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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신혜진 Feb 04. 2018

내 공간에 대한 갈망



대학교 때 교양 과목으로 '주거학개론' 수업을 들은 적이 있다. 공간에 대한 관심이 많았던지라 재미있게 들을 수 있는 수업이겠다 싶었다. 추상적이었던 주거의 개념이 한결 가깝게 느껴졌던 시간이었다. 그리고 기말 과제는 '주거 공간에 대한 에세이'였다. 자신이 살았던 공간에 대한 이야기를 풀어내는 것. 어려운 과제는 아니었다. 하지만 나의 공간에 대해 솔직하게 이야기하는 것이 두려웠다. 발표 과제도 아니었고, 교수에게 제출하는 과제였는데도. 보잘것없는 나의 공간을 허심탄회하게 말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작은 집에서 사는 것이, '우리 집'이라고 말할 수 없는 곳에 산다는 것을, 다른 사람이 아는 것이 창피했다. 어느 아파트에 사는지, 몇 평에 사는지, 무슨 차를 타는지 따위가 한 사람이 살아온 인생 전부를 말해주는 것이 분명 아닌데. 이런 생각은 예전이나 지금이나 머릿속을 떠나지 않는다.


좁은 집이라고 불평하는 누군가의 말을 들으며, 그와 비슷한 평수의 공간에서 네 식구가 사는 우리 집을 떠올렸다. 악의가 있는 말은 아니었지만, 어딘가 마음 한구석이 편치 않은 것은 어쩔 도리가 없었다. 문득문득 느껴지는 이러한 차이를 받아들이는 것은 아직도 편한 일이 아니다. 가까운 친구들에게 털어놓았던 것처럼, 괜한 걱정이 드는 것은 어쩌면 온전한 내 열등감일지도 모르겠다.


저번 주말에는 이케아에 처음 다녀왔다. '가구 공룡'이라는 말처럼, 이케아는 거대한 가구 창고였다. 오픈한 지가 꽤 되었고 고양시에 2호점이 생겼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사람들로 바글바글했다. 나처럼 별생각 없이 아이 쇼핑이나 할 겸 구경 온 사람이 있는가 하면, 지방에서 올라와 걸쭉한 사투리를 구사하며 가구를 둘러보는 사람들도 있었다. 볼이 빵빵해서 귀여운 아이들을 데리고 나온 가족들도, 줄자로 직접 치수를 재며 신중하게 가구를 고르는 사람들도. 그들의 얼굴에 묻어나 있는 행복한 얼굴들. 


각기 다른 콘셉트로 꾸며져 있는 쇼룸을 둘러봤다. 책으로 가득한 책장과 깔끔한 책상, 포근해 보이는 러그, 분위기 있어 보이는 스탠드 조명…. 꿈 같은 공간을 정신없이 살펴보면서, 잘 살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돈 버는 것에 큰 욕심은 없지만서도, 편히 쉴 수 있는 포근한 공간을 꾸릴 수 있을 만한 여유가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지금까지 자신만의 방이 없는 동생에게 늘 미안했던 그 마음을, 누군가로 하여금 느끼게 하고 싶지 않으니까. 


솔직하게 하고 싶은 말이 너무나도 많지만, 익명의 글이 아닌지라 또다시 나를 숨기게 된다. 아직도 갈 길이 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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