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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신혜진 Jan 11. 2018

장기하가 부릅니다, 사람의 마음

오늘 밤엔 잠을 자자 푹 자자

나는 책을 만드는 출판사에서 일한다. 지금은 책 만들기에 집중하는 시간이 많아졌지만, 입사 초기에는 책을 만들기보다는 회사가 보유하고 있는 콘텐츠를 가공하고 다른 곳과 제휴를 맺는 외주 작업이 큰 비중을 차지했다. 작은 출판사가 살아남기 위해서는 현실적으로 이런 일이 필요할 테니까.


그러다 한 외주 일을 진행하게 되었다. 한 오프라인 매장의 현장 서포팅을 하는 일이었다. 이야기는 그 전부터 진행이 되었던 것 같은데 거의 마감을 코앞에 둔 상태로 그 일을 떠맡게 되었다. 너무 화가 나고 당황스러웠지만 당장 일을 해결해야 했으니 밤낮으로 이 일에만 매달렸다. 하지만 아무리 잘하려고 해도 절대적인 시간이 부족했으니 일이 제대로 굴러갈 리가 없었다. ‘굉장히 후진’ 사람이 된 것 같은 느낌이었고, 그냥 차라리 내가 현장 직원으로 일하는 것이 낫겠다는 생각마저 들 정도였다. 매일매일을 울면서 잠자리에 들고, 밥도 제대로 넘어가지 않았다. 제대로 먹은 것도 없는데 토를 하고, 너무 걱정이 되고 불안하니까 주말까지 반납하고 일을 하기도 했다. 


이런 생각을 하면 안 되지만, 그때는 이대로 죽어도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약속이 있어서 꾸역꾸역 집을 나왔다가 친구를 만나 눈물을 왈칵 쏟아내고 집으로 돌아오는 일요일 밤. 집 근처에서 차가 쌩쌩 달리는 도로를 보며 한참이나 발을 머뭇거리던 때가 떠오른다. 두 발자국만 앞으로 나가면 끝날 것 같은데 하는 생각이 머릿속에서 가시지 않았다. 차가웠던 가을 바람과 자동차가 달리면서 내는 ‘쌩’한 소리들, 그해의 가을은 싸늘했던 공기와 소리로 기억된다.


바로 그 계절에 위로가 되었던 음악이 있다. 그날도 어김없이 저녁 늦게까지 현장을 살펴보다가 퇴근을 했다. 몸을 움직일 힘조차 없어서 한강 남쪽에서 북쪽으로 가는 택시를 탔다. 복잡한 마음을 달래기 위해 스마트폰으로 리스트에 있는 음악을 랜덤으로 틀었는데, 그때 흘러나온 노래가 장기하와 얼굴들의 ‘사람의 마음’이다. “이제 집에 가자” 덤덤하게 부르는 첫 소절에 그만 울컥해서 엉엉 울었다.


이제 집에 가자 오늘 할 일은 다했으니까
집에 가자 이제 슬슬 피곤하니까
집에 가자 배가 고파졌으니까
집에 가자 나는 정말 지쳤으니까
어찌 된 일인지 집으로 옮기는 발걸음
한 걸음 한 걸음 한 걸음마다
무겁기 짝이 없지만 일단 집에 가자
사람의 마음이란 어렵고도 어렵구나
하지만 오늘 밤엔 잠을 자자 푹 자자


"그래도 너를 믿으니까 이런 일을 맡기지"라거나 "조금만 더 힘내"라는 식의 위로가 아니어서 좋았다. 그냥 아무 말 하지 않고 "이제 집에 가자"라고 해줘서, "오늘 밤엔 푹 자자"라고 해줘서 그게 얼마나 큰 힘이 됐는지 모른다. (장기하의 가사는 별거 없는 것처럼 보이는데도 예상치 못한 곳에서 묵직한 울림을 준다.) 힘들 때 위로가 되었던 노래여서일까. 원래도 좋아하는 앨범이었지만, 유독 애착이 간다. 영화나 책, 노래가 평범해도 누군가의 특별한 기억이나 아픔과 만나는 순간 더 이상 평범한 것이 아니게 되니까.



* 글 마감은 며칠 전에 했지만, 오늘 읽은 기사 속 아이유의 말이 참 좋아서 덧붙여본다.

지난 투어 콘서트에서 아이유는 '밤편지'를 쓰게 된 계기를 언급하며 "제가 여러분께 이렇게 곤히 잘 잤으면 좋겠다고 하는 건, ‘잘자’ 이게 그렇게 큰 말은 아니지만 제 입장에선 정말 공들인 고백"이라고 말했다고 한다. 힘들 때 다른 어떤 말보다도 "잘자", '푹 자자"라는 말이 얼마나 위로가 되는지 알기에, 아이유의 이 말이 참 따뜻하다고 생각했다. 사랑한다는 말보다 더 애틋하게 느껴지는 것도. 그러니까, 우리 모두 오늘 밤 잘 자자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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