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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신혜진 Feb 23. 2018

파워 노동요


저마다 일을 하거나 공부를 할 때 스타일이 있을 것이다. 독서실처럼 아무 소음도 들리지 않는 고요한 공간을 선호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백색소음이 있어야만 작업에 몰두하는 사람이 있다. 나로 말할 것 같으면 절대적으로 ‘소리’가 필요한 인간이다. 하지만 아주 적막한 공간에서 나는 잡소리는 안 된다. 이를테면 아주 조용한 독서실에서 종이 넘기는 소리, 헛기침하는 소리, 들쑥날쑥한 숨소리 같은 거. 이런 소리가 전혀 거슬리지 않을 때도 간혹 있지만, 일단 한 번 귀에 꽂히면 그때부터는 아무 일도 하지 못한다. 그렇기 때문에 나는 어디서든 이어폰을 귀에 꽂는다. 그러면 듣기 싫은 소리가 아니라 내가 자의적으로 선택한 소리가 흘러나온다. 그리고 귀에 꽂자마자 작업 능률이 상승 곡선을 탄다. 작업 열심히 하라고 옆에서 북돋는 노동요라고나 할까.


음악 마니아인 소설가 김중혁도 소설을 쓸 때면 음악을 듣는다고 한다. 그의 표현에 따르면 ‘뇌를 꽉 조여주는 실용음악’, 이른바 록, 포크, 블루스 등의 팝을 들으며 소설을 쓴다고 한다. 그런가 하면 소설가 김연수는 데미안 라이스 Damien Rice의 <Elephant>를 듣고 나서 영감을 받아 <모두에게 복된 새해>를 쓰기도 했다. 그렇다. 노동요의 효과는 엄청나다! 간혹 ‘공부하는데 그렇게 음악을 들으면 되냐?’라는 어른들의 핀잔 섞인 소리를 들을 때도 있지만, 뭘 모르고 하는 소리다.


글을 쓰거나 공부를 할 때 찾는 노동요는 듣기만 한다는 점에서 ‘수동적 노동요’다. 간혹 너무 흥에 겨워 흥얼거리거나 읊조릴 수는 있겠지만 작업을 하면서 우렁차게 따라부르지는 않으니까. 하지만 노동요가 육체노동과 함께할 때는 이야기가 달라진다. 그야말로 듣고 따라 부르는 ‘능동적 노동요’, 아니 더 나아가서 ‘파워 노동요’가 된다. 초월적인 힘을 부르는 노래들.


나도 ‘파워 노동요’를 경험한 적이 있다. 때는 바야흐로 2010년 여름, 대학교 2학년이었던 나는 일주일 동안 여름 농활에 갔다. 여름방학에 진행되는 농활은 9박 10일로 기간이 긴지라 참여 인원도 많지 않았다. 참여 인원이 너무 저조해서 학생회로 활동하고 있었던 나는 약간의 압박 끝에 농활에 참여했다. 보통 농활에 가면 일거리가 엄청나다는 얘기를 들었는데, 내가 간 곳은 일손이 아주 많이 필요한 곳은 아니었다. ‘농활 아버지’의 과수원에서 몇 시간 동안 열매를 따다가 고봉밥을 먹고, 소일거리로 마늘 껍질을 까다가 다디단 생마늘을 간식처럼 주워 먹기도 하고, 또 해가 지면 고봉밥에 막걸리를 입안에 들이붓고. 중간중간 농활 아버지, 어머니와 이야기를 나누기도 하고, 닭을 잡아먹기도 하고. (사실 친부모님보다도 농활 부모님과 더 살갑게 대화를 나누었던 것도 같다. 딸내미라고 부르던 농활 아버지의 목소리가 아직도 아른거린다.)


그렇게 며칠 동안 쉬운 일만 하다가 농활이 끝나는가 싶었는데, 동네에 사시는 다른 분이 일손을 요청하셔서 우리는 옆 동네로 파견을 나갔다. 트럭에서 감자 포대를 나르는 일이었다. 정확히는 기억나지 않지만 한 포대에 20kg 정도 했던 것 같다. 트럭 짐칸에 있는 분이 감자포대를 건네면 그것을 받아 바닥에 쌓는 일이었다. 무겁기도 하고 트럭과 땅바닥 간의 낙차가 있다 보니 무척이나 고된 일이었다. 일이 반복되면 반복될수록 팔은 아파져 오고 다리는 후들거리고. 그러다 중간 휴식시간에 새참을 받았다. 막걸리를 한 사발, 두 사발 …. 딱 기분 좋게 취기가 오르자 세 명 남짓했던 우리 농활꾼들은 신나서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들으면 흥이 날 수밖에 없는 트로트를 불러가며, 그리고 분위기와 어울리지도 않게 ‘오늘 밤은 어둠이 무서워요’를 부르면서 말이다. 감자 포대를 받다가 휘청거려서 넘어져서 다리에 주먹 만한 멍이 들기도 했지만, 노동요와 막걸리의 힘으로 그 많고 많은 감자 포대를 금세 옮길 수 있었다. 가능할 것 같지 않던 초인적인 힘을 샘솟게 하는 노동요의 힘이란.


작년이었던가. 술 취한 아저씨가 줄을 끊어 작업하고 있던 도색공이 목숨을 잃는 사건이 발생했다. 그분은 공포를 잊기 위해 휴대폰으로 음악을 틀고 작업을 하셨다고 한다. 그 얘기를 듣고 어찌나 가슴이 아리고 화가 났는지 모른다. 아마도 휴대폰에서 퍼져 나오는 그 음악이 그 순간 가장 힘이 되는 노동요였을 것이다. 그 생각을 하니 또 마음이 아려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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