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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신혜진 Mar 12. 2018

음악을 나눠 듣는 일


좋아하는 사람이 생기면 자꾸 무언가 공유하고 싶어진다. 서로의 일상을 나누고 책장 깊은 곳에 꽂혀 있는 취향이 담긴 책을 나누고, 좋아하는 소설 속 문장을 나누고, 가장 날것의 글을 나눈다. 연애를 하며 가장 행복한 순간을 꼽는다면 내가 좋아하는 음악을 나눠 들을 때다. 이어폰을 한쪽씩 나눠 끼고 좋아하는 음악을 들으며 이 음악에 얽힌 이야기를 서로 나눈다. 거창한 에피소드가 없는 노래도 있다. 그냥 이 노래를 처음 들었을 때 느낌이라든가, 노래를 처음 들었던 장소나 분위기 등을 나누다 보면 한결 사이가 끈끈해짐을 느낀다.


하나의 이어폰으로 음악을 나눠 듣기 곤란한 노래들도 있다. 소리가 한 개의 채널을 통해 출력되는, 그러니까 이어폰 양쪽에서 같은 사운드가 나오는 '모노'가 아니라 양쪽에서 각기 다른 사운드가 나오는 '스테레오' 음악들이 이에 해당한다. 입체감이 한결 살아나는 스테레오 음악은 혼자 들을 때야 상관없지만, 다른 사람과 함께 들을 때는 약간의 문제가 생긴다. 내가 좋아하는 비틀즈 스테레오 버전을 예로 들면 왼쪽에서는 반주만 흘러나오고 오른쪽에서는 존과 폴의 목소리만 들을 수 있다. 그러니까 어느 한 사람은 흡사 instrumental 버전을 듣는 셈이고, 다른 한 사람은 보컬만 강조된 목소리만 듣게 되는 것이다.


하지만 이게 또 묘한 매력이 있는 거라. 이어폰 왼쪽만 귀에 꽂으면 평소에 노래를 들을 때 느끼지 못했던 낮게 읊조리는 듯한 베이스 기타 소리가 크게 다가온다. 반복되는 기타 리프, 당장에라도 춤추게 만드는 드럼 리듬이 이렇게 생동감 있게 느껴질 수 있다니. 그 소리를 듣지 못했던 지난날의 '막귀'를 탓하게 된다. 그런가 하면 이어폰 오른쪽만 귀에 꽂는 때도 있다. 악기 소리는 사라지고 홀로 남겨진 보컬의 목소리는 묘한 끌림을 준다.


다시 돌아와 음악을 나눠 듣는 일에 대해 생각한다. 스테레오 음악을 나눠 듣는 것은 내가 듣지 못하는 소리를 미루어 짐작하는 과정을 포함한다. 누군가와 사랑을 하는 일도 마찬가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미처 알지 못하는 상대방의 지난날과 틈의 시간을 미루어 짐작하고 이해하는 일. 음악을 들으며 이런저런 생각에 잠기는 하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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