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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바랑 Jan 06. 2023

숫자에서 멀어지기

내 속엔 내가 너무도 많아서

 시간, 날짜, 나이, 가격, 무게. 나는 숫자를 이유 삼아 움직이는 사람이다. 타인 혹은 내가 설정한 값에 딱 맞춰 살아야 완벽하다고 느꼈기 때문이다. 하지만 맞춰 놓은 숫자에 가까워질수록 변수에 약한 사람이 되었고 숫자에 강박이 생기기 시작했다. 그래서 올해는 달력과 시계를 최대한 보지 않는 것으로 숫자에서 멀어지기로 했다.


 새로운 장소와 사람에게 긴장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숫자 보는 정도가 느려졌다. 시간은 기울어지는 해와 배꼽시계로, 달력은 가게의 휴무일과 옷가지의 두께로 가늠할 수 있었다. 이런 생활로 삼시세끼 말고 내가 배 고플 때 하는 식사가 몸에 맞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시간으로 배고픔을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몸이 말하는 진짜 배고픔을 알아채는 것. 내 몸을 섬세하게 확인할수록 이전에는 생각하지 않았던 다양하고 건강한 한 끼를 먹게 한다. 그래서 속이 더부룩하지 않아 몸과 마음을 편안한 상태로 유지할 수 있었는데 이것은 계속 지키고 싶은 나의 새로운 생활 방식이 되었다.


 낯선 곳에서 새로운 생활 방식의 여행을 마쳤다. 내 몸은 선명한 선이 생길 정도로 햇볕에 탔고 질질 끌고 다니던 군더더기가 탄탄한 몸의 일부가 되었다. 이것 또한 목표를 가지고 한 운동과 다르게 생활로 자연스럽게 만들어진 것으로 숫자를 세지 않아도 몸의 변화를 눈으로 확인할 수 있었다. 달리 한 것은 소식과 걷기 뿐이었지만 부지런하게 몸을 의식한 것이 숫자를 멀리하게 만드는 방법이 되었다.


 하지만 4개월은 너무 짧았나 보다. 돌아온 곳에서 새로운 생활 방식을 유지하고 싶었지만 바쁘다는 핑계로 빨리 배고픔을 해소할 수 있는 쉬운 방법의 식사를 선택하고 활동 반경을 고정시켜 호기심을 잃은 생활로 돌아오는 것은 순식간이었다. 이것은 곧 숫자로 움직이는 사람이 되었다는 말이다.


 사람은 왜 같은 실수를 반복하는 걸까. 아니다. 이것은 사람의 잘못이 아니라 환경의 영향이 크다. 사회가 나보다 숫자를 돌보게 하는 생활을 권장한다. 우리는 어려서부터 사회가 말하는 생애 주기표를 온몸으로 듣기 때문에 틀에서 벗어나는 생각이 어렵다. 그럴수록 그 옛날 누군지도 모를 사람들이 만든 것 말고 더욱 나에게 집중하자고 말한다. 이런 순간이 축척되어야 멀리 떠나지 않아도 숫자에서 멀어질 수 있을 테니까.


 그래서 나는 계속 연습 중이다. 타인을 위한 그래프에서 벗어나기 위해. 고작 숫자로 움직이는 사람으로 나를 말하기엔 너무 간단하다. 간단하지 않은 감각은 언제나 도망갈 궁리를 한다. 나도 한 자리에 오래 붙어 있지 않는 감각을 따라 궁리하다 보면 숫자를 돌보는 시간이 줄어들 것이다. 끈질기게 숫자에서 도망가는 감각을 따라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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