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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바랑 Jan 09. 2023

물 대 흙

과연 나의 기억은 무엇을 선택할까


  전라남도 완도군 소안도. 엄마 쪽 아빠 쪽 부모님이 모두 돌아가신 후 가지 않은 부모님의 고향이자 나의 시골이다. 초등학교 1학년, 1년이 조금 안 되는 시간을 할머니, 할아버지와 보냈는데 가장 많이 남아 있는 어릴 적 기억이다. 그 시절 소안도는 컴퓨터는커녕 텔레비전 채널도 공중파가 전부여서 해 떠 있는 시간 동안 바다에 있는 것이 유일한 놀이였다. 도시에 살다가 잠시 건너온 나와 동생은 첫날 ’큰일이다‘ 생각했지만 이렇게 저렇게 시간을 보냈다. 초, 중, 고등학교 시절을 포함하여 어릴 때 기억이 별로 없는데 시골에서 심심한 시간을 보낸 기억은 꽤 난다.


 동생은 도시생활 틈틈이 바다가 보고 싶다는 말을 많이 했고, 나는 바다보다 산을 좋아하는데 다녀온 여행 사진을 보면 바다가 많다. 몇 달 전 다녀온 조금 긴 여행에서도 나는 섬에서 지냈다. 떨어져 있는 동안 좋은 것만 기억에 남아 바다의 색과 소리가 그립다는 망각으로 다시 찾은 바다에서 끈적한 바람과 짙은 짠 냄새를 맡으면 정신이 번쩍 든다. 지금도 방에 붙어 있는 투명하고 반짝거리는 바다 사진에 ‘바다 보면서 글 쓰면 좋겠다’라고 생각한다. 바다를 좋아하지 않지만 바다를 생각하는 나의 모순이 웃기다.


 엄마는 일기예보가 통하지 않는 멋대로인 섬 날씨에 손을 휘젓고, 아빠는 갯벌과 배낚시 이야기가 나오면 입을 닫아버린다. 할머니, 할아버지가 돌아가시고 남은 집을 논의할 때에도 부모님을 포함한 모든 어른이 머물 생각이 없어 시간이 걸리더라도 파는 것에 의견을 모았다. 몇 년 뒤 땅을 산 사람은 집을 허물고 관광객을 위한 숙소를 세웠다는 이야기를 나중에 들었다. 사람도, 편의시설도 부족한 곳이라 저렴하게 팔았다고 하는데 가격을 듣고 ’내가 살걸‘이라고 아쉬워했다. 그런 나를 보고 엄마는 고개를 저었지만.


 나란히 붙어 있는 바다와 흙 사진을 본다. 흙은 손이 즐겁고 파도는 눈이 즐겁다. 초록은 시원하고 파랑은 넓다. 흙은 계절마다 다른 것을 키워내고 파도는 매시간 다른 소리를 만든다. 흙이 뿜는 냄새는 맛있고 바다에 이는 물결은 생각을 밀어낸다.

 나는 바다보다 산이 좋다고 말한다. 하지만 말과 다르게 흙과 바다가 뽐내는 것을 나열하는 걸 보니 또 바다의 불편함을 까먹은 것이 분명하다. 그럼 숲에서 여름을 보내고 바다에서 겨울을 보내면 되겠다고, 그렇게 살고 싶다고 하면 엄마가 또 고개를 젓겠지. 아니면 동생이 바다에 살고 내가 흙이 있는 곳에서 살아서 여름과 겨울을 바꿔 살아도 되겠다 생각이 잠깐 들다가. ‘아니다. 동생은 정리 습관이 나와 달라서 안 되겠다’라고 고개를 좌우로 흔들며 급하게 상상을 멈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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