

동생은 엄마가 그렇게 우시는 건 처음 들었다며 너무 마음이 아프다고 말했다.


6남매의 딸 중에서 막내딸인 엄마는 오빠와 언니들을 이겨먹는 독불장군 스타일의 막무가내 막내 동생이다.

그런 엄마는 나와 내 동생에게뿐만이 아니라 남편인 아빠에게도 아주 강하고 단단하신 분이다.

그런 엄마가 남자인 아들에 대고 전화로 엉엉 울었다고 하니 엄마에게 한없이 미안해졌다.

결국 엄마도 외할머니에게는 작은 막내딸인데 태산 같던 당신의 엄마를 요양병원으로 모셔야 하는 그 상황이 얼마나 찢어질 듯 아플지 감히 다 헤아릴 수 없지만 내가 짐작만 하는 그 감정만으로도 나는 마음이 너무 아팠다.

어린 시절부터 지금 내 나이가 30대 후반이 됐는데도 여전히 자식들 앞에서는 주장이 뚜렷하고, 우리 일이라면 아직도 우선으로 생각하고, 외할아버지 돌아가셨을 때 외에는 지금껏 우리 앞에서 큰 눈물 흘리지 않으셨던 엄마가 갑자기 그 순간은 모든 걸 내려놓고 무너지셨다.

상상만으로도 나의 부모님의 나쁜 일들은 나의 두 눈을 젖게 만드는데 한 분 남은 부모의 점점 약해져 가는 모습을 두 눈으로 확인하는 엄마의 마음은 얼마나 찢어지게 아플지 나는 짐작하려는 것도 힘이 든다.


동생에게 엄마의 이야기를 전해 듣고는 난 바로 엄마에게 괜찮냐는 전화를 하지 못했다.

두려웠다. 

그리고 무서웠다.

엄마의 약한 모습을 내 귀로 직접 확인하게 되는 게 싫었다.

엄마는 나에게 여전히 강하고 자식 이기는 부모 없다는 말을 가볍게 밟을 수 있는 분인데 그런 엄마가 약해지는 모습은 날 더 무너지게 만들 것만 같아 무서웠다.

핑계라면 핑계지만 가깝게 살기라도 했다면 엄마를 모시고 좋아하는 쇼핑이라도 가거나 애들을 데리고 맛있는 밥이라도 모른 척 먹었을 텐데 그러기엔 난 부모님과 너무 멀리 떨어져 살고 있다.

결국 이틀이 지난 뒤 엄마에게 전화를 걸어 괜찮냐는 말을 건네었는데 엄마는 평소처럼 안 괜찮으면 어떡할 거냐며 시끄럽다고 끊으라고 하셨다.

그런 엄마의 전화에 나는 내심 안심했다.

'그래. 이런 모습이 내 엄마지. 우리 엄마는 이게 맞지.'


딸인 내가 딸의 모습으로 힘들어하는 엄마의 마음을 헤아려주지 않은 건 너무나 미안하고 이기적이라는 걸 알지만 아직 나는 엄마의 작은 어깨가 받아들여지지 않는다.

하지만 이제 준비를 해야 한다는 건 안다.

언제 더 작아질지 모를 엄마의 어깨와 손을 부축해야 하는 시기가 멀지 않았다는 걸 인정하고 준비해서 받아들여야 한다.

반면에 엄마는 앞으로 나에게 20년은 더 강하고 자식 말 지독히도 안 듣는 고집불통, 독불장군 '할매'여야 한다.

나도 엄마가 되어버린 지금 누구보다 엄마의 마음을 다독여줘야 하겠지만 앞으로 계속 나는 엄마에게 '철없는 딸'이고 싶고 아직 엄마는 날 지켜주는 '엄마'였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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