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에게 필요한 페미니즘 성교육
미투운동이 전방위적으로 확산되고 있다. 한국사회에서 살면서 성희롱이나 성추행의 경험이 없는 여성이 있을까? 일상적으로 일어나는 일이었지만 쉽게 말할 수 없었던 강간 문화가 서지현 검사의 용기있는 발언에 힘입어 여자들의 목소리를 통해 세상 밖으로 나오기 시작했다. 그러니까 미투운동은 우리 사회에 만연해 있으면서도 감추어져 있던 여성에 대한 차별과 폭력의 문제를 사회적 공론의 장으로 이끌어 낸 의미있고 중요한 사건이다.
생각해보면 나도 그랬다. 성희롱과 성추행의 상황에 놓였을 때 단호하게 거절하지 못했다. 단지 자연스럽게 그 상황을 빠져나오기를 바랐을 뿐이다. <아무도 대답해주지 않은 질문들:우리에게 필요한 페미니즘 성교육>은 십대들의 성에 대한 인식과 문화, 앞으로의 페미니즘 성교육이 담아야하는 가치와 철학을 다룬다. 저자가 결론적으로 하고 싶은 말은 마지막 장(7장. 솔직한 성교육이 필요하다)에 담겨있다.
"저는 무척이나 적극적이고, 페미니스트이며, 수업시간에 소설에 등장하는 상징에 대해 선생님이 잘못 설명하는 것을 지적할 수 있을 정도로 똑똑한 여학생들을 한 달에 수백명쯤 만납니다. 그런데 이 여학생들이 파티에 가서 어떤 남자가 다리에 손을 올려놓거나 다리 사이에 손을 집어넣는 상황에 처하게 되면 강력한 접착테이프를 입에 붙여놓은 것처럼 꿀먹은 벙어리가 되고 맙니다. '손 좀 치우지?'라는 말을 도무지 입 밖에 내지 못하는 거죠. 넘치는 적극성과 자신감이 그 순간에는 발휘되지 않습니다. 그 순간만큼은 내면의 다른 부분이 튀어나오거든요. 그 다음에는 후회와 수치심이 뒤따릅니다. 이렇게 돼 버리는 이유는 그런 상황에 대비해 제대로 연습이 되어있지 않기 때문입니다."(343쪽)
저자가 생각하는 바람직한 성생활은 '소통과 수평적인 의사결정에 기반한 것'이다. 침실에서 성평등이 실현될 때, 진짜 평등이 가능해질 것이라고 본다. 즉 섹슈얼리티의 문제는 정의의 문제이며, 가장 사적인 관계로서 성행위에서의 권력관계에 대한 논의가 필요하다는 거다.
"누가 성행위를 주도할 권리를 가지고 있는가? 누가 성행위를 즐길 권리를 가지고 있는가? 누가 그러한 성적 경험의 주요 수혜자인가? 누가 성행위를 즐길 자격이 있다고 느끼는가? 성행위에 참여하는 각 파트너는 '이 정도면 됐다'를 어떻게 정의하는가? 이는 연령에 관계없이 여성의 섹슈얼리티를 논할 때도 선뜻 대답하기 어려운 문제들이겠지만, 특히 어린 여성들의 성적 발달에 중요한 역할을 하는 초기 경험과 관련해서는 더더욱 답하기 까다로운 문제가 아닐 수 없다. 하지만 나는 단단히 각오하고 이러한 질문을 던졌다."(17쪽)
저자는 청소년을 대상으로 하는 성교육에 있어서도 청소년의 섹스를 자연스러운 것으로 인식한다. '옳고, 그르다' 판단하는 방식의 도덕적인 규범을 제시하기 보다는 "내가 하는 선택이 나와 주변 사람들에게 어떤 영향을 미치는가? 나에게는 어떤 결과를 가져오고 상대방에게는 어떤 결과를 가져오는가 하는 생각을 할 수 있도록(342쪽)" 가르쳐야 한다고 말한다.
그런 점에서 이 책에서 다루고 있는 페미니즘 성교육은 청소년에게뿐 아니라 지금 한국 사회를 사는 모두에게 필요하다. 이 책의 원제는 'Girls & Sex'(소녀들과 성)이다. 이를 위해서 15세에서 20세 사이의 여성 70명과 인터뷰를 했다. 다만 인터뷰의 목적이 인터뷰를 통한 십대들의 성문화에 대한 이해였다기 보다는 저자의 주장을 뒷받침하기 위한 사례 수집적 차원에 머무른 점은 아쉽다.
책에서 주로 다루고 있는 내용은 성과 관련한 미국의 대중 문화, 성에 대한 소녀들의 (모순된) 인식과 태도, 청소년 성문화를 대표하는 훅업(하룻밤 성관계를 의미하는 훅업은 키스부터 섹스까지 온갖 성행위를 포함하는데 사귀는 것은 그 순간뿐이며, 행위 후에는 다시 관계를 갖기는커녕 대화하는 일도 없다는 게 특징 - 포털에 나온 정의 인용) 등이다.
이 책에서는 미국 십대 여성들이 성적으로 해방되었다고 착각한다고 보았다. 그런 착각은 여성 스스로 자신을 성적으로 대상화하고 성폭력의 위험에 노출시킨다. 이러한 해석을 바탕으로 저자는소녀들의 성에 대한 인식과 태도, 성 생활과 문화에 대해 일관적으로 비판한다.
우리는 현재 과거에 비해 성에 대해 개방적이며 자유롭고 명시적으로 'yes means yes' 문화 속에서 살아간다. 과거에 비해 섹스에 대한 자유로운 인식과 태도가 확산되고 그래서 여성들도 성의 즐거움과 쾌락을 즐기는 듯 보인다. 하지만 저자는 섹스에 대한 개방성이 젠더에 따라 다르게 적용되는 점을 지적한다.
특히 미국의 대중문화가 포르노 문화로 변질되고 있으며 섹스를 가볍고 일회적으로 소비하는 훅업 문화가 성폭력을 조장한다고 주장한다. 일견 타당한 주장이고 동의할 수 있는 부분이 있다. 하지만 십대 여성들을 주체적이지 못하고 성적 대상화를 일삼고 성폭력에 스스로를 노출시키는 문제적 존재라는 저자의 시선은 다소 불편했다.
십대 소녀의 엄마이기도 한 저자의 우려와 걱정이 담긴 시선이겠지만, 그것은 책 후반부에서 저자가 비판한 '청소년의 섹스는 위험천만하고 모종의 대책이 필요한 위기라는 사고방식'과 다르지 않다. 저자에게는 청소년을 성과 관련한 주체로 보면서도 통제가 필요한 보호의 대상으로 보는 모순적 시선이 공존하는 듯하다.
섹스를 가볍게 즐기는 것으로 여기는 훅업 문화가 보편적인 상황에서 몇몇 인터뷰이는 섹스에 관한 개방적 태도로 자유롭게 섹스를 즐기고 있었다. 저자는 훅업에서 주도권은 남성에게 있고 자유로울 수 있는 주체는 남성이라는 점을 문제라고 보았다. 남성들에게 성욕은 자연스럽고 자랑스러운 것이지만, 여성의 성욕은 여전히 드러내기 조심스럽고 숨겨야 하기 때문이다.
훅업 과정에서도 여성의 거절은 무례하고 "싸가지 없다"고 여기고, 그 과정에서 강압적이고 폭력적으로 변할 수 있다. 또 음주와 결합하면서 성폭력이 훅업이라는 이름으로 용인될 수도 있다. 그런데도 십대와 이십대 여성들은 훅업이 자신들에게도 자유로운 선택이라고 믿는다.
또 엄연히 존재하는 '걸레'라는 낙인을 일종의 훈장처럼 여기기도 한다. 이런 인식은 나도 남자처럼 섹스를 즐길 수 있다는 생각으로 연결된다. 하지만 저자는 이와 같은 섹슈얼리티에서의 평등은 서로를 성적 대상화하는 것에 불과하다고 비판한다.
"어떤 여학생들은 나에게 "남자처럼 섹스를 즐길 수 있다"고 자랑하기도 했는데, 이는 아무 감정없이 육체적으로 얽힐 수 있다는 의미이자, 남자들이 여자들을 대상화하듯이 상대방을 완전히, 또는 부분적으로 대상화할 수 있다는 의미다. 이것을 평등이라고 불러야한다면 너무나 서글픈 일이 아닐 수 없다."(224쪽)
그렇지만 저자가 훅업 문제만 드러내면서 훅업은 하지 말아야 할 것으로 논리를 이끌어가는 것은 일면 설득력이 떨어진다. 훅업 문화에 대한 옳고 그름의 판단 이전에, 청소년들이 진지한 관계를 맺기 어려운 이유와 청소년들로부터 친밀한 관계가 주는 안정감에 대한 욕구를 사라지게 만든 원인에 대한 분석이 선행되어야 하는 것 아닐까?
이 책에서 가장 납득할 수 없었던 부분은 십대 여성들이 장래의 꿈을 위해 자신의 삶에 매진하느라 진지한 연애를 미루고 있는 것을 이해하지 못하는 저자의 태도였다. 또 진지한 연애를 하기에 너무 바쁘다고 말하는 십대 여성들에게 "장을 봐야하거나, 직접 삼시세끼를 차리거나, 하교하는 아이들을 데리러 가야하는 것도 아닌데(175쪽)" 왜 그렇게 바쁜지 이해할 수 없다는 저자의 서술은 경악을 금치 못할 만큼 충격적이었다.
정말 그래서 십대들이 훅업을 하는 것일까? 미래에 대한 불확실성이 점점 커지고 있는 사회에 살고 있는 청(소)년들의 고충에 대한 저자의 무지가 당황스러웠다.
물론 이 책에서 비판하고 있는 훅업 문화에서 비롯된 문제들, 즉 합의와 강압, 폭력 사이의 경계가 모호해지고 있다는 점에 대해서 전적으로 동의한다. 다만 훅업 문화가 여러 문제를 야기하기 때문에 훅업은 나쁜 것이며 사회적 해악으로 보는 것은 억지 주장처럼 보인다.
책에서 소개된 인터뷰이 중 한 명이 술에 취해서 강간을 당했고 이후 그를 고발한 일에 대해서 저자는 잘한 것이라고 말하면서도, 남자는 뉘우침이 없기 때문에 해봤자 소용없는 일로 훅업 자체를 하지 말아야 한다고 본다.
남녀를 막론하고 학생들이 훅업을 만족한다고 말하는 동시에 후회한 적이 있다고 말하기 때문에 훅업은 나쁘다고 결론 내리기 보다는 훅업의 만족과 후회의 맥락이 무엇인지를 밝혔으면 어땠을까 싶다.
저자는 또 대중문화 전반에 걸친 여성의 몸에 대한 상품화를 비판한다. 덧붙여 그런 대중문화는 섹시함만이 이상적이라는 생각을 십대 여성들에게 주입시킨다고 보았다. 여기에 영향을 받은 십대 여성들이 스스로를 성적 대상화 하는 덫에 갇혔다고 주장한다.
스스로 핫해지기를 원하면서 그것이 자신의 선택이라는 점을 강조한다고 했다. 다시 말해서 십대 여성들이 주체성과 대상화를 오가면서 섹슈얼리티와 성적 대상화를 혼동하고 있다고 보는 것이다.
"이전 세대의 경우 미디어의 속성에 해박하고 스스로를 페미니스트라 여긴 여성들은 자신들이 대상화되는 것을 경계했지만, 오늘날은 성적 대상화를 개인 선택의 문제로 보며 자신의 섹슈얼리티는 억지로 강요된 것이기보다 자신의 의도대로 표현할 수 있는 것이라 생각한다. 그리고 '핫함'이 여성이 영향력과 권력, 독립을 쟁취하기 위한 전제조건이라면, 여성들이 핫해지려는 건 당연한 일 아니겠는가?"(32쪽)
'핫함'이 일종의 의무사항으로 간주되면서 성희롱이나 성추행이 정당화된다고도 보면서 슬럿워크(slutwalk)에 대해서도 비판했다. 슬럿워크는 캐나다의 한 경찰관이 성폭력을 당하지 않기 위해서 여자들은 슬럿(창녀)처럼 옷을 입지 말아야한다고 발언한 것에서부터 촉발된 운동이다.
슬럿워크는 여성들이 자신의 몸에 대한 자기결정권을 강조하고 있는데, 여기에는 '슬럿처럼 입을 권리'를 포함한다. 즉 여성의 신체를 성적으로 대상화화는 것이 문제라는 점을 강조한다.
이에 대해 저자는 "조롱당할 위험이 항상 도사리고 있는 상황에서 홀리의 복장을 무작정 '자유롭다'고 보기는 어렵다(185쪽)"고 말한다. 훅업 등에서 발생하는 성폭력/성추행/성희롱 문제의 책임이 전적으로 여성에게 있다고 말하지는 않지만 일정부분 원인을 제공한다고 보는 듯하다. 엄마의 입장에서 그렇게 볼 수 있다고도 생각한다. 다만 그러한 시각이 피해 여성들에게 죄책감을 강화할 수 있다는 점은 분명하다.
저자는 성과 관련해서 유독 여성에게 쾌락이나 즐거움이 금기시된다는 점을 문제라고 본다. 하지만 동시에 십대 여성들이 대중문화에 영향을 받으면서 자신의 몸을 대상화하고 있다고도 비판한다.
자신의 섹슈얼리티를 표현할 자유를 주장하면서 누드사진을 올린 킴카다시안에 대해서는 부정적인 시각을 드러내면서도 겨드랑이 털을 그대로 두고 헐렁한 할머니 팬티를 입고 하는 시위에 대해서는 긍정한다.
결과적으로 노출이라는 점에서 같지만 어떤 것은 허용되고 어떤 것은 허용되지 않는다. 어떤 노출은 여성을 성적대상화하는 것에 대한 저항이고, 어떤 노출은 스스로 성적 대상화를 자처하는 것이다.
덧붙여 여성에게 성행위, 쾌락을 오픈하라고 말하면서 동시에 성적대상화의 덫은 피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깨끗하고 아름다운 성행위는 무엇이고 추하고 이상한 성행위는 무엇인가? 그런데 그런 기준은 누가 어떻게 정하는가?
저자는 여자 청소년들이 자신의 몸 뿐 아니라 남자들의 성욕까지 책임져야 하냐면서 조심함을 강조하는 문화를 비판한다. 그런데 스스로를 성적대상화를 하는가 아니냐를 중요하게 다룬다. 저자는 십대 여성들이 스스로 성적대상화를 하지 않음으로써 남자들로부터 성적 대상화가 되지 않도록 해야한다고 말한다. 결과적으로 저자는 여성에게 피해의 책임을 부과한다.
우리 모두는 사회적 맥락 안에 존재한다. 우리가 하는 생각과 인식이 사회문화적 맥락을 벗어나서 존재하지 않는다. 나도 남성중심적인 미디어의 영향으로부터 자유롭지 않다. 그리고 때때로 헛갈린다. 나의 섹슈얼리티를 드러내는 자유인가, 스스로 대상화하는 것인가를 명확하게 구분하는 것이 거의 불가능하다.
탈맥락적인 존재는 없다. 그건 저자도 마찬가지다. 그런 점에서 성적대상화와 섹슈얼리티를 완벽하게 "구별"하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본다. 이와 관련해서 한 인터뷰이(시드니)의 성찰은 인상적이다.
"스스로가 별로라고 느껴서 인정받고 싶어서 옷을 걸레같이 입는 거랑, 인정이고 뭐고 자기가 괜찮다고 느껴서 걸레 같은 차림으로 다니는 거랑 별 차이가 없지 않나요?" "구별할 수가 없어요." "저는 지금까지 제가 진심으로 좋아하는 것과 다른 사람들한테 듣고 싶은 말, 그리고 관심받기 위해 특정한 모습으로 보이고 싶은 욕구 사이에서 갈팡질팡하면서 고민해왔어요. 그리고 마음 속으로는 그것 때문에 저 스스로가 제 행복을 속이고 있다는 생각도 들어요."(34–35쪽)
"삶은 논술시험 같은 것(340쪽)"이다. 그러므로 무엇이 성적대상화이고 무엇이 섹슈얼리티의 표현인가에 대한 정답을 주는 것은 의미가 없다. 오히려 우리가 사회문화적 맥락으로부터 자유롭지 않다는 점을 인식하고, 자신의 생각과 행동에 대한 지속적인 고민과 성찰을 하도록 하는 것이 필요하다. 덧붙여 자신의 생각과 행동에 대한 성찰은 여성에게만 필요한 것이 아니라 남성에게도 동일하게 강조되어야 하는 부분이라고 본다.
무엇이 옳고 그르다는 관점에서 벗어나면 좋은 선택이라는 개념 자체가 성립하지 않는다. 오히려 스스로 자신의 생각과 행동에 대한 성찰을 하도록 독려하는 과정에서 십대 여성들은 저자가 우려하는 성적 대상화와 섹슈얼리티 사이의 자신만의 경계를 찾아갈 것이다. 그리고 성폭력의 위험 상황에서 자신의 의사를 명확하게 표현하면서 자신을 보호할 수 있을 것이다.
성에 대한 생각과 행동에 대한 성찰은 십대 남성들 역시 여성을 성적 대상화하는 것을 경계하고 진지하고 친밀한 관계로서 섹스를 경험할 수 있도록 도울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꼭 청소년에게 해당하는 것은 아니다.
"동료들은 그게 분명하게 경계를 그어야하는 문제라고 하더군요. 저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아요. 저는 교실에 들어가서 학생들에게 자신의 행동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고, 원하지 않는 방향으로 흘러가는 상황을 분명히 파악하고 인정하며, 전반적인 상황에 대해 곰곰이 생각해보도록 독려합니다. 그리고 학생들의 편이 되어주겠다고 약속합니다. 그 다음에 제가 쏙 빠져버리고 연락도 닿지 않는다면 제 임무를 제대로 다하지 못하는 거죠."(347쪽)
"만약 성인들도 저에게 도움을 청하는 십대 청소년들처럼 자신의 주변 환경과 선택에 대해 깊이 생각해본다면 어떨까요. 이 아이들은 무척이나 생각이 깊어요. 어떤 행동을 하기 전에 충분히 생각하거든요. 행동으로 옮기고 난 다음에도 충분히 생각해보고요. 심지어 행동을 하는 도중에도 생각합니다. 저에게는 상당한 자극이 됩니다."(348쪽)
저자는 십대 임신률이 가장 낮은 네덜란드의 성교육을 소개하면서 마무리한다. 네덜란드 성교육에서 중요한 점은 '청소년이라는 존재를 보는 관점'이다. 네덜란드에서는 청소년을 본질적으로 반항하고 "미쳐 날뛰는 호르몬"에 휘둘리는 존재가 아닌 섹스, 쾌락, 서로 사랑하는 관계에 대해 솔직하게 이야기 나눌 수 있는 존재로 인식한다.
무조건 청소년의 성을 금지하지 않고 오히려 자연스러운 것으로 보는 관점에서부터 건강한 성교육이 시작되는 것이 아닐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