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객관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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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칭타칭 취미부자이자, 하고 싶은 게 너무 많았던 나는 역설적이게도 그로 인해 아무것도 할 수가 없었다.
하지만 그래도 괜찮았다.
‘뭔가 하고 있다’는 그 상태가, 아무것도 아닌 나의 현실을 가려주었으니까.
겉으로는 “사업 준비 중이야” 같은 말로 나를 포장했지만, 속으로는 필사적으로 현실을 외면하고 있었다.
실패할 틈조차 주지 않은 채, 나는 계속 ‘가능성의 모래사장’ 위를 서성일뿐이었다.
가면의 균열
“너… 요즘 좀 불안정해 보여.”
어느 날, 친한 친구가 조심스럽게 말했다.
처음엔 의아했다. ‘나 잘 살고 있는데 뭐가?’
하지만 그 말이 가시처럼 박혀 머릿속을 맴돌았다.
그래서 나, 지금 대체 뭘 하고 있는 거지?
곧이어, 나조차도 속이고 있었던 화려한 ‘갓생’ 연기 뒤에 숨은 불안을 마주했다.
그날 밤, 블로그에 올릴 글을 쓰다 말고 멈춰 화면에 떠 있는 문장을 소리 내어 읽어봤다.
“지금은 나를 재정비하는 시간이에요.” 너무나 익숙한 문장이자, 지난 몇 달간 나의 현실을 가려주었던 방패.
과연 ‘재정비’였을까, 아니면 ‘결핍을 감추기 위한 말장난’이었을까.
애써 외면하고 있던 현실은 어김없이 나를 찾아왔다.
사업은 진척이 없었고, 통장 잔고는 바닥을 보였다.
그제야 나는 어쩔 수 없이 한 스타트업에 들어갔다. 공백기에도 불구하고 다행히 연봉은 직전보다 더 올랐다. 가스라이팅 끝에 도망치듯 퇴사했던 직장보다 천만 원이나 높은 수준이었다.
‘이제 진짜 다시 시작하는 거야. 회사 다니면서 차근차근 사업을 준비하자.’
…그리고 그 회사가 하루아침에 망했다. 입사한 지 단 4개월 만에 다시 실직자가 되었다.
또 한 번의 도피, 그리고 강제 착륙
나는 또다시 도피를 선택했다. 이번엔 진짜로 사업을 해보겠다며, 당장의 이직 대신 단기 계약직을 구했다.
창업부트캠프 당시 시도했던 것 중 하나를 뾰족하게 구체화시키는 방향으로 구상했다.
내가 바라던 ‘가슴이 뛰는 일’은 아니었지만, 마침 친구가 관련 일을 해 본 경험이 있어서 같이 해보자고 하기에 의기투합했다.
… 결론은 홍보 단계에서 서로 바쁘다는 핑계로 제대로 시작도 못 해본 채 흐지부지 끝났다.
어쩌면 마음 한구석에서는 이미 알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나에게 사업은 현실을 마주하지 않기 위한 핑계라는 걸.
그렇게 계약 만료일은 다가왔고, 더 이상의 도피처가 없어진 나는 어쩔 수 없이 다시 이력서를 써야 했다.
‘갓생’ 중독자였기에 재취업이야 금방 될 거라 생각했지만, 자그마치 1년이 걸렸다.
조각난 경력, 연차에 비해 터무니없이 높아진 연봉, 잦은 공백기.
이 기이한 이력서를 설명하기 위해 수십 번의 면접을 봤다.
‘이직이 잦은데 사유가 뭔가요?’
‘사업을 하다가 다시 직장을 다니려는 이유가 뭔가요?’
‘사업은 왜 실패했다고 생각하나요?’
.
.
반복되는 질문에 답하며 조금씩 깨달았다.
과시로 가득했던 나는, 사실 누구보다 결핍으로 가득 찬 꼴불견이었다는 걸.
자기 합리화와 허세, “잘 될 거야”라는 근거 없는 낙관을 모두 벗어던지고, 씁쓸한 현실을 인정해야만 했다.
이걸 인정하고 희망 연봉을 직전 연봉보다 대폭 낮춘 지 한 달이 채 되지 않았을 무렵, 연달아 합격 소식이 찾아왔었다.
에필로그: 자의식 과잉의 기록을 삭제하지 않는 이유
합격 후 다시 직장인의 삶을 살 때, 과거에 SNS에 썼던 글들을 다시 읽었다. 얼굴이 뜨거워져 차마 끝까지 읽을 수 없었다.
자기 계발서에서 베껴온 듯한 문장들, 어설프게 철학자 흉내를 내는 단어들, 그리고 ‘내가 뭔가 대단한 걸 깨달았다’는 식의 결론까지.
나의 결핍을 감추기 위한 과시의 흔적들이 고스란히 박제되어 있었다.
낯 뜨거워 당시의 기록을 전부 비공개로 돌렸다. 그러나 차마 삭제는 하지 못했다.
두고두고 보며 다시는 이런 오만함에 빠지지 않고자 하는 다짐도 작용했지만,
자의식 과잉은 동시에 그 시절의 내가 나를 지키기 위해 필사적으로 애썼던 흔적이기도 하니까.
그 위태롭고 부끄러운 시간마저 끌어안을 수 있을 때, 비로소 나는 나의 다음 페이지를 쓸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