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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신혜진 Feb 06. 2018

까만 눈


너의 까만 눈을 들여다보면 뼈저리게 난 혼자라는 기분이 들어
나는 얼마나 더 너의 까만 눈을 견뎌내야 제대로 설 수 있을까?


쏜애플의 <어려운 달>과 <아지랑이> 가사에는 '까만 눈'이 나온다. 하나같이 쓸쓸한 눈. 내겐 까만 눈이 너무나 강렬한 이미지로 다가와서인지, 이 노래들을 듣고 나면 머릿속이 온통 까만 눈으로 가득 찬다. 노래를 들으며 의식의 흐름대로 글을 썼다. 정신을 차리고 보니 내 앞에 찝찝하고 무서운 글이 있었다.


                                                                                                                                                                            


어렸을 때부터 머릿속에 눌어붙어 있는 이미지가 있다보는 것만으로도 속을 게워낼 것만 같은 눈()의 잔상. 내가 본 눈의 잔상의 출처는 확실하지 않다장난삼아 뒤적거렸던 백과사전에서 본 사진이었는지아니면 몇 년 동안 손가락 하나 꼼짝하지 못했던 병든 외할머니의 눈이었는지그러나 눈을 감으면 누르스름하고끔찍한 색의 눈이 생생하게 떠오른다. 새까만 눈동자와 새하얀 흰자가 아니라새까만 눈동자와 노오란 고름이 찬 흰자손가락에 고름이 차듯아주 고약한 병에 걸린 환자가 토해내는 가래 같은 색.


그 이후 거울을 볼 때면 새하얀 흰자가 누렇게 변해가는 상상을 한다자고 일어나면 누런 눈을 갖게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눈을 비비고는 한다그 끔찍하고 불쾌한 잔상을 긁어내기 위해 눈에 소독약을 붓고 싶은 충동에 빠지고는 한다새하얗게 세탁하고 싶은 충동에.

 

까만 눈을 떠올린다까맣고 투명한 그 눈을 떠올리다가 결국엔 차츰 외면해버렸던 그 눈을 떠올린다그리고 그 투명한 눈이 노오란 고름으로 가득 차 가는 모습을 상상해본다그 더러운 오물이 눈을 뒤덮는 모습을 생각해보고는 어쩐지 소름이 끼치고 만다그리고 다시 방바닥에 눌어붙고 만다원래 내가 태어난 곳이 그곳인 것 마냥.

 

방바닥에 끈적이는 페인트를 쏟는다흰색도 아닌회색도 아닌 어중간한 아이보리색 페인트를 쏟는다머리가 깨질 듯한 두통이 찾아왔지만 금세 눈을 감아버린다보지 않으면 마치 냄새도 꺼버릴 수 있다는 듯이하지만 냄새는 꺼지는 법이 없고 페인트 냄새는 적응을 모른다제멋대로 쏟아진 페인트에 언제 씻었는지 모를 발바닥을 갖다 댄다차가운 촉감에 다시 눈을 뜬다. 뗀다다시 갖다 댄다, 뗀다…. 몇 번을 반복하고 페인트 바닥에 몸을 뉘인다그리고 침잠하는 방바닥에 코를 갖다 댄다오래도록 지워지지 않을결코 적응되지 않을 그 냄새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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