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에게 글쓰기라는 것은, 나라는 음악을 다시 재생하는 것이다.
나는 말하기를 좋아한다.
내 주변에는 내 얘기를 들어주는 사람들이 많다. 그들에게 필요한 정보를 전하고, 시시콜콜한 이야기를 우스갯소리로 풀어내며, 가끔은 마음속 이야기도 꺼낸다.
글쓰기 역시 말하기다.
그럼에도 내 글을 듣는 사람은 많지 않았다. 말에는 감칠맛이 있고, 높낮이의 리듬이 있지만 내 글은 그에 비해 투박하고 거친 날것에 가까웠다.
반대로 나는 다른 사람 이야기를 듣는 데엔 서툴다. 가끔 귀 기울인다지만, 어느새 조언을 던지거나, 정보를 건네며 아줌마의 오지랖으로 마무리되는 경우가 많다.
많이 읽어야 잘 쓸 수 있다고 했다. 나는 평생을 책을 가까이 하며 살아왔다. 동화책, 위인전, 로맨스소설, 일본 애니, 무협, 자기계발서, 에세이, 웹소설까지 — 장르를 가리지 않고 읽었다.
영화 '고스트바스터즈'의 먹깨비처럼 한 번 꽂히면 끝을 봤다. 자연스레 특정 작가들의 감성과 문체를 기다리는 독자가 되었고, 그들의 문장을 기다리는 일은 내 일상의 한 조각이었다.
그러다 문득,
읽기만으로 채워지지 않는 무언가가 생겼다.
자리를 옮겨보기로 했다. 읽던 사람에서 쓰는 사람으로.
하지만 아니었다. 한 줄 쓰고 다시 지우고, 또 썼다가 지우기를 반복했다. 블로그를 오래 운영해왔지만, 책을 쓴다는 건 전혀 다른 일이었다. 마치 블로그 첫 글을 쓸 때처럼 머뭇거리게 되었다.
작가들은 하루에 오만 자씩 쓴다는데, 나의 글쓰기는 말하기 같지도, 글쓰기 같지도 않았다. 혼자 끄적이던 글을 가족과 친구에게 보여주었다. 기대한 반응은 없었다. 다만, “쉽게 읽히네.” 한마디.
문학을 쓰고 싶었지만, 내 안의 문학소녀는 이미 사라지고, 인생의 깊이가 새겨진 중년 여성이 남았다. 늦었다고 생각하지 않기로 했다.
노년의 어르신들이 스마트폰을 들고 영상을 촬영하며 유튜브에 도전하듯, 나는 사진과 영상의 크리에이터에서 다시 글을 쓰는 작가로 돌아가기로 했다. 나의 날것의 이야기를 담은 글로.
그리고 언젠가 내가 노년이 되었을 때, 책장에 놓인 내 책 한 권을 꺼내 읽을 수 있다면 — 그 또한 얼마나 즐거운 일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