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공모전 公募展 첫번째 이야기 1. 시화전

나는, 시화전으로 돌아갔다

by 열짱

공모전 公募展
공개적으로 널리 작품을 모집하고, 그 중 뛰어난 작품을 가려 시상하는 것.
말하자면, 누군가의 ‘꿈’을 진심으로 바라보는 형식.
세상의 문을 향해 조심스레 내밀어 보는 나의 한 조각.



문학소녀는 언제나 내 안에서 조용히 꿈을 꾸고 있었다.
‘언젠가는 나도 한 번쯤… 가능할까? 날아오를 수 있을까?’
가슴 속에서 몽글몽글 피어오르던 그 마음의 뭉치들을 꺼내어 세상에 펼쳐보이기까지,
꼬박 40년이 걸렸다.

‘오래 되었다, 아니…. 되었다. 지금이라도 꺼낼 수 있어서 나는 되었다.’
그래서 나는 도전하기로 했다. 그게 나의 첫 번째, 그리고 두 번째 공모전이다.




시화전

중학교 2학년 가을, 나는 학교 시화전대회에 참가했다.
그림엔 소질이 있다고 들어왔던 터라 그림보다는 시를 쓰는게 문제였다.

‘손끝으로 원을 그려봐, 네가 그릴 수 있는 한 가장 크게, 그걸 뺀 만큼 널 사랑해’

‘넌 가끔가다내생각을 하지, 난 가끔가다 딴생각을해’

당시 즐겨 읽었던 시는 사춘기소녀감성에 어울리는 것들이었다.
심사위원이 친구들이라면 모를까, 연애시보다는 뭔가 더 의미있고 감동적인 주제여야 할텐데 생각하며 머리 속을 헤집다가 노을이란 주제를 끄집어냈다.


학교 옆 작은산 언덕에 올라 지는 노을을 조용히 허리 굽혀 바라보는 노인, 노을과 노인이 닮아있다는 약간은 여운을 남기는 ‘풍경’이라는 시였다.

그림은 벽에 쓴 낙서 같은 느낌으로 곁들여 그렸고 그림보다 글을 더 잘 썼다고 느낀 뿌듯한 순간이었다.

복도에 있는 내 액자에 교내 시화전 대회 금상이라는 푯말이 붙여지고 나는 금상을 탔다.


그리고 국어선생님께 불려갔다.

국어는 내가 좋아하던 과목이었고, 열심히 했던 과목인 만큼 평소 칭찬을 잘 해주시던 선생님이셨다.

잘했다고 칭찬을 해 주시리라 생각했는데 선생님은 내게 식스센스 급 반전을 선사했다.




“어느 시를 베꼈니, 솔직히 얘기해”

예상치 못했던 선생님의 반응에 입이 얼어붙어 더 어버버버 했나보다.

“제…제가 썼어요”

억울함에 말까지 더듬어버렸다. 선생님은 본인 생각에 더 확신을 가져보였다.

그런 아이 인줄은 몰랐다는 쐐기를 박는 말이 더해지고, 나는 상을 바라고 남의 작품을 베낀 학생이 되었다.

수상이 취소되지는 않았지만, 억울했던 사춘기의 나는 더 이상 글을 쓰지 않았다.

언어영역 성적이 좋았지만 이과정석을 풀었고, 문과생 이었지만 공대생이 되었다.


그 사이 삐삐를 쓰던 나의 세대는 스마트폰을 여는 세대로 변했고, 이러다 영상통화하는 세상 오는거 아니냐며 말도 안된다 하던 게 현실이 되는 세상이 되었다.


SNS가 활발해진 세상에서 나는 인터넷에 글을 쓴다.
10년 직장생활을 그만두고 결혼 후 우울해 하던 나를 위한 남편의 처방이다.

맛있는 음식을 먹고 사람들과 공유하고 싶어서, 여행을 다녀와 정보를 알려주고 싶어서 나는 다시 글을 쓰게 되었다.



내가 쓰는 게 글인지 인지하지도 못한 채 그저 사람들이 읽어 주는게 기분이 좋아서 써 내려간, 나의 결혼생활과 함께 해 온 블로그가 벌써 10년째.

글이 술술 읽힌다, 글 잘 쓰시네요 라는 말을 들으며 한껏 소심해져 있던 내 안의 중학생 소녀는 다시 고개를 든다.

동네에서 열린 축제 블로그 포스팅으로 상품권도 받으니 더 자신감이 생겼다.
그러던 차에 문학 신인상 작품 모집 공고를 보게 되었다.

아이를 재우고 나온 새벽, 자유 주제라는 주제를 쳐다보며 무얼 쓸까 고민해 본다.

‘이건 나에게 다시 글을 써보라는 기회가 아닐까’

글을 잘 쓴다고 생각지는 않지만 내 감성과 이야기를 전달하는 건 자신이 있다.

‘그래, 나의 글쓰기 얘기를 써보자’

글쓰기를 배운 적이 없어서 무디고 서툰 생짜 내 얘기, 나의 글.



나의 글의 시작이자 끝이었던 중학교 2학년 시화전, 가슴 아팠던 시상식을 돌이켜본다.

얼굴이 화끈거리고 왠지 잘못한 거 같아 뽐내지 못했던 나의 금상 수상작.

이제와 다시 돌이켜보니 그 시절 국어 선생님은 내게 최고의 칭찬을 한 건 아니었을까



#시화전
#13회브런치공모전
#문학소녀의귀환
#돌아본풍경
#저녁노을처럼
#기억의한켠
#울컥하는순간

keyword
이전 04화다시 쓰게 된 이유, 블로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