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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갓생’ 연기에 중독되다

가능성 중독에 빠진 자의식 과잉 드라마퀸

by 스니


수습 미전환 통보를 받기까지의 기록


커리어가 인생의 큰 축을 차지한 채로 살던 나는

직장 내 괴롭힘과 가스라이팅으로 마음이 산산조각 난 후, 결국 회사를 관두고 회복에 전념하게 된다.


문제는 이 회복의 방식이 통념상의 ‘쉼’과는 반대였다는 점이다.

가득 찬 캘린더

치료와 병행하며 운동, 취미모임, 콘서트, 전시회, 원데이클래스, 여행, 글쓰기, 부업, 취준 등등 정말 끝도 없이 많은 것들을 했다.

(참고로 내 MBTI는 평생 IXFP 였다.)


그러다 운 좋게도 남들이 보기에 ‘괜찮은 회사’에 합격했다.

좋은 네임밸류, 번듯한 사무실, 체계적인 온보딩까지.


과거 나를 무시했던 상사에게 “봐, 나 이렇게 잘 살아”라고 증명하는 것 같아 통쾌했고, 그간의 보상심리가 충족되며 자신감이 하늘을 찔렀다.

별 거 아닌 성취를 한껏 부풀려 과시하며 지인부터 불특정다수까지, 온 세상에 ‘나처럼 열심히 살라’며 훈수를 뒀다. 지금 돌이켜보면 낯이 홧홧해지는 오만이었다.




과시는 결핍의 다른 이름

사실 그건 통쾌함이나 성취감이 아니라, ‘나는 무너지지 않았다’고 외치는 처절한 자기 방어였다.

과시는 언제나 결핍의 다른 이름이니까.


평소에도 바쁘게 사는 편이긴 했지만, 돌이켜보면 그 시절의 나는 확실히 정상이 아니었다.

좋아하는 걸 잔뜩 하면 마음이 회복될 거라 믿었고, 얼른 나아지기 위한 필사적인 발버둥이었다. 나름대로 효과가 있는 것 같았다’.


그러나 괜찮아진 것 같다는 내 생각이 그저 착각에 불과했다는 것은 곧바로 드러났다.

입사하자마자 쏟아지는 업무와 그보다 더 잘 해내고 싶은 중압감에 나는 속수무책으로 다시 무너졌다.

극심한 불면증이 찾아왔다.

하루 평균 수면시간이 두세 시간 남짓인 탓에 업무에 잘 적응하지 못하고, 그로 인한 스트레스로 다시 잠 못 드는 악순환이 이어졌다.


이제 와 생각해 보면 저 비정상적인 일정 개수만큼 나는 나를 돌보는 시간에서 멀어졌던 것 같다.

자신의 상태를 직면하는게 아니라 외부 활동으로 스스로를 계속 밀어붙였던 것이다.

애석하게도 당시엔 이걸 깨닫지 못했다.

회사에 적응하기 어려울수록 나는 회복을 위해 더더욱 많은 활동에 집착하듯 매달렸다.


입사 후에도 여전히 많은 일정

그러다

브레인 포그 증상(Brain fog, 머리에 안개가 낀 것처럼 갑자기 머릿속이 텅 빈 듯 멍해지는 현상)이 나타나고,

운동 모임원들과 토너먼트식 배드민턴을 치기로 약속해놓고 까무룩 잠이 들어 민폐를 끼치고,

퇴근길에 계단을 내려오던 중 다리에 힘이 풀려 넘어질 뻔하고서야… 사태의 심각성을 깨달았다.

자체 '일정 금지 기간'을 설정해 새로운 일정을 잡지 않고, 이미 정해진 일정도 최대한 미루거나 취소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건강도, 업무 효율도 큰 차도가 없던 어느 날

나는 결국 수습 미전환 통보를 받게 된다.


그 순간, 나를 괴롭혔던 전 상사의 저주 같은 말이 귓가에 웅웅대며 맴돌았다.

‘너는 대기업 못 가겠다, 가봤자 못 버틸 걸’

‘일을 왜 이렇게 못해?’

그것만큼은 결코 인정하고 싶지 않았다. 나의 결핍이 만천하에 드러나는 것 같아 견딜 수 없었다.


회사 사람들의 눈을 피해 혼자 있을 만한 곳을 찾다가

불이 꺼진 컨퍼런스장을 발견했다.

어둡고 텅 빈 그 곳에서

내가 언젠가 여기, 아니 더 큰 곳을 꽉 채울만큼,

멋진 사람이 테니고보라고 되뇌었다.


그때부터 '일정 중독'을 넘어선 이상한 중독이 시작됐다.



‘가능성’이라는 이름의 마약

정확히 말하면, 나는 ‘가능성 있는 상태’ 그 자체에 중독됐던 것 같다.

실패한 현실을 가리기 위해, 성공할 것 같은 미래의 가능성을 연기하기 시작했다.


사업을 하겠다고 동네방네 선언한 뒤, 셀프브랜딩이랍시고 나를 표현하는 로고를 만들고 명함을 팠다. 그리고 수백만 원을 들여 사업 교육과 창업부트캠프를 동시에 참여했다.

사업 준비와 자기 계발로 하루의 시간을 쪼개 일정을 테트리스하듯 수행하며 '바쁘게 사는 나'를 전시했다.


당시엔 나조차도 인지하지 못했지만, 결국 이 모든 행위는 실제 사업을 위한 것이라기보다 ‘나는 이렇게 유망한 사람’이라는 것을 보여주기 위한 과시용 소품에 가까웠던 것 같다.

정작 ‘내’ 서비스는 기획서 단계에서 한 발짝도 나아가지 못했으니.


처음 기획했던 아이디어는 억 소리 나오는 개발 및 유지비로 인해 백지화 됐고,

이후 새로운 창업 아이템을 찾기 위해 아이디어만 수십 시간을 다듬다가, 피드백을 받기도 전에 혼자 지쳐버렸다.


내가 가진 넓고 얕은 취미는 생산자로서의 나에겐 아무런 무기가 되지 못했다.

자칭타칭 취미부자이자, 하고 싶은 게 너무 많았던 나는 역설적이게도 아무것도 할 수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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