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각경력과 비대칭의 머리카락
건강 회복과 사업 준비로 남은 1년의 공백기, 그리고 어렵게 들어간 회사의 입사 4개월 만의 폐업.
그 뒤로 3개월의 단기 계약직과 6개월의 취업 준비가 이어졌다.
공백은 어느새 2년에 가까워져 있었다.
자칭 타칭 ‘프로 이직러’라 자부하며 차곡차곡 올려뒀던 나의 연봉은, 재취업 시장에서 훈장이 아니라 족쇄가 되어 있었다.
세상은 계속 나아가는데 나만 멈춰 선 것 같은 공포, 통장 잔고가 바닥을 드러낼 즈음
나는 결국 백기를 들었다.
연봉 16% 삭감
면접 자리에서 최종 연봉을 밝히지 않고, 희망 연봉을 의도적으로 낮춰 불렀다. 그제야 합격 통보가 날아왔다.
자존심을 깎아 얻은 자리였지만 불안은 가시지 않았다. 갓 설립된 스타트업이고, B2C 마케팅만 해왔던 내가 B2B 마케팅 직무에 붙어버렸기 때문이다. 같은 ‘마케팅’이라는 이름을 쓰고 있었지만, 하는 일은 전혀 달랐다. 만약 여기서 한 번만 삐끗해도 다시 취업 시장으로 돌아갈 수 없을 것 같았다. (실제론 그렇지 않겠지만 불안감에 제대로 된 사고를 못했던 것 같다.)
입사 확정일을 받아두고도 나는 출근 전까지 남은 일주일 동안 미친 듯이 면접을 4번이나 더 봤다. 도망칠 구멍이 필요했다.
그리고 첫 출근 3일 만에, 그중 가장 가고 싶었던 곳에서 합격 연락을 받고 뒤도 돌아보지 않고 환승했다.
그렇게 들어간 곳은 ‘시리즈 B 투자’를 받은 유망한 스타트업이었다.
이제는 안정적인 커리어를 쌓을 수 있을 거라 믿었다. 하지만 그 믿음이 깨지는 데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그 회사는 7년이라는 업력 동안 단 1개월을 제외하고는 모두 적자였다.
투자는 성장의 연료가 아니라, 죽어가는 회사의 산소호흡기였다.
대표는 불안을 팀원들에게 전가했다.
점 하나, 띄어쓰기 하나까지 간섭하는 마이크로매니징의 지옥.
그의 기분에 따라 어제의 기획이 오늘 엎어지곤 했다.
그의 말은 이론적으로 옳았지만, 현실은 그의 ‘감’에 맞추는 눈치 게임이었다. 안 될 걸 알면서도 해야만 하는 일들이 쌓여갔다.
아이러니하게도 팀장님과 팀원들은 너무나 좋은 사람들이었다. 배울 점도 많았고, 인간적으로도 따뜻했다.
하지만 그들의 유능함은 역설적으로 나를 더 초라하게 만들었다.
‘나는 왜 저들처럼 못할까.’
‘이 연차에 나는 뭘 할 수 있는 걸까.’
패기 넘치게 사업을 벌이던 나는 사라지고,
눈치만 보는 무능한 직원 하나만 그 자리에 남아 있었다.
그 무렵부터였다. 내 손이 머리카락으로 향하기 시작한 건.
처음에는 갈라진 머리카락 끝을 찾아 손톱으로 톡, 끊어내는 정도였다. 하지만 불안이 커질수록 손은 멈추지 않았다. 업무 중에도 내 손은 무의식적으로 한쪽 머리카락을 더듬었고, 퇴근 후에는 그로 인해 상한 곳을 찾아내 가위로 잘라내곤 했다.
내가 통제할 수 없는 회사와 커리어 대신, 내 머리카락의 끝만이라도 내 마음대로 통제하고 싶었던 걸까.
어느 날, 거울을 보니 한쪽 머리가 다른 쪽보다 눈에 띄게 짧아져 있었다.
비대칭의 머리카락
그것은 균형을 잃은 내 마음의 모양이었다.
입사 2개월 차, 회사는 ‘비상경영’을 선포했다.
다른 팀 동료들이 하루아침에 책상을 빼는 걸 목격했다. 공포가 엄습했다.
‘다음은 나일까?’
불안에 떨며 출근하던 어느 날,
결국 그 공포는 현실이 되었다.
두 번의 폐업, 그리고 구조조정.
연속된 실패 앞에서 나는 완전히 방전되었다.
다시 이력서를 쓸 힘조차 남아있지 않았다.
그 무렵 나는 짝짝이가 된 머리를 숏컷으로 쳐냈다.
상해서 뚝뚝 끊기던, 비대칭으로 망가진 내 머리카락들을 바닥에 떨구며 생각했다.
이것이 내가 마주한 실패의 청구서라고.
연봉, 커리어, 패기, 그리고 스스로에 대한 믿음까지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