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라도 받아들이고 누구에게라도 어울리는" 식당에 관한 이야기
당신의 보통에 맞추어드립니다 | 고바야시 세카이 저/이자영 역 | 콤마
이 책은 고서점과 출판사들이 즐비한 도쿄의 진보초에 있는 '미래식당'에 관한 이야기이다.
미래식당은 12개 자리밖에 없는 작은 정식집이지만 별난 구석이 있다. 메뉴는 하나뿐이고 매일 바뀐다. 메뉴가 하나뿐이라서 주문하면 즉시 식사가 나온다. 바쁜 회사원들에게 안성맞춤이다. 저녁에는 냉장고에 있는 재료 목록을 보고 뭐든 주문할 수 있는 맞춤반찬 메뉴가 있다.
음료를 팔고 있지만, 외부 음료를 가져와도 된다. 대신 반입한 음료의 절반은 식당에 두고 가야한다. 누군가 두고간 음료는 마음껏 먹어도 된다. 마지막으로 50분을 가게에서 일하면 한끼를 먹을 수 있는 쿠폰을 주는데, 자기가 먹어도 되고 다른 사람을 위해 남겨둬도 된다. 그리고 그들-한끼 알바생들-이 종업원의 전부이다.
조금은 황당한 미래식당을 구상한 사람은 고바야시 세카이다. 미래식당이 '누구라도 받아들이고, 누구에게나 어울리는 장소'가 되었으면 한다고 했다. 그녀는 당근을 좋아해서 한동안 당근을 넣어 밥을 짓고 당근으로 만든 반찬으로만 식사를 한 적도 있다. 그녀는 자신의 식성에 대해 독특하다고, 심하게는 이상하다고 여겨졌던 경험 때문에 미래식당을 구상하게 되었다. 미래식당에서 '누구'는 음식에 대한 취향이 어떤 누구라도만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그녀는 누구의 의미를 밥값을 지불할 수 없는 사람들까지로 확장한다. 그러므로 미래식당에서 '누구'나는 모든 사람이라는 의미에 조금 더 가깝다.
미래식당은 돈이 없어도, 음식에 대한 취향이 특이해도, 그밖에 누구라도 갈 수 있다. 그녀는 미래식당이 누구라도 각자의 보통이 존중받을 수 있는 그런 장소가 되기를 바란 것 같다. 뿐만 아니라 미래식당에서 무언가가 없는 누군가가 비루해지지 않도록, 그리고 미래식당이 단순히 시혜의 장소로 남지 않도록 시스템을 갖추었다.
우리가 발딛고 있는 사회는 돈이든 사회적 지위든 안정적인 직장이든 뭐든 있어야 인간으로서 존중을 받을 수 있다. 인간으로 존재하기 위해 안간힘을 쓰면서 살고 있지만 적어도 미래식당에서는 특별한 것이 없어도 심지어는 아무것도 가지지 않았더라도 모두가 동등한 인간이 될 수 있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지불할 능력이 없는 사람은 식당에 들어갈 수 없다. 언제부터인지는 모르겠지만 돈을 지불하는 손님은 왕으로 군림한다. 점원이 무릎을 꿇고 주문을 받는 일이 자연스러워졌고, 서비스가 마음에 들지 않을 때 당당하게 컴플레인을 건다. 그리고 그것은 소비자의 당연한 권리가 되었다. 누가 돈을 주느냐를 기준으로 갑과 을이 정해진다. 어디서다 그렇다. 손님과 식당주인의 사이가 그렇고, 다시 식당주인과 일하는 직원 사이가 그렇다.
그런데 미래식당에서는 손님이 소비자로만 존재하지 않는다. 미래식당의 손님은 누구나 한끼알바를 할 수 있다. 손님에서 직원으로 지위가 바뀐다. 그렇지만 이내 다시 손님이 된다. 돈을 매개로 한 갑을관계가 미래식당에서는 비틀어진다.
저자는 손님과 종업원 사이 중간쯤에 위치한 한끼알바라는 새로운 위치 덕분에 새로운 상상이 가능하다고 말한다. 저자는 손님과 종업원 사이에 있는 한끼알바들과 관계를 맺으면서 일을 한다. 그들과 함께 다음 메뉴를 고민하기도 하고, 그들의 낯선 시선을 통해서 새로운 것을 배우기도 한다. 생산성과 효율성의 관점으로는 모험을 할 수가 없다. 모험없이는 새로운 것도 없다.
이런 생각은 회사원 시절의 내 경험과 관계가 있을지도 모르겠다. 앞에서도 이야기했듯이 나는 시스템 엔지니어로 일했다. 시스템 엔지니어는 이른바 노트북이 있으면 어디서든 일을 할 수 있는 직업이다. 회사의 정해진 자리가 아니라 카페 같은 곳에서 일을 하기도 하고, 재택근무도 가능하다. 또 지식을 혼자 알기보다 주변 사람과 공유해 회사의 울타리를 뛰어넘는 새로운 제품을 만들어내는 경우도 많다. 이런 방식을 경험했기 때문에 한끼 알바와 같은 새로운 형태를 떠올릴 수 있었는지도 모른다(62)
도움이 안된다고 생각되는 건 어떤 사람일까? (중략) 이렇게 내가 미처 몰랐던 것을 깨닫게 해주는 것이 한끼알바생 누구에게나 꼭 하나씩 있었다.. 무의식중에 효율성을 따지던 나에게 초심을 되돌아보게 하는 사람도 있었다. 50분 동안 '아, 이럴줄 알았으면 그냥 혼자서 할 걸......'로 시작해 '역시 누구에게나 배울 게 있어!'라고 결론짓게 되는 일련의 흐름은 정말 몇 번을 반복해도 신기했다. 이상하게 들릴지도 모르겠지만, 요즘 나는 한끼 알바생을 '어떤 거대한 존재가 나를 위해 보내준 사람'이라 생각하며 만나고 있다(67)
한끼알바는 주인과 손님의 협업이라는 운영방식의 새로운 이외에도, 손님과 손님사이를 연결해주는 역할도 한다. 50분을 일하고 받은 무료쿠폰은 직접 사용해도 되지만, 누군가를 위해 식당에 붙여도 된다. 그렇게 손님과 손님이 미래식당을 매개로 연결되고, 미래식당은 누구에게나 안전한 장소로 거듭난다.
한끼알바는 손님과 인연을 끊지 않기 위해 만든 것이다. 이제다 틀렸다는 생각이들거나 막다른 골목에 내몰렸을 때에 미래식당을 떠올려줬으면 좋겠다. 사회에서 내팽겨쳐진 것처럼 느껴질 때의 마지막 안전망이고 싶다. 한끼알바는 당신이 어떤 상황에 있든 '미래식당에 가면 된다'는 생각으로 올 수 있는 시스템이다(80)
가게를 열기전부터 생각한 미래식당의 비전은 '누구라도 받아들이고, 누구에게나 어울리는 장소'다. 하지만 이런 생각을 했을 때 가장 어려웠던 것이 '돈 없는 사람'을 어떻게 마음 편히 오도록 만드는가 하는 문제였다(81)
그렇다면 무료식권의 본질은 무엇인가? 나는 '당신을 도와주려합니다'라는 메시지를 계속 보내는 것이라고 생각한다.누구는 힘들고 누구는 힘들지 않다고 사람을 골라내지 않고 그냥 누구라도 받아들이는 것, 이것이 바로 무료식권의 본질이라고 생각한다(하략)(101).
무료식권을 붙이는 한끼알바생이앞면에 '2월 4일 오전시간대'라는 식으로 일한 날짜와 시간대를 적는다. (중략) 무료식권을 사용하는 사람은 뒷면에 사용한 날자를 적는다. (중략) 이렇게 날짜와 메시지가 나열되어 있을 뿐이지만 나는 개인적으로 이 방식이 아주 마음에 든다. 이는 베푸는 쪽과 도움을 받는 쪽이 직접 대면하지 않는 방식이다. '언젠가의 누군가'를 상상하며 붙이고 '언젠가의 누군가'에게 감사하며 뗀다. 나는 이런 상상들이 이 세상을 좀 더 풍부한 색으로 물들인다고 생각한다(117)
당신의 보통에 맞추어주겠다는 미래식당에서는, 모두가 보통사람이 된다. 정상과 비정상으로 구분되는 것이 아니라 각자의 다름이 존중된다. 맞춤반찬도 그런 맥락이다.
저자는 각기 다른 보통이 존재한다고 믿는다. 흔히 말하는 보통은 다수가 동의하는 무엇인 경우가 많지만 저자는 다수가 동의하는 무엇이 누군가에는 맞지 않을 수 있다는 점을 중요하게 여긴다. 일반적으로 받아들여지는 무엇이 항상 옳은 것이라고 단정하지 않는다.그런 점에서 전문가가 맛있다고 판단하는 것을 중요하게 여기지 않는다.
각자의 맛있음에 대한 감각을 모두 옳다고 인정한다. 이곳은 식당이므로 식당 안에서 모두의 보통이 존중되는 것은 주로 맛있음에 대한 감각, 즉 음식에 대한 선호를 의미하지만 이것은 다른 영역으로 확장이 가능하다.
만명의 사람은 만가지의 모습으로 살아갈텐데, 자꾸만 표준을 강요한다. 삶의 표준이라는 것이 정해져 있다. 그리고 그것을 벗어나면 비정상이 되거나, 노력이 좀 더 필요한 모자란 존재가 된다. 그러다보니 어느새 우리에게는 평범함이 가장 큰 목표가 되어버렸다. 당신의 보통에 맞추어주겠다는 미래식당은, 우리 모두가 이미 보통의 삶을 살고 있다고 말해주는 듯하다.
눈앞에 손님이 있고, 손님이 무엇을 바라는지, 기분은 어떤지, 컨디션은 어떤지,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없는지, 손님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하고 손님이 원하는 음식을 제공한다(23
맞춤반찬을 할 때는 이렇게 '그건 일반적인 맛 이론에서 벗어나는 것 같은데.....'라는 생각이 들어도 그것을 잘 정리하는 기술이 필요하다. (중략) 조림은 간장과 설탕의 달달하면서도 짭짤한 맛이 핵심이기 때문에 '염분없이'는 어려운 주문이다. 하지만 손님이 이런 주문을 했을 때에는 그만한 이유가 있을 것이다. 결국 소금 대신 흑초를 넣어 맛을 내고 설탕 코팅으로 윤기를 더해 조림같은 모양새와 맛이 나는 맞춤반찬을 만들었다 (중략) '왜 주문했는지, 그 이유를 묻는 것이 자연스러운 거 아닌가?'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그것도 맞다. 하지만 미래식당의 맞춤반찬에서 중요한 것은 그 사람의 '보통'을 받아들이는 것이다. 이렇게 생각하면 왜 내가 손님에게 이유를 묻지 않는지 알 수 있을 것이다(135)
눈앞에 손님이 있고, 손님이 무엇을 바라는지, 기분은 어떤지, 컨디션은 어떤지,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없는지, 손님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하고 손님이 원하는 음식을 제공한다(21).
각자가 살고 싶은 삶을 살 수 있고 누구든 원하는 무엇을 할 수 있는 사회. 각자의 각자다움을 세상의 상식으로 옭아매지 않고 있는 그대로 그정하는 사회. 사람들이 서로의 각자다움을 존중하고 서로의 각자다움이 발현될 수 있도록 서로 돕는 사회. 그런 사회를 꿈꾸면서 미래식당을 연 것은 아닐까.
먹고 싶은 반찬을 만들어달라고 요청할 수 있고, 어떤 사람이든 손님도 되고 직원도 되는 가게. 사람이 사람을 생각하고, 그 사람다움을 세상의 상식으로 옭아매지 않고 그냥 있는 그대로 긍정하는 곳. 미래식당 말고도 이런 생각을 가진 장소가 많아지면 어떨까요? 그런 미래가 왔으면 좋겠습니다. 저는 그런 미래에서 살고 싶습니다. (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