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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모전 公募展 두번째 이야기 2. 청포도

아빠와 청포도

by 열짱


퇴근하고 돌아오시던 아빠의 손에는 무언가 들려있던 적이 많았다.

나이 터울이 있는 네 명의 딸들에게 주려고 어떤 날은 과자 종합 선물 세트, 어떤 날은 과일을 들고 오셨다.

과자 종합 선물 세트에 가득 든 과자는 다 맛있었다.

택배 상자같이 생긴 박스 안에 각종 과자랑 초콜릿, 스카치 캔디나 캐러멜이 종류를 가리지 않고 가득 있었다. 크리스마스 시즌에는 박스가 아니라 산타클로스의 빨간 장화통 안에 과자가 들어있었다. 그 안에 있는 건 다 좋았다. 너무 달디단 밤 양갱만 빼고.


겨울에는 과자나 고구마, 국화빵이 퇴근 간식의 주를 이루었다.

여름이면 하얀 와이셔츠에 양복바지, 멋들어진 선글라스를 낀 아빠가 청포도를 사오셨다.

아빠가 들고 온 청포도는 작은 알이 초록 초록 알알이 박혀 있어 빼먹는 재미가 있었다.


따르릉 따르릉

자전거 소리가 들리면 아빠가 오신 거다.

나는 종종 아빠의 허리를 잡고 자전거 뒤에 앉아 있거나 아빠의 자리 앞부분에 끼여 탔다. 자전거를 함께 타고 바람을 얼굴로 느끼며 타는 순간이 좋았다.

아빠는 휴일이면 나무판을 사포로 밀고 니스를 칠해 장기판을 만들고, 어떤 날은 나의 세발자전거에 락카칠을 해주셨다.

나이 차이가 나는 언니들이 타던 녹이 슨 세발자전거가 싫었는데, 은색 락카칠을 하니 눈이 부시게 번쩍거리는 자전거가 되었다.


동네에 말이 달린 리어카 트럭이 오면 엄마에게 동전을 달라고 졸라 보기도 했지만, 엄마는 인색한 편이었다.

비교적 인심이 후한 아빠가 올때까지 기다리면, 말이 달린 리어카 트럭은 가버리고 없었다.

말을 타지 못해 속상했던 나는 한껏 몸을 웅크려 구석에서 시위했다.


“우리 공주님~ 아빠가 말 태워줄게” 라며 아빠는 내 손을 잡아 일으켰다.

그리곤 나를 목말 태워 동네 한 바퀴를 돌았다.

나는 아빠가 재탄생 시켜준 은색 세발자전거가 좋았고, 아빠가 들고 오시던 청포도가 좋았다.





아빠를 떠올리면 아빠의 상징과도 같이 알알이 박힌 초록 알갱이가 떠오른다.

어릴 때 나는 포도란 연둣빛 청포도만 있는 줄 알았고, 원래 포도가 보라색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을 무렵에 아빠는 돌아가시고 없었다.

더 이상 나에게 청포도는 없었고, 포도는 보라색일 뿐 연둣빛이 아니었다.


어린 시절 아빠의 부재는 내 인생에 꽤 큰 부분이었다.

아빠의 넓은 등을 바라보며 아빠 옷깃을 잡고 탔던 자전거도 없었고, 우리 공주님 하며 내 손에 쥐여주던 국화빵의 온기도 없었다.

퇴근 시간 무렵이면 끼익 열리던 대문 소리도 더 이상 들리지 않았다.

‘아빠의 얼굴’ 노래를 들을 때면 나는 울음을 참느라 노래를 부르지 못했다.


초등학교 입학 직후는 아빠가 없다는 게 믿기지 않았으나 점차 커갈수록 나는 아빠가 없는 생활에 익숙해졌다.

그렇게 어떤 시그널을 떠올리지 않는 한 아빠를 생각하는 일이 줄어들었다.

나는 점점 아빠를 잊고 살았다.


시간이 흐른 초등학교 국어 시간, 이육사 시인의 청포도라는 시를 배웠다.



[청포도

내 고장 칠월은 청포도가 익어 가는 시절

이 마을 전설이 주저리주저리 열리고

먼 데 하늘이 꿈꾸려 알알이 들어와 박혀…]


한동안 잊고 살았던 그 연둣빛 과일.

시를 읽으면서 눈시울이 시큰시큰해지고 감정에서 응어리진 것이 터져 나오려고 해 한참을 눌렀다.



[내가 바라는 손님은 고달픈 몸으로

청포를 입고 찾아온다고 했으니

내 그를 맞아 이 포도를 따 먹으면

두 손은 함뿍 적셔도 좋으련]


“일제강점기에 쓰인 이육사의 청포도는 조국의 독립과 평화로운 세상을 갈망하는 의미를 담아…”


손님에 대한 여러 가지 해석을 설명하는 선생님 목소리가 웅얼웅얼 멀어져간다.


나에게는 역사적인 내용보다 그날의 기억이 투영된다.

하이얀 모시수건도 하얀 와이셔츠가 되고, 7월의 눈부신 햇빛을 가리던 까만 아빠의 선글라스.

나의 여름은 아빠의 청포도로 푸릇푸릇했다.

내가 바라는 손님은 저 하늘 너머 어딘가에서 나를 보고 계시려나.

기억 한편에 밀어둔 연둣빛 그리움이 사무치게 몰아친다.





그 후로 얼마나 많은 여름을 지나쳐왔을까.

여름의 청포도, 이육사의 청포도 모두 잊고 살 만큼의 시간이 흘렀다.

내 양손에는 작은 손이 하나씩 잡혀있다.



“엄마, 이건 무슨 과일이야?”

“응~ 샤인머스캣”

“이건 왜 포도가 연두색이야?”

“연두색 포도도 있어~, 이건 청포도랑 비슷한 거야.”


나는 어느덧 두 아이의 엄마가 되었고, 청포도도 거봉처럼 큰 품종이 생겨났다.

이름도 어디 저 멀리 물 건너온 것 마냥 반짝반짝 빛나는 샤인머스캣이다.


아이들과 함께 그 포도를 먹을 때면 나는 문득 아빠 생각이 난다.

커진 포도알 이상으로 지나버린 시간 덕인지 이제 사무치는 그리움 대신 아빠의 마음이 느껴진다.



내 인생에서 청포도는 달콤했고, 아픔이었고 그리움이었다.

이제는 나에게 아빠를 향한 그리움을 넘어 부모와 자식을 잇는 사랑이다.

아빠가 나에게 건넨 청포도처럼, 내가 베이킹소다에 씻어 주는 샤인머스캣처럼.

이렇게 작고 평범한 일상 속 무언가를 통해 전달하는 마음. 그 먹먹한 마음을 나는 청포도와 함께 삼켜본다.



[아이야 우리 식탁엔 은쟁반에

하이얀 모시 수건을 마련해 두렴]





글은 아니지만 영상에 담은 나의 이야기가

공모전에서 수상을 했다.

누가 잘 만들었다 라고 말해줘서가 아니라,

끝내 내가 내 이야기를 꺼내었다는 것.


나는, 드디어 세상에 나왔다


- 2025 멈추지않는 여성들의 이야기,

「멈추지 않는 커리어」 60초 영상 공모전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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