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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장에서의 글쓰기, 짧게 써라

그땐 멋졌던 FYI

by 열짱


직장 생활 8년, 매일같이 열던 아웃룩 메일창은 나에겐 글쓰기 공포의 현장이었다. 문과 출신 이공계생이 되고, 보고서를 잘 쓰기 위해 야식으로 버티던 밤들. 메일 한 줄을 쓰는 데도 손끝이 떨리던 시절이 있었다.



[그땐 멋졌던 FYI]


라떼는 다양한 경험이 많은 사람을 인재라 칭했다.
나는 편의점, 패스트푸드, 카페 서빙, 학습지 교사 등 다양한 일을 해보며 경험을 쌓았다.
하지만 그 경험들은 자잘하게 나를 설명해주는 조각에 지나지 않았고, 우선시 되는 것은 학연과 지연이었다.
현장에서 일하는 서비스직을 하다가 책상에 앉아 일하는 서비스직을 하게 되었다.


국어성적이 우수했던 문과 고등학생이었으나, 공학과를 나와 글쓰기가 두려운 이공계생이 되었다.
아웃룩 메일을 열어 매일 보고를 해야 했는데, 그게 참 어려웠다.
현장에서는 꼼꼼하지만 손이 느린 탓에 천덕꾸러기였고, 책상머리에 앉아서는 답답하고 느린 직원이었다.
나에게 부족한 업무들은 야근이라는 시간으로 때웠다.
가끔 교대근무를 하며 날을 새며 먹는 야식이 업무와 보고에 대한 부담감을 느슨하게 만들어주었다.
사발면도 있었고, 미군식량 같은 것도 한 직원의 제안으로 들여놓게 되었다.
그때 컵밥이 있었더라면 글쓰기 업무향상에 도움이 되었을까?



FYI For your information.
이런 문구 하나도 ‘오, 저 사람은 메일도 잘 쓰고 스마트해 보인다’ 며 감탄하던 순박한 시절이었다.




[짧은문장 긴 시간]


한 해 두 해 한 직장에서 8년의 시간이 흘렀다.
세월의 때가 묻으며 순수한 감정표현은 내 안에 묻어두고 담담한 관리자의 모습을 가면처럼 내세웠다.
“메일에 핵심 내용이 안보이잖아요, 내용 정리 다시 하고 파일로 첨부해서 제출하세요.”


<이공계는 글쓰기가 두렵다> 라는 책을 읽던 시절이 었었다.
길게 쓰면 살이 붙는게 아니라 군더더기가 덕지덕지 붙어버려 무슨 말인지 모를 뭉텅이가 되곤 했기에 그 책은 나에게 꽤나 유용했다.
짧게쓰기는 글쓰기의 핵심이다. 나의 글이 길어질라치면 단칼에 끊어버린다. 그래야 내가 말하고자 하는 게 보인다.
말할때도 이 얘기 하다가 저 얘기로 새고, 삼천포로 빠지는 나이기에 글쓰기는 더더욱 끊어줘야 한다.



그 후로 20년이 흘렀는데,

나의 글쓰기는 발전이 있었을까?
이번엔 누군가의 마음을 두드리기를 바라며
나는 다시 도전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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