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신혜진 Feb 15. 2018

땅이 꺼지냐, 하늘이 무너지냐


드라마 <미생>에서 오 과장이 가끔 툭툭 내뱉는 말이 있다. "그거 못한다고 땅이 꺼지냐, 하늘이 무너지냐"와 같은 식의 이야기다. 난 이 말이 마법의 주문이라고 생각했다. 아무리 중요한 일도 이 말 한마디면 한순간에 하찮아지는 마법의 주문. 그 어떤 일도 땅이 꺼지고, 하늘이 무너지는 일보다는 중요할 수 없을 테니.


언젠가부터 힘들고 스트레스받는 일이 있으면 더 안 좋은 상황을 지레 떠올리는 버릇이 생겼다. 업무 스트레스가 극에 달할 때면, 나보다 더 힘든 일을 처리하며 회사에서 하루를 보내는 이들을 떠올렸다. 아플 때면, 가증스럽게도 나보다 더 아픈 사람들을 생각했고 때로는 내 상태에 안도했다. 그런 생각을 하면 지금의 내가 처한 일이 덜 힘들게 느껴졌다. 그러고는 괜한 죄책감이 들어 마음 한구석이 불편해졌지만.


이게 내가 힘든 일을 극복하는 방법이었다. 요즘이야 화나는 일이 있으면 주변 사람들한테 힘든 일도 토로하고, 짜증도 부리지만. 정작 가장 견딜 수 없이 힘들 때는 입을 꾹 닫곤 한다. 시간이 흘러 그때 그랬노라고, 많이 힘들었다고 뒤늦게 토로하는 수밖에. 다른 누군가를 진심으로 이해하는 일은 아무리 노력해도 불가능하다고 믿지만서도, 간절한 이야기가 진정으로 받아들여지지 않는 것을 보는 것만큼 절망스러운 일은 없다. 가까웠던 이에게 울면서 털어놓았던 이야기가 지루한 하품으로 돌아오는 일을 눈앞에서 목도하는 것만큼이나.


아직도 난 건강한 방법으로 시련을 이겨내는 방법을 모른다. 그저 울고 싶을 때 펑펑 울고, 주변 사람들에게 이유 없는 짜증을 부리고, 나만의 동굴에 틀어박히고 만다. 부쩍 나이가 들었다고 느끼는 요즘, 대체 언제쯤 시간이 지나야 모든 일에 노련해질 수 있는 건지. 아니, 노련해진 척이라도 할 수 있는 걸까.



매거진의 이전글 까만 눈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