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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신혜진 Dec 27. 2017

훗날 마음이 바뀔지도 모르는 미래의 나에게 쓰는 글


20대 초반이었을 거다. 친구랑 술 한잔 마시고 집으로 걸어가는 길에 이런 저런 얘기를 나누었다. 졸업하고 앞으로 뭐 하고 살지 막막했던 그때, 그 친구는 정말 많은 돈을 벌고 싶다고 말했다. 뭘 하고 싶은지는 스스로도 모르겠지만, 돈을 많이 벌고 싶다고, 그래서 이 동네를 떠나고 싶다고 말했다. 돈을 잘 벌고 싶다는 친구의 말에 나는 고개를 끄덕였으나, 난 속으로 많은 돈을 벌고 싶은 욕심은 없다고 생각했다.


그러고 보면 이상한 일이긴 하다. 따지고 보면 우리 집은 잘 살기보다는 늘 못 사는 편에 가까웠고, 아직도 그 좁은 집에서 네 가족이 사는 데도, 난 한 번도 많은 돈을 벌고 싶다는 생각을 해본 적이 없었다. (뭐 월급이 오르면 좋기야 하겠지만서도.) 차라리 돈보다는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하는 것이 소망이었다. (하긴, 돈을 벌고 싶으면 편집자가 될 생각은 아예 하지도 않았겠지.) 그저 아주 적은 월급만 아니면 좋겠다 싶었다. 아주 가끔 분위기 좋은 레스토랑에서 비싼 음식을 먹고, 친구들과 만나서 누가 돈 낼까 눈치 보지 않고, 카드값 밀리지 않고 제때 낼 수 있는 그런 정도면 좋겠다 싶었다.


돈을 벌면서 가장 좋은 점은 사고 싶은 책을 마음껏 살 수 있다는 것이다. 과 특성상 매주 책 읽고 써야 하는 과제가 많았는데, 매주 책을 살 수 없어 곤란했던 기억이 아직도 난다. 사고 싶었던 책을 둘러보다가 마음에 드는 한 권만 골라와야 했던 학생 시절, 때때로 느꼈던 서글픔을 기억한다.


지금은 마음껏 사고 싶은 책을 사고, 조금 비싼 식사를 하고, 충동적으로 여행도 떠나고, 큰맘 먹고 6개월 할부로 비싼 가방을 산다. 적은 월급으로 아등바등 살아가고 있지만, 지금의 내 삶에 만족하는 건 하고 싶었던 일을 하고, 내가 소화할 수 있는 적당량의 돈을 벌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아마도 시간이 지나면, 하고 싶은 일이 뭐가 그리 중요하냐고, 돈이 중요한 거 아니냐고 마음이 바뀔 지도 모르겠다. 그렇게 된다면 많이 서글퍼질 것 같다. 그래서 혹시나 나중에 마음이 바뀔지도 모르는 내가 염려되어 이런 글을 남겨본다. 몇 년 뒤에도 딱 더도 말고 지금처럼만. 내가 가진 생각과 가치관으로 무사히 이 세상을 살아나갈 수 있기를 바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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