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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집엄마 May 04. 2021

딸의 사춘기를 준비하는 나에게

'다짐'과 '목표' 그 어디쯤

올해 만 11살이 된 초등학교 5학년 딸이 사춘기를 시작하는 것 같다.

외모에 관심을 갖기 시작한 건 작년부터이긴 했는데 점점 더 옷과 액세서리에 부쩍 관심을 보인다.

내가 사주는 대로만 입던 옷도 마음에 안 들면 입지 않고 자기가 직접 옷을 고르겠다며 사이트를 뒤져본다.

손재주 없는 엄마 때문에 다양한 머리 스타일을 해보지 못하지만 어릴 때 공주님 헤어 스타일과는 분명히 다른 무언가를 요구한다.

몇 센티만 더 크면 나와 똑같아질 것 같이 키가 커버린 덕에 이제는 나의 티셔츠까지 탐내고, 발 사이즈도 같아져 자주 신지 않아 깨끗한 내가 아끼던 운동화도 이제는 딸이 마음에 든다며 신고 다닌다.

주변에서 말하는 사춘기란 부쩍 외모에 관심을 갖고 친구와 보내는 시간을 더 즐거워하면 시작한 거라고 했다.

거기에 엄마와 대화할 때 눈빛이 달라지고 말투가 변한 게 느껴지면 빼박 사춘기라고 말했다.

여기서 거의 대부분 빠지는 증상이 없다.

그럼 사춘기가 시작된 것이 맞겠지.


큰 아이가 어릴 때는 엄마가 주부라 해도 아이가 3살이면 어린이집으로 보내는 분위기였는데 그보다 더 빨리 등원을 시작한 아이들도 많아서 3살 중반까지 다녔던 문화센터에는 또래 친구는커녕 그 수업에서 큰 애가 제일 연장자였다.

큰 아이가 3살일 때 둘째가 1살이라 진짜 힘들었지만 무슨 걱정이었는지 3살까지는 큰 아이를 끼고 있다가 4살이 돼서야 겨우 큰 마음을 먹고 어린이집으로 보냈다.

처음으로 어린이집 등원한다고 그 작은 등에 가방을 메고 거울을 보며 좋아하던 게 아직도 생생하게 기억이 나는데 어느새 이렇게 커서 사춘기라는 질풍노도의 길에 한 걸음씩 걸어가고 있다.


둘째가 태어나면서 자연스레 첫째는 큰 아이 취급을 당해 미안함이 너무나 많지만 그렇다 해도 여전히 내 눈에는 어리고 아기 같은데 이제는 자꾸만 나의 손과 품을 벗어나려 한다.

누구나 겪는 사춘기라 초등학교 입학할 때부터 마음의 준비는 해왔지만 허전하고 서운함이 커지는 건 어쩔 수가 없는 것 같다.


아이들은 어릴 때 부모와의 추억이 성인이 되면 그 추억을 살아가는 힘으로 삼고 살아간다고 한다.

최대한 아이들에게 함께하는 추억을 많이 만들어줘서 아이들이 성인이 됐을 때 이 힘든 세상 속에서 살아갈 힘을 더 많이 만들어 놓을 수 있는 매개체가 부모인 것이다.

지난번에 썼던 글에도 소개했던 영화 '인터스텔라'의 명대사를 다시 한번 말해보자면,


"너희가 태어나고 엄마가 했던 말을 아빠는 이해하지 못했어. 이렇게 말했지. '이제 그저 우린 아이들에게 추억이 되면 돼.' 그게 무슨 뜻인지 이젠 알겠어. 부모는 자식의 미래를 위해 유령 같은 존재가 되는 거지."


라고 떠나야 하는 아빠가 딸에게 했던 이 대사처럼 나도 아이들에게 추억이 되어줘야 한다고 생각한다.

아빠, 엄마가 세상 전부였던 아이는 이제 아이가 생각하는 세상이 자기를 중심으로 돌아가기 시작했고 그 변화를 우리는 응원해주고 믿어줘야 한다.

가끔 나쁜 길로 내디딜 때는 그 길은 진흙길이라는 걸 뒤에서 알려주고 설령 아이가 진흙을 밟았다 해도 툴툴 털어내고 다시 길을 찾아 걸어갈 수 있도록 추억의 힘을 심어줄 수 있는 것이 부모다.


앞으로 큰 아이의 사춘기로 인해 어떤 풍파를 겪을지, 어떤 시련을 겪을지 두렵고 걱정은 되지만 끝까지 아이를 사랑하는 마음 하나로 버텨내면 내가 두려워하는 것보다 더 무던하게 지나가지 않을까 하고 기대도 해본다.

사랑을 주면 될 것이다. 

표현해주고 이대로 화목함을 유지해 준다면 아이도 늘 안정 속에서 살아갈 것이다.

자신의 마음에 혼란이 와도 기다려주고 마음 다해 널 사랑하는 부모가 있다는 믿음을 준다면 조금 돌아가더라도 다시 우리 손을 잡으러 달려와 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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