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 짐을 정신없이 싸다가 문득 '이 많은 충전기는 대체 뭐란 말인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스마트폰 충전기를 챙기고, 방전을 대비해 보조배터리를 챙기고, 보조배터리의 충전을 위해 또 케이블을 챙긴다. (그야말로 '충전을 위한 충전'이로군요!) 이게 다 스마트폰 충전을 위한 준비물. 물론 이걸로 끝이 아니다. 미러리스 카메라 배터리 충전기도 챙기고, 노트북 충전기도 챙겨야 한다. 얼마 전에 선물 받은 에어팟은 에어팟 케이스를 또 충전해야 한다. 아아. 고달픈 충전.
여러 전자기기를 동시에 충전하느라 멀티탭은 언제나 풀로 차 있다. '충전의 노예'가 된 듯한 기분이랄까. 언젠가부터 이렇게 된 걸까. 대학교 1학년, 1주일 동안 내일로 여행을 떠날 때만 하더라도 스마트폰을 쓰기 전이었는데. 그때는 어떻게 여행을 했나 싶다. 여행 떠나기 전에 어느 정도 가는 방법을 숙지해두고 여행을 떠나는 게 전부였는데도, 별 문제 없이 여행했던 걸 보면. 지금 스마트폰 지도 어플을 바라보며 지름길로 여행지를 찾아가는 것이 좋을 일만은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멀리 돌아가는 대신 볼 수 있는 것들이 때론 여행지 자체보다 더 좋기도 하니까.
다음 여행은 최소한의 전자기기와 짐만 꾸려서 떠나보면 어떨까 생각해본다. 태생적으로 미니멀라이프를 할 수 없는 애인지라 분명 또 이것저것 챙겨갈 것이 뻔하지만, 그래도 필름카메라 하나만 들고 골목 이곳저곳을 돌아다니는 꿈을 꿔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