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의 까만 눈을 들여다보면 뼈저리게 난 혼자라는 기분이 들어
나는 얼마나 더 너의 까만 눈을 견뎌내야 제대로 설 수 있을까?
쏜애플의 <어려운 달>과 <아지랑이> 가사에는 '까만 눈'이 나온다. 하나같이 쓸쓸한 눈. 내겐 까만 눈이 너무나 강렬한 이미지로 다가와서인지, 이 노래들을 듣고 나면 머릿속이 온통 까만 눈으로 가득 찬다. 노래를 들으며 의식의 흐름대로 글을 썼다. 정신을 차리고 보니 내 앞에 찝찝하고 무서운 글이 있었다.
어렸을 때부터 머릿속에 눌어붙어 있는 이미지가 있다. 보는 것만으로도 속을 게워낼 것만 같은 눈(目)의 잔상. 내가 본 눈의 잔상의 출처는 확실하지 않다. 장난삼아 뒤적거렸던 백과사전에서 본 사진이었는지, 아니면 몇 년 동안 손가락 하나 꼼짝하지 못했던 병든 외할머니의 눈이었는지. 그러나 눈을 감으면 누르스름하고, 끔찍한 색의 눈이 생생하게 떠오른다. 새까만 눈동자와 새하얀 흰자가 아니라, 새까만 눈동자와 노오란 고름이 찬 흰자. 손가락에 고름이 차듯, 아주 고약한 병에 걸린 환자가 토해내는 가래 같은 색.
그 이후 거울을 볼 때면 새하얀 흰자가 누렇게 변해가는 상상을 한다. 자고 일어나면 누런 눈을 갖게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눈을 비비고는 한다. 그 끔찍하고 불쾌한 잔상을 긁어내기 위해 눈에 소독약을 붓고 싶은 충동에 빠지고는 한다. 새하얗게 세탁하고 싶은 충동에.
까만 눈을 떠올린다. 까맣고 투명한 그 눈을 떠올리다가 결국엔 차츰 외면해버렸던 그 눈을 떠올린다. 그리고 그 투명한 눈이 노오란 고름으로 가득 차 가는 모습을 상상해본다. 그 더러운 오물이 눈을 뒤덮는 모습을 생각해보고는 어쩐지 소름이 끼치고 만다. 그리고 다시 방바닥에 눌어붙고 만다. 원래 내가 태어난 곳이 그곳인 것 마냥.
방바닥에 끈적이는 페인트를 쏟는다. 흰색도 아닌, 회색도 아닌 어중간한 아이보리색 페인트를 쏟는다. 머리가 깨질 듯한 두통이 찾아왔지만 금세 눈을 감아버린다. 보지 않으면 마치 냄새도 꺼버릴 수 있다는 듯이. 하지만 냄새는 꺼지는 법이 없고 페인트 냄새는 적응을 모른다. 제멋대로 쏟아진 페인트에 언제 씻었는지 모를 발바닥을 갖다 댄다. 차가운 촉감에 다시 눈을 뜬다. 뗀다, 다시 갖다 댄다, 뗀다…. 몇 번을 반복하고 페인트 바닥에 몸을 뉘인다. 그리고 침잠하는 방바닥에 코를 갖다 댄다. 오래도록 지워지지 않을, 결코 적응되지 않을 그 냄새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