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신혜진 Dec 13. 2017

굴튀김을 떠올리는 시간


남자친구와 정식으로 만나기 전에, 하루키 잡문집에 대해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다. 공통으로 읽은 몇 안 되는 책 중 하나인 잡문집. 그리고 잡문집을 읽은 사람이라면 누구에게나 기억에 남을 '굴튀김'. 오빠는 추운 겨울에 굴튀김을 만들어 먹자고 했다. 그 말이 이상하리만치 설레고 귀여웠다. 누군가를 만날 때 '취향'을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내게 있어 같이 읽은 책의 내용을 나눈다는 것이, 인상 깊게 읽은 대목이 겹친다는 것이, 게다가 그걸 함께 하자고 한다는 것은 무척이나 벅찬 일이니까.


그리고 몇 개월이 지났다. 선선한 초가을 무렵에 만나기 시작해서, 벌써 추운 겨울이 되었다. 그리고 어제 그간 생각만 하고 있었던 굴튀김을 함께 만들었다. 굴을 사서 '밀계빵'(밀가루 계란 빵가루. 이 말이 왜 이렇게 귀여운 걸까. 계속 입 밖으로 소리 내고 싶은 말이다.) 한 다음에 기름에 튀기면 되는 요리. 손은 온통 계란물과 빵가루로 범벅. 요리 하는 게 아니고 장난치는 느낌이 들어서 계속 웃음이 났다. 처음 만들어보는 요리여서 잘 될까 내심 걱정이 되었는데, 막상 튀겨서 먹어보니 그럴싸한 맛! (튀김은 신발을 튀겨도 맛있다는데, 하물며 굴인데!) 밖은 쨍하게 춥고, 따뜻한 집에서 바사삭한 굴튀김을 먹고 있자니 행복하다는 소리가 절로 나왔다. 



나는 지금 행복하다. 나는 굴튀김이 먹고 싶었고, 그리고 이렇게 여덟 개짜리 굴튀김을 음미할 수 있으니까. 그런 것은 한정된 행복에 불과하지 않느냐고 당신은 말할지 모른다. 그렇지만 최근에 내가 한정되지 않은 행복을 맛본 게 언제였을까? 그리고 그것은 정말로 한정되지 않은 것이었을까?

나는 이윽고 식사를 마치고, 마지막 남은 맥주 한 모금을 비우고, 자리에서 일어나 계산을 하고 밖으로 나온다. 역으로 향해 걸어갈 때, 나는 어깨 언저리에서 어렴풋하게 굴튀김의 조용한 격려를 느낀다. 그것은 결코 신기한 일이 아니다. 왜냐하면 나에게 굴튀김은 일종의 소중한 개인적 반영이니까. 그리고 숲속 저 깊은 곳에서는 누군가와 싸우고 있으니까.

무라카미 하루키, <무라카미 하루키 잡문집>, '자기란 무엇인가 - 혹은 맛있는 굴튀김 먹는 법'



하루키가 말한 '굴튀김의 조용한 격려'와 행복을 느껴본다. 그리고 '소중한 개인적 반영'임을 절절히 실감한다. 이 작은 요리에도 몇 개의 소중한 추억과 시간이 더해질 테니.   

매거진의 이전글 꿈 이야기를 해보죠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